사랑의 노래(가족)

“나는 세상의 빛이니...”

송담(松潭) 2016. 5. 25. 09:41

 

 

나는 세상의 빛이니...”

 

 

 

 

 작가 이석원은 에세이 보통의 존재에서 편안함을 이렇게 묘사했다.

 

 “개학을 하려면 아직 제법 많은 날이 남아 있는데 방학숙제를 미리 다 해놔서 아무런 마음의 짐이나 부담이 없이 편안하게 아침 눈을 뜨고, 뜨고 나서도 한번 곱절의 편안함을 느끼며 온돌바닥에 나른히 몸을 뉘던 어린 시절 그때 그 순간같은 것이다.

 

 은퇴 후 지금 나의 마음이 이에 가깝다. 이런 편안한 시간을 갖게 해준 누군가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내게도 최악의 시절은 있었다. 30여 년 전 1987년부터 대략 3년 정도가 내 인생의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하여 겨우 2년이 안 된 초자가 중앙부처로 근무지를 옮겨 서울에서 살던 시절이다. 업무는 초등학생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처럼 압박감이 극에 달했고, 맞벌이 탓에 집사람과 무녀독남 유치원생인 아들은 시골에 있어 가족은 애틋했으며 주거환경은 매우 열악했다업무에 허우적거리는 나는 문제해결능력 부족으로 그야말로 머리가 돌아버릴 정도였고, 설상가상으로 고강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밤늦게 퇴근하고도 나홀로 술자리가 잦았다. 늦은 밤 만취상태에서 비틀거리면서 신림동 언덕길을 오르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길, 나그네 길이라 흥얼댔던 그때의 모습은 어느 가난한 자의 짠한 풍경이기도 했다. 그 악몽이 아직도 기억의 언저리에서 열등으로 나를 자극한다.

 

 이렇게 연일 반복되는 업무와 술의 합성은 나의 몸과 마음을 모두 나락으로 몰고 갔다. 물론 나의 그러한 고통이 이른바 자극에 대해 반응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 강도라는 역치(閾値)’가 낮아, 작은 아픔도 큰 고통으로 느껴지는 병적인 증상이었는지 모른다. 이런 와중에서 아직까지 무신론자라고 생각하는 나는 전날 밤 마신 술이 덜 깨고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일요일엔 가끔 교회에 나가 찬양대의 노래소리와 목사님의 축도에 후회와 좌절의 가슴을 쓸어안으며 신산(辛酸)한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내버스 안에서 종교인이 선교용 홍보물을 나누어주었는데 어머님께서 교회에 다니신 탓에 나는 그 홍보물을 바로 버리지 못하고 호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와 한 번 읽어보고 버리려 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무언가 마음에 확 닿는 것이 있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 812)이 말씀을 곧바로 나의 상황과 대입시켜 보니 그동안 무수히 어둠속을 헤매고 다닌 (주로 내가 찾는 술집은 지하에 많았다.) 나에게 빛을 비추면 타락의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그래, 음습한 내 영혼에 필요한 것은 빛이다!”

 

 그래서 마침 그때 표구하기 위해 맡겨놓은 웃음으로 화목한 가정, 참고 자제하는 생활이라는 가훈을 취소하고 이 성경구절로 바꿔 표구한 후 어머님 방에 걸어드렸다. 그런 일이 있는 후 어머님께서는 그렇게 나에게 교회에 나가라고 조르시더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셨다. 아들이 언젠가는 하나님 앞으로 갈 것이라는 확신을 하신 것이다. 이 때문인지 나는 부모님의 뜻대로 두 분의 기일을 유교식이 아닌 추도식으로 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독실한 크리스찬이 된 아들 때문에 일요일엔 교회에 나간다. 하지만 일주일에 단 하루만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갈 뿐이고 교우관계나 교회활동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라는, 외울 줄 아는 단 하나의 성경구절을 되새기며 숙제를 다 해 놓은 어느 소년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인생의 석양길을 걸어가고 있다.

 

 

< 2016.5.25 >

 

 

생전의 어머님 방에 걸어놓았던 액자를 창고에서 꺼내 다실에 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