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큰 밥그릇
얼마 전까지 식탁에서 가끔 일어난 일들이다. 집사람이 자기의 밥을 밥그릇에 담아 먹지 않고, 양념이 묻은 양푼에 비벼먹거나 밥통에 남아 있는 밥을 그대로 먹는다. 내가 “모양이 좋지 않으니 밥그릇에 담아 드시라”고 지적하면 집사람은 “이것이 뭐가 문제냐?”고 대꾸한다. 여기서 말다툼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서로 간 의견 차이가 발생한다. 이러한 지적은 내가 무슨 예절바른 양반집 태생이어서 식탁의 품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식탁이 차려지기까지 아무런 기여도가 없어 뭔가 좀 미안한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집사람이 왜 가끔 큰 그릇에 식사를 하는지 이해가 가고 이제는 더 이상 시비 걸지 않고 수용해야 함을 알았다. 식탁이 차려지기까지는 많은 수고로움이 있다. 많은 남자들이 그 시간 빈둥거리다가 식탁 앞에 앉지만 여자들은 노동의 연속과정에서 자신의 밥그릇 하나로도 덜 씻고 싶을 것이다. 밥을 차리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힘든 것이어서 하루새끼 집에서 꼬박꼬박 밥을 얻어먹는 남자는 ‘삼식이 새끼’라고 욕먹어도 마땅하다.
생활현장에서 품위와 편리성이 충돌하면 편리성이 우선이다. 양푼에 밥을 비벼 온 식구가 함께 떠먹는 것이 어찌 옛날 가난한 농가에서나 보는 풍경인가. 이것은 가족공동체의 꾸밈없는 속살이요 끈끈한 핏줄의 막힘없는 소통이다. 거기다가 도구의 간편함과 편리성을 더해 주는 것이니 이를 생활화 한들 문제될 게 없다. 집사람의 경우 본인 한 사람만이라도 큰 밥통을 그대로 사용해서 좀 편리해지고 싶다는데 여기에 식탁의 품위라는 편견의 딱지를 붙일 필요가 있겠는가. 집사람이 가끔 양푼 채로 식사를 할 경우 이제는 알아야 한다. “나는 힘들다. 설거지는 그대가 좀 하시라”는 메시지임을.
가사노동에서 역할분담은 신세대 부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같이 은퇴한 노인남자들도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입으로만,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닌데 지금 자판을 멈추고 주방에 가보면 설거지가 이미 다 끝났을 것 같다.
< 2016.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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