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래(가족)

나의 우둔한 반골(反骨)

송담(松潭) 2013. 11. 14. 07:17

 

 

나의 우둔한 반골(反骨)

 

 

 ‘반골(反骨)’의 사전적 의미는 세상의 풍조, 권세, 권위 따위를 좇지 않고 저항하는 기질이다. 새벽에 일어나 문득 내 삶을 되돌아보니 상당한 반골적 요소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나의 이야기를  쓰는 동인이 되었다. 그러나 반골의 내용이 보통의 삶과는 다른 것이어서 어리석은 즉 우둔한 반골로 명명한다.

 

 먼저 나의 삶에 반골적 요소를 살펴보면 , (중도) 좌파적 성향이다 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크게 어려운 집에서 고생하고 자라지 않았다. 그런데 성인이 돼가면서 '가진 자'들에 대한 막연한 저항의식이 형성되었다 위험한 발상일런지 모르지만 토지의 사유화를 인정하더라도 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 토지야말로 자연이고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공평한 선물이어야 하는데 이를 방만하게 사유화함으로서 소유자들이 지대를 통해 불로소득을 향유하고 자손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린다. 이런 모순 때문에 토지소유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건실하게 발전하고 생명력을 지속하려면 토지제도를 손질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음으로 자식교육에 있어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나는 사교육에 올인하지 않았으며 자식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지 않았다. 거의 방관에 가까웠는데 이는 대한민국 부모들의 억척스러운 교육열에 대한 질투와 역겨움 때문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하나 뿐인 아들은 일류가 되지 못하고 세상의 눈으로 보면 B급이다. 하지만 나는 자식교육 방식에 대해 후회도 미련도 없으며 오히려 아들이 나의 삶보다 더 건강하고 좋은 삶을 살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들은 나에게는 A급인 것이다아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초절약형으로 검약하다. 나와는 달리 생각과 행동에 거품이 끼지 않았고 나처럼 '천박한 자아'를 갖고 있지 않다.

 

  한편, 나는 세상을 살면서 치열한 경쟁구조의 틀에서 비껴서 있었다.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남으려면 두 눈을 부릅뜨고 치열하게 살아야 성공하고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성과를 올리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투적으로 살면서 반칙에도 둔감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가급적 정도(正道)를 가려고 노력했고 경쟁에 휩쓸리지 않고 초연하려 했다이렇듯 열정의 온도가 낮은 삶을 유지한 것 또한 우리사회의 치열한 경쟁구조에 저항한 것인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나의 남다른 주거생생활이다. 아파트는 가장 편리한 공간이며 대한민국의 대표적 주거공간이 되었다수도권의 아파트를 비롯한 많은 아파트들이 부()의 수단이 되었고 그래서 세상천지가 아파트로 채워진 대한민국은 과히 아파트공화국이다 하지만 은퇴한 나는 지금 전원으로 가려고 준비 중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편리한 도시생활과 아파트 (나는 아파트를 닭장이라고 생각한다)를 둥지로 선호하지만 나는 그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 주거생활도 보통사람들의 방식을 따르지 않으니 부를 축적하기도 어려웠다. 이렇게 경제원칙을 외면한 삶 또한  특별하다.

 

  이같은 나의 삶의 방식에서 반골이 굳이 고상한 표현이라면 괴짜가 맞을 수도 있다. 세상의 조류에 대한 엉뚱한 저항이자 거부이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우둔(愚鈍)한 객기다 하지만.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이러할진대 앞으로도 '두려워하지 말고 중심을 지키며' 나아가려 한다. "저항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이해이며 도전이다."라는 모 철학교수의 말을 긍정하며  어쩔 수 없는 내 삶의 태도에 자부심을 느낀다.

 

< 2013.11.14 새벽에 >

 

 

< 2 >

 

자식의 선택을 채점하지 않는다

(2017년 쓴 글)

 

 모두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나이든 사람들의 대화는 주로 자식자랑인 경우가 많다. 특히 판검사는 물론이고 의사를 둔 부모들이 그렇다. 사람들과 만나면 자랑을 하고 싶어 입이 간질거린다. 만약 나도 그러한 조건이었다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고 내가 왕대가 아니기에 아들도 왕대가 되지 못했다. 집사람이 이웃들과 만나 대화할 때 입이 간지러울 이유도 없다. 가끔 잘 된 자식들의 얘길 들으면 부러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부러움의 정도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아들이 30대 중반이고 아직 짝꿍도 없고 직장을 잠깐 그만 두고(자발적 실업) 지금은 책을 보고 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런 나를 두고 절친 L은 만날 때마다 나에게 아들을 방치하고 있다고 걱정하며 조언한다. 좋은 일자리를 찾는데 부모가 역할을 해보라고, 세상은 다 그런 거라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심지어 공기업 채용에도 청탁이 난무했으니 빽도 돈도 쓰지 않고 공정한 세상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바보로 살고 B급으로 살더라도 반칙은 싫다. 마음에 끈적한 찌꺼기가 붙어있는 삶은 싫다. 아들은 신앙심이 깊어서 더욱 그럴 것이고 나 역시 결백증이 있어 수용할 수 없다. 그래서 아들의 B급 직장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돈벌이나 사회적 지위가 그렇다 하더라도 아들이 'B급 인생'을 살게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자족하고 믿음으로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충분히 'A급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부모들에 비하면 욕심과 열정이 너무 부족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골동품같은 생각을 가진 나에게 100% 공감하는 메세지가 있다. 나의 가치관을 지원하고 격려해 주는 반가운 글이다.

 

 "좋은 어른은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게 만든다.

 하나의 선택지를 주고 그게 정답이라며 선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선택지를 주고 기다린다.

 그리고 선택이 맞다, 틀렸다 채점하지 않는다.

 

 이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설령 그게 누가 봐도 틀린 답이라고 해도

 그 아이가 노력해서 틀린 답을 맞는 답으로 만들면

 그 또한 정답이라고 존중해 준다."

 

  조유미 / ‘, 있는 그대로 참 좋다중에서

 

 

  믿고 기다려야 하는 아들(학창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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