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살아 계실 때에...
2,300여년 전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맹자(孟子)는 인생삼락(人生三樂)의 첫 번째를 양친부모가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父母具存 兄弟無故:부모구존 형제무고)라고 했다. 어버이 날, 많은 자식들이 부모님을 찾고 통신수단을 이용해 안부를 물었을 것이다. 나도 어제 아침 가까운 거리에 홀로 계신 장모님을 뵙고 왔다. 지금 우리 나이에 부모구존하고 형제무고한 집안이 있다면 그런 집안은 참으로 복 받은 집안이다.
불과 한 세대 만에 세상이 많이 변했다. 고도한 물질주의와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날로 확장되어 가는 개인주의 때문에 ‘만(萬)가지 행동의 기본’이라는 효(孝)에 대한 가치관이 차츰 빛을 잃어가고, 가족간의 진정한 우애와 사랑은 자신과 처자식만을 위한 옹골찬 이기심으로 그 범위가 축소되면서 부모는 이제 더 이상 최고의 권위자가 아닌 가족구성원의 변방에 자리하고 있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부모가 재력이 있는 경우는 자녀들의 만년 물주 노릇을 하게 되고 재산능력이 없는 경우라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자식들의 눈치만 보는 초라한 신세가 되고 만다. 더군다나 부모가 늙어 병들면 자식들은 그 때부터 부모를 짐으로 여기게 되고 자식들 간에도 불협화음이 시작되는 것이니 이것이 오늘날 많은 가족들이 겪는 공통의 경험이 아닌가 싶다. 나 역시 큰 아들로 태어나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말년에 병드신 어머님을 짐으로 여겼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고,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아무 소용없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그때의 불효가 아직까지 내 가슴 깊숙이 한(恨)으로 남아있다.
대부분 가족관계에 있어 부모가 늙어 가면 자식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하고 이럴 때 자식들은 늘 부모의 의견은 고집이라고 단정 지으며 부모를 소외시킨다. 사소한 일 가지고도 오해가 생기며 갈등을 빚는다. 고부간에 화합되지 않는 평행선은 계속되고 부모의 부양이나 병간호 문제로 부부간, 형제간에 다툼이 생기기도 한다. 여기에 경제, 즉 돈 문제가 개입되면 형제자매간에 우애가 뒤틀리고 반목도 심화된다. 형제 중에 아주 잘사는 사람이 있어도 인색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가난은 감동의 변수이지만, 부(富)는 갈등의 변수’라고 했던가.
만약에 자식들이 부모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서로 미루고 회피하게 되면 부모의 한숨은 더욱 깊어만 갈 것이다. 왜 우리는 오늘의 내가 살아 숨쉬는 존재로 만들어준 고마우신 부모님께 그 은덕을 잊은 채 무조건적인 효성을 받치지 못하는 것일까? 자신이 이끄는 처자식에 대한 고도한 책임성 때문일까? 아니면 오직 나만이 중요한 이기적 유전자 때문일까? 혹여 우리는 부모가 나에게 해준 것이 뭐가 있냐고 괜한 투정만 부리는 것이 아닐까. 이런저런 반성을 해 본다.
이제 우리가 맞이할 노년도 머지않다. 지금 우리들의 자녀들은 갈수록 자기중심적 블랙홀에 빠져들어 가고 있으며 부모의 말에 귀 기우리지 않는다. 우리가 명절에 조상을 찾는 일까지도 우리세대가 마지막일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데 지금 우리세대가 노인이 되면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리라는 기대는 오직 난망하다. 내가 부모에게 지극정성을 다하지 못한 대가는 머지않아 부메랑으로 나에게 되돌아 올 것이니 아직 부모가 살아 계신다면 마음을 비우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드려야 후회가 없을 것이다. 다음 글을 음미하며 어버이날의 단상을 마친다. < 2008.5.8 >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엄 즉도 하다마난
품어 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박인로(1561~1642)
< 해설 >
쟁반 속에 담아 온 일찍 익은 홍시 감이 고와도 보인다.
이 감은 귤이나 유자가 아니지만 옛날 중국의 육적(陸績)의 본을 받아 어머니에게 드리기 위해 품에 품고 집으로 감 직도 하다마는 부모님이 이미 저 세상으로 가셔서 반길 사람이 없으니 이를 슬퍼하노라
위 시를 ‘早紅?歌’라 한다. 지은이가 선조 34년 9월에
한음 이덕형을 찾아가 조홍시의 대접을 받았을 때,
회귤의 고사를 생각하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애닯아하여
지은 노래이다.
※ 회귤(懷橘)의 고사(故事)
중국 삼국시대 吳郡 사람 육적이 여섯 살 때 친구 원 술의 집에 갔었다. 원 술이 귤 세 개를 먹으라고 주었는데 육적이 그것을 품속에 숨겼다가 일어설 때 품었던 귤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원 술이 연유를 물은 즉, 육적이 어머님께 드리려고 품었다고 하는 고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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