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회상과 미래
은혼식(銀婚式)을 맞아
“우리의 과거란 언젠가 회상에 의해서 시간의 입체상으로 다시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미완성의 시간이다”라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말했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저서 ‘고백록’에서 “과거의 현재는 기억이고, 현재의 현재는 직관이며, 미래의 현재는 기대이다”라고 했다. 오늘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기억으로 하여 현재의 시간으로 입체상을 그려보고 미래를 기대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오늘이 결혼 25주년 ‘은혼식’의 날이기 때문이다.
결혼생활 25년의 과정과 결산
지금으로부터 25년전, 1981년 12월 6일 그날은 겨울이었지만 포근한 날씨였다. 결혼식 날, 날씨가 차가우면 신부의 성깔이 사납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날 날씨가 포근하고 따뜻했던 이유는 나와 결혼해서 줄곧 바보처럼 순진하게만 살아온 아내의 성격을 대변했던가 싶다.
누구나 인생이 그러하듯 쏜살같이 지나온 25년이다. 그동안 무녀독남을 두었고 양가 부모님 중 장모님만 살아 계신다. 우리 역시 어느덧 초로의 나이에 들어섰고 두 사람의 검은머리는 희끗희끗해져 오늘 은혼식 날의 의미를 머리색깔로 나타내주고 있다. 나의 머리는 속알머리가 빠져 비어있으며 다행스럽게나마 주변머리로 속알머리를 덮고 스프레이 뿌린 후 위장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결혼 전에 했던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때 당시는 요즘말로 좋게 말하면 비젼(Vision)을 많이 제시했었는데 그동안 나의 삶이 그야말로 ‘허풍당당’한 자세로 일관되다 보니 그 약속들 대부분이 공수표가 되었다. 부부란 그렇게 그렇게 평생을 속아서 산다지만 그것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증명한 사람이 바로 나인 것 같다.
오늘 모처럼 결혼기념일을 맞아 그동안 25년 동안 행해졌던 몇 가지 데이터를 생산해 보았다. 물론 절대 자랑거리가 될 수 없는 꼴볼견 같은 자료이지만 반성하는 차원에서다.
결혼생활 25년은 일수로 따지면 9,125일이 된다. 그 중 술 마시고 밤늦게 귀가한 날이 어림잡아 3,000일.(한달에 기본적으로 1/3은 술을 마심)이상으로 큰 숫자이지만, 이것과 형편없이 적은 숫자는 가족여행 5회 정도, 극장에서 영화관람 3회 이하, 함께 등산 2회 정도다. 이것은 1년 동안의 데이터가 아닌 25년 동안의 데이터이니 실로 가공할만한 수치라 아니할 수 없다. 이 같은 숫자는 내가 얼마나 가정을 등한시 하며 밖으로만 쏘댓는지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이 정도 인간이 집에서 추방되지 않고 버티고 산다는 것은 매우 용한 일이고 어리석은 자의 무용담(武勇談)으로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한 셈이다. 이렇게 살아오다 보니 가정경제의 대차대조표가 25년 전에 비해 한 푼도 개선된 것이 없으니 이것 또한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 모습이 기억을 통한 회상으로 과거의 모습을 현재의 모습으로 입체화 시킨 ‘오늘의 나’이다.
지난 25년의 버팀목은 무엇이었는가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1947~ )는 “인간은 동굴에서 나와 집을 짓고 정착해 살 때부터 이미 짝짓기 상대를 선택하는 일과 어린것들을 길들이는 일을 하면서 암암리에 스스로를 ‘선별’하고 ‘사육’해 왔다고 하면서 이를 동물로서의 인간의 ‘인간화’라 표현했고, 이러한 일들이 행해지는 장소를 ‘인간농장’이라 했는데 인간은 그들이 어디에 살든지 간에 주위에 농장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스스로 양육하고 스스로 보호하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물론 이 말은 인간교육을 통한 유토피아 건설 문제와 관련된 말이지만 철학적이 아닌 피상적 이해로 접근하면 한 가정의 가장이 농장에서 해야 할 기본 책무가 무엇인지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나는 가장으로서의 기본 역할을 아내에게 맡기고 그야말로 무책임하게 어설픈 ‘외무장관(?)’의 역할만 하고 다니다가 불과 3년 전에 우리집 농장으로 돌아왔다. 그동안의 우리농장을 가꾸고 지키는 버팀목은 아내였다. 25년간 아무런 흔들림 없이 어쩌면 너무도 바보스럽게 그저 지킴이 역할만 해주었기에 나는 파국으로 가지 않고 늦게나마 참회의 길을 가고 있는지 모른다. “끝까지 정신 못차린 사람도 있는데 늦었지만 다행이다”라고 위로해 주니 이를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지 늘 자문하고 다짐해 보기도 한다.
향후 25년 금혼식(金婚式)을 향하여
최근 3년 전에 우리 집의 농장으로 돌아온 나는 불과 1년 전 그동안 내 인생의 거품을 걷어내는 작업을 했다. 솔직히 말해 몽상주의에 가까운 이상주의인 나는 그동안 현실적인 꿈으로 “수신제가(修身齊家) 이후 치군평천하(治郡平天下)”를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과대망상의 꿈을 버리고 “수신제가(修身齊家) 이후에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인생목표를 최종 선정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충실한 농장의 주인이 되는 것이요, 정직한 공복이 되는 것이며. 친구, 동료, 이웃들에게 배려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프롬이 말한 ‘존재양식의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제 그까짓 세속적인 탐욕을 버리고 무기력한 자아에 끝없이 반항하며 사는 실존의 삶을 지향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나의 기대이다.
오늘 새벽에 잠자는 아내의 조용한 코골이 소리를 들었다. 예전 같으면 늘 술에 취해 내가 먼저 골아 떨어졌기에 맞벌이에 고달픈 아내의 코골이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내가 이제 제자리에 들어서니 아내의 가냘픈 코골이 소리는 그동안 나와 우리 가정을 지탱해준 애환이 서린 소리요, 나의 눈시울을 가볍게 전율시키는 그런 소리로 가슴에 다가왔다. 오늘 결혼 25주년 은혼식 날에 꽃 한 송이는 물론이거니와 아무런 선물도 못했다. 며칠 전에 내가 현금으로 얼마를 주겠노라고 했더니(바로 준 것이 아니라) 사양해서 그만 둔 나다. 하지만 향후 25년 금혼식의 그날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도 아내의 건강을 지키고 그동안 못해 주었던 많은 것들을 보상해 주는 삶을 살기 위하여 진실을 다하고 전력을 다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 2006.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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