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래(가족)

바닷가에서

송담(松潭) 2011. 8. 7. 12:03

 

 

2011.8.3  여름휴가 / 아들입니다. 

 

2011.8. 4  너울파도를 뒤로...

 

2011.8.1  장흥 탐진강변

 

 

다음 글은 4년 전에 쓴 글입니다.

 

 

나의 자녀교육

 

 방관적 자녀교육, 모험을 하다

 

 특별한 이유 없이 나는 아들만 하나다. 굳이 이유가 있다면 하나는 내가 맞벌이라서  53세에 홀로 되신 어머님께서 손자 키우는데 세월을 다 보내도록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다음은 내가 5남매 중 장남인데 우선 나를 되돌아보아도 부모에게 효도하며 자식노릇 제대로 한다는 것 쉽지 않기에 자식 여럿 필요없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아들을 키우면서 세상의 똑똑한 부모들처럼 자녀교육을 하지 않았다. 아이를 강아지로 비유하자면 묶어놓고 키우지 않고 풀어놓고  키웠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조기교육은 시도해 보지도 않았으며 자전거, 롤러스케이트 등 놀이기구를 사주는데 인색함이 없었다. 한글을 제대로 터득시키지 않고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지금 한나라당 대권주자인 박근혜가 다녔던 청와대 부근에 있는 청운초등학교에 입학시켰는데 (청와대 부근 궁정동에서 세집 살았음)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문제아로 보았었다. 그 후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다가 아들은 과천초등학교, 과천중학교를 졸업했지만 살기좋은 도시 과천에서도 나는 사교육에 극히 미온적이었다. 학원은 한 과목 정도 간헐적으로 보냈을 뿐이다.

 

 

 잘 산 사람을 질투하는 엉뚱한 반항

 

 그렇다면 나는 왜 하나뿐인 아들의 자녀교육에 세상사람들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는가?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나의 반골정신이었다. 비록 나는 어렵고 힘든 가난을 특별히 경험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풍족하고 여유로운 가정에서 자란 것도 아니지만 소위 잘나가는 부유층 사람들의 악착같은 자녀교육에 항상 거부감을 가졌고 그들에게 냉소를 쏟아 부었던 사람이다. 나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자녀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부모밑의 자식들이 성장하여 성공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이기심으로 우리 사회의 계층간 골을 깊게 파놓을 주역으로 자리할까 걱정되었다.

 

 극성을 부리며 자녀교육에 몸바쳐 사는 그들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그래,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고 유행가 가사를 흥얼댔다그들의 모습은 오직 나만 잘살기 위해 발버둥치는생존경쟁의 레이스에서 항상 첨단을 달리는, 그래서 늘 승리만을 구가하는 탐욕스러운 인간, 그 자체로만 보였다. 내가 잘나지 못한 탓이었는지 나는 부자들과 이 땅의 잘난 사람들을 질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질투가 혹 열등의식의 산물일수도 있겠으나 나는 가끔 약자의 편에서 그들과 소외를 나누고 싶었고 그러한 방향으로 나의 이념은 형성되어 갔다.

 

 우리 세대에 나는 고등학교도 대학도 명문은 가지 못했다. 명문을 못나왔다면 자식을 통한 보상욕구라도 가질 법도 한데 나는 거기에 애착을 두지 않았다. 이렇게 가진 자들에 대한 엉뚱한 저항 때문에 나는 아들을 일류로 만들지 못했다. 내가 이런 사고방식이라면 집사람이라도 열심히 설치면 되었을 것이지만 집사람 역시 천성적으로 악착같은 삶은 엄두를 못낸 사람인지라 아들은 시종일관 아무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내가 직장을 지방으로 옮겨 아들은 시골로 내려오게 되고 고등학교를 순천에서 졸업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들은 고3때 담임선생님께서 조언을 잘해 주셔서 서울에 있는 대학(숭실대 공대)에 입성했다. 이것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주님의 배려였다. 부모의 방관적인 자녀교육에 비하면 사실상 엄청난 선물인 것이다.

 

 실로 방관에 가깝고 어쩌면 무책임했던 나의 자녀교육방식은 자칫 아이를 무능의 함정에 빠트렸을지 몰랐지만 그래도 아들은 착하게 성장했다. 비록 명문 일류대학에 다니는 똑똑한 아이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지만 초절약형 서울생활로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있고무종교인 나와는 달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모범 대학생이다. 그러하니 나는 아무런 후회도 아쉬움도 없는 것이다.

 

 다만 부모를 닮아 경쟁심이 너무 약해 거친 세상의 파도에 힘겨운 항해를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비록 평범하지만 착한 심성으로 이 세상을 잘 헤쳐갈 것이라고...

 

< 2007. 1. 17 >

 

 

 

 

 

 

 

 

2011. 9. 30 순창군 강천사

 

 

 

 

 

 

2011.9.30 

순창군 강천사

 

 

 

 

 

2011.9.30 

담양 죽림원

 

12.9.28 장흥읍 억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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