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부재(不在)

송담(松潭) 2015. 11. 14. 16:37

 

 

< 1 >

 

롤랑 바르트로부터

 

 

부재(不在),

하지만 부재에는 항상 그 사람의 부재만 있을 뿐이다.

떠나는 것은 그 사람이며,

남아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 사람은 끊임없이 출발,

여행의 상태에 있다.

그의 천직은 철새,

사라지는 것이다.

 

반대로, 그를 사랑하고 있는 나의 천직은

칩거하는 것.

움직이지 않는 것.

그 사람의 처분만을 기다리며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

마치 역 한구석에 내팽개쳐진 보따리처럼

유보된 채

고통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사랑의 부재는 일방통행이다.

그것은 남아있는 사람이 말할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람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나는

부재 중인 너 앞에서만 내 자신이 된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하는 것은

남아있는 나의 자리와 떠나간 너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2004, 30~31

 

 

 

 

 

 

< 2 >

 

 

 

여자는 현실적 사랑, 소유적 사랑, 친구 같은 사랑을 많이 하는 반면, 남자는 낭만적 사랑을 하는 경향이 있다. 낭만적 사랑이 갖고 있는 열정 때문에 남자는 끝난 사랑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친밀감을 형성하는데 더 뛰어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랑이 깨졌을 때 여성은 다른 사람과(사랑이 아니더라도) 나누는 친밀감을 통해서 이별의 슬픔을 남자보다도 더 잘 완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 3 >

 

 프롬은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며, 능력의 문제이지 대상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므로 주는 능력의 문제가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나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모두 주는 능력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랑의 대상은 이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랑의 능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존재한다.

   

< 4 >

 

비눗방울이 터지는 것은 어느 한 순간이다. 사랑도 수많은 순간들이 쌓여서 누적되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며 터진다. 그때 우리는 감정적 파멸을 경험한다. 에로스가 삶을 향한 아름다운 본능이라면 타나토스는 죽음이나 파멸을 향하는 본능인데 사랑은 바로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사랑의 경험은 결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고통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결핍은 충만으로, 고통은 기쁨으로, 다시 기쁨은 고통으로 오고 간다. 사랑을 하면 두 개의 비눗방울이 합쳐져서 더 큰 비눗방울을 만들어 가득함을 주지만, 비눗방울이 터질 때 공허함을 낳기도 한다.

   

< 5 >

 

 여름은 위대하다휠덜린의 싯귀다. 아마도 휠덜린은 여름의 그 향일성(向日性) 때문에, 태양과 빛과 초록의 나무들과 물방울, 무지개, 끊임없는 영원으로 날아오르려는 여름의 속성 때문에 여름이 위대하다고 노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지난여름은 그 향일성 때문에 아름다웠다. 향일성은 태양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내가 도달할 수 없는 태양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아름다운 한 사람에 대한 추구이기 때문에.

 

 

 

 

주창윤 / ‘사랑이란 무엇인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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