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의 <섬> 전문이다. 시 속에 섬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대상이 녹아있지 않기 때문에, 시를 읽는 독자들은 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때문에 시를 읽는 사람들은 저마다 ‘섬’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린다.
시를 읽는 독자마다 짐작하는 의미는 다양하겠지만, 이 시에서 주목해야할 단어는 ‘섬’이 아니라 ‘사이’다. 시 속에 등장하는 ‘사이’는 ‘약간 떨어져 있음’과 ‘가깝게 다가가기’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것을 ‘약간 떨어져 있음’으로 해석한다면, 섬은 고독이나 자기성찰을 의미한다. 바다 위에 외롭게 떨어져 있는 섬처럼, 군중 속을 벗어나 온전히 바라본 자신의 모습이 ‘섬’인 셈이다.
시인은 ‘그 섬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군중 속을 벗어나 오롯이 자신만의 세계를 간직하고 싶다는 뜻이다. 이것은 타아(他我), 즉 ‘다른 나’를 성찰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사이’가 가깝게 다가가기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타자와 관계를 맺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인이 가고 싶은 섬은 사랑이나 그리움을 의미할 것이다. 고독한 존재인 시인은 자신을 채우는 사랑의 세계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듯하다. 사랑은 내 안이나 네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한용운의 시 <사랑의 측량>으로 사랑의 사이를 노래한 작품이다.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와 두 사람의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양을 알려면 당신과 나의 거리를 측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의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이 적을 것입니다
그런데 적은 사랑은 나를 웃기더니 많은 사랑은 나를 울립니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의 거리를 측량하는데,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이 적다는 것은 역설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마음에서 멀어지고, 가까울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이다.
이 시 속에서 거리가 멀 때 사랑의 양이 많다는 것은 채워야할 공간이 많다는 것이고, 거리가 가까울 때 사랑의 양이 적다는 것은 채워야할 공간이 적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해석으로 한용운은 사랑의 양을 그리움의 양과 같은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리움의 양이 많아지는 것처럼, 가까이 있을수록 그리움의 양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한용운은 절대자(님)에 대한 사랑의 거리를 말하고 있다. 그가 추구했던 절대자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다. 님은 갔어도 나에게는 떠나지 않았다. 님(사랑)은 내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창윤/ ‘사랑이란 무엇인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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