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제가 아는 한 여자는 언젠가 겪었던 사랑의 상처가 너무 컸던 나머지 평생 다시는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으리라 굳게 맹세를 했더랬습니다. 그 결심이 어느 정도였냐면 밖에서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호감이 생길 것 같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버릴 정도였죠. 그리곤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나오지 않고 꼭꼭 숨어있는 겁니다. 여인이 그렇게 마음의 싹이 트기 전에 사력을 다해 막으려는 이유는 커지기 전에 자르고 덮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일단 싹이 트기 시작하면 두려움과 결심만으로는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종말과 상처에 대한 이 모든 확실하고 불안하며 어두운 전망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아랑곳없이 피어납니다. 씨앗이 바람을 타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어디라도 날아가 생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암벽 틈이나 낭떠러지 위에서까지 얼마든지 꽃을 피우듯, 사랑은 그렇게 어디서든 피어납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일단 시작되고 나면 누구든 바로 모든 사랑의 단계 중에서 가장 황홀하고 아름다운 ‘처음’의 순간을 피할 수 없게 되죠.
‘다시는 이런 기분 느끼기 싫었는데... 한 줌 재만도 못한 이런 허망한 신기루 따위 결코 다시 맛보기는 싫었는데.’
이석원 / ‘보통의 존재’중에서
* 위 글 제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은 독자가 임의로 정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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