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많은 작가들과 철학자들이 사랑에 대해 쓰고 말하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랑의 여정과 해방의 길이 하나로 겹쳐질 뿐만 아니라 사랑을 빼 놓고는 삶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는 인상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기혼녀인 안나와 젊은 장교 브론스키가 눈이 맞아 시작되는 연애 이야기다. 안나는 결혼생활의 메마름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에서 위험한 연애를 선택한다. 불행에 잠긴 가정들은 사랑에 실패한 흔적들이다. 톨스토이는 ‘나름나름의 불행’과 ‘고만고만한 행복’을 견줘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안나가 불행한 결혼에서 해방되기 위해 선택한 사랑은 실패한다. 안나는 ‘나름나름의 불행’에서 벗어나왔지만, ‘고만고만한 행복’에 이르지는 못한 채 중간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안나는 사랑의 파국이 빚는 비극을 보여준다. 많은 사랑들이 행복이 아니라 비극을 낳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우리는 사랑은 무엇인가, 라고 다시 물을 수 있다.
흔히 결혼을 연애의 무덤이라고 말한다. 결혼은 낭만적 연애가 아니라 날마다 직면하는 팍팍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특이한 타자였던 이가 그 타자성, 혹은 타자성의 신비를 잃고 동일자의 조건 아래로 투신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이다. 이제 결혼과 함께 아내/남편은 사랑의 ‘밀당’을 그치고 두 사람의 관계를 지속이 가능한 우정의 연대로 관계를 바꿔야 한다. 사랑이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뇌에서 분비되는 사랑 호르몬 때문에 벌이는 한바탕 미친 소동이라면 결혼은 이성의 선택으로 지속되는 나날들이 펼쳐지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많은 연인들이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다. 롤랑 바르트는 연인들이 첫눈에 반한 것을 ‘최면’이라고 말한다. 최면에 걸린 사람이 그러듯이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면 얼떨떨한 상태, 의식이 혼미한 채 패닉상태에 빠진다. 사랑하는 자들은 그 얼빠짐 속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사랑은 그 누구의 몫도 아닌 사랑하는 자의 것이다. 사랑은 불안이자 희망이며, 생명의 요청이자 그 응답이다. 누구나 갈망하지만 사랑은 어렵다. 사랑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랑을 갈망하고 사랑에 빠진다. 유행가 중에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눈이라도 마주쳐야지 /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아픔도 두 사람이 만드는 것”(태진아, 2000)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대중가요의 문형은 그 속에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사랑은 어렵다, 라는 전언을 감춘다. 이 노래가 사랑을 받으며 널리 알려진 것은 이 문형의 은폐 차원이 가리고 있는 전언의 힘을 보여준다.
장석주 / ‘사랑에 대하여’중에서
'사랑이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0) | 2017.05.30 |
---|---|
사랑에 대하여 (0) | 2017.05.06 |
하늘과 땅이 다해도 그치지 않는 힘, 사랑 (0) | 2016.10.05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0) | 2016.05.10 |
질투는 사랑의 최종병기 (0) | 2016.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