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유시민이 정치를 떠나는 이유

송담(松潭) 2013. 4. 5. 16:11

 

 

유시민이 정치를 떠나는 이유

 

 

 

 나는 정치의 일상이 즐겁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내가 정치에 뛰어든 것은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낸 책에서 정치를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의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일이라고 쓴 적이 있다. 정치로 성공해서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데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면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의 탐욕과 싸울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였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분이었다. 백범 김구 선생이나 장준하 선생처럼, 정치에 성공하지 못했음에도 성인의 고귀함을 남긴 분들 역시 적지 않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래야 한다거나, 한 번 정치에 몸담은 이상 끝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젠 정치적 자기 검열 없이 정직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정치의 일상이 요구하는 비루함을 참고 견디는 삶에서 벗어나 일상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 야수의 탐욕과 싸우면서 황폐해진 내면을 추스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아니라 내면이 의미와 기쁨으로 충만한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정치적 욕망의 화신이라는 세상의 비난에 맞서 내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싸움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지 의심한다. 정치를 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시간은 언제나 부족했다. 세상의 모든 비극과 불의에 대해서 내 몫의 책임이 없는지 살펴야 하는 게 괴로웠다. 왕의 심기를 살피는 신민(臣民)처럼, 변덕스러운 여론을 언제나 최고의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 정치인의 직업윤리가 너무 무거운 짐으로 느껴졌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위선으로 보였다.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 삶의 존엄을 해치는 것이 정말 훌륭한 일인지 모르겠다.

 

 원래 정치 그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어 정치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던가. 세상을 더 좋게 바꾸려면 정치가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 아래와 정치 너머의 변화가 없다면 정치도 더는 바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직업정치를 떠나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기쁘게 연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눈앞을 가리고 있던 두터운 먹구름이 걷혔다. 해방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유시민 / ‘어떻게 살 것인가중에서

 

* 위 글 제목 유시민이 정치를 떠나는 이유는 독자가 임의로 정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