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는다

송담(松潭) 2013. 3. 10. 21:48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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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내 머릿속으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금언이 떠올랐다.

꽃잎은 떨어지지만 꽃은 지지 않는다.”

그렇다. 꽃잎은 해마다 피고 떨어지지만 꽃은 영원히 지지 않는다. 법정이란 이름의 그대는 꽃잎처럼 떨어졌지만 하늘과 땅이 갈라질 때부터 있었던 본지풍광과 부모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그대의 진면목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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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은 생전에 어린왕자란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어린왕자란 책을 처음으로 내게 소개해준 벗은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한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벗이다. (어린왕자)를 대할 때마다 거듭거듭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읽은 적지 않지만 너에게서처럼 커다란 감동을 받은 책은 많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나한테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이라 하더라도 조금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누가 나더러 지묵으로 된 한 두 권의 책을 선택하라 한다면 화엄경과 함께 선뜻 너를 고르겠다.”

 

 그러고 나서 법정 스님은 어린왕자에 대해 이렇게 노래한다. “어린왕자, 너는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더구나. 이 육신을 허물로 비유하면서 죽음을 두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더구나. ‘삶을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쓰러지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더구나. 이 우주의 근원을 넘나드는 사람에겐 죽음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죽음도 삶의 한 과정이니까. 어린왕자, 너의 실체는 그 묵은 허물 같은 것이 아닐까. 그것은 낡은 옷이니까. 옷이 낡으면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우리의 육신도 그럴 거야. 그리고 네가 살던 별나라로 돌아가려면 사실 그 몸뚱이를 가지고 가기에는 거추장스러울 거다. ’그건 내버린 묵은 허물 같은 거야. 묵은 허물, 그것은 슬프지 않아. 이봐, 아저씨. 그것은 아득할 거야. 나도 벽들을 쳐다볼래. 모든 별들이 녹슨 도르래 달린 우물이 될 꺼야. 모든 별들이 내게 물을 마시게 해줄 거야.”

 

 

 법정스님은 39대 말에 쓴 미리 쓰는 유언에서 이렇게 유언을 남기고 있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나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보고 싶다.”

 

 그럴 리가 없다고 나는 관세음보살상을 돌아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본 것은 봄볕에 아롱이는 신기루였을 것이다. 우리 곁에 왔었던 법정, 인간 박재철은 오두막집에서 자기 손으로 만든 빠삐용 의자를 갖다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의자를 바꿔가며 해지는 광경을 보던 어린왕자의 환생이 아니었을까.

 

 어린왕자 법정은 이제 고향인 별나라로 돌아가고 모든 별들이 녹슨 도르래 달린 우물이 되어 퍼 올리는 생명수를 마시고 태생부터 갖고 있던 억겁의 갈증을 채울 것이다.

 

 나는 비틀거리며 봄빛이 가득한 언덕길을 올라갔다. 어쨌든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헛맹세에, 어느 날 봄날은 오고, 그리고 봄날은 언젠가 갈 것이다.

 

 최인호 / ‘인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