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 삶
자신의 이상형과 결혼한 삶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자신의 이상형과 자신이 꿈꾸던 방식으로 사랑에 빠져,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동화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꿈꾸던 이상형과 사랑에 빠져도 권태기는 오고, 그러다 이별을 맞기도 한다. 반대로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던 사람과 어쩌다 보니 사랑에 빠졌는데, 도리어 잘 사는 경우도 많다. 나의 이상형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던 사람, 나의 환상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맛보지 못했을 즐거움.
포기하면,
다른 길이 보이는 법이니까.
포기하지 않았다면,
절대 보이지 않았을 다른 사람, 그리고 다른 길이.
내 꿈은 작가가 아니었다. 나는 사실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을 놓아버리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포기’는 지는 것이라 배워왔으니까. 포기란 현실과 타협하는 것, 포기는 창피한 것, 포기는 낙오자들에게나 어울리는 말, 세상엔 그런 얘기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 세뇌교육처럼 그런 애기들을 듣고 자란 나는, 포기가 쉽지 않았다. ‘이 길이 아니면 안 돼,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돼,’ 그래서 더 고집을 부려댔다. 아등바등 미련스러울 만큼 포기하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다. 그래야 내가 더 행복해질 거라 믿었으니까.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그 끈을 놓아버리고 나자, ‘낙오’라 생각했던 ‘포기’란 카드를 꺼내들고 나자, 내게 또 다른 길이 열렸다.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 속에서 절대 보이지 않던 길,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즐거움이 나를 찾아왔다. 새로운 사랑, 새로운 일, 내가 이렇게 글을 쓰면서 살 수 있게 된 것도, ‘포기’란 카드를 꺼냈을 때 찾아온 뜻밖의 즐거움이었다. 포기하지 않았다면, 나는 작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포기’를 몰라서, 내가 모르는 수많은 즐거움 또한 놓치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나는 원래 저런 장르의 음악은 별로야, 나는 원래 만화는 안 봐, 저런 사람들은 원래 나랑 안 맞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자신의 취향과 성격, 심지어 자신의 인간관계와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원래’로 규정한 다음, 포기하지 않아서.
그리고 말한다.
세상 참 심심하다.
사람들은 왜 다 내 맘 같지 않을까?
세상 참 내 뜻대로 안 돼.
최적인 답과 내가 원하는 답이 정확히 일치하는 삶만 살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세상이 그렇게,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에나, 만만한 것 같지마는 않아서 말이다. 또한 모르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답이, 언제나, 나에게, 최적의 답인지는.
그래서 나는,
포기 또한 재능이고 용기인 것만 같다.
사랑에 있어서도, 살아감에 있어서도.
내가 원하는 답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적의 답은 어쩌면 ‘포기’안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 최적의 답이 어쩌면
나도 몰랐던 ‘내가 원하는 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강세형 /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중에서
* 위 글 제목 ‘포기하는 삶’은 독자가 임의로 정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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