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혼자 살다 혼자 죽는 곳

송담(松潭) 2012. 7. 3. 10:09

 

혼자 살다 혼자 죽는 곳

 

 

 

 최근에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 명을 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2만 달러를 달성해 이른바 선진국의 범주인 ‘2050클럽에 진입했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말에는 1인 가구가 전체의 25.3%를 차지하여 4가구 가운데 한 가구는 혼자 사는 외톨이가 될 것이라는 통계를 보니 선진국이 되었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닌 것 같다. 5천만 명 가운데 4백만 명이 혼자 사는 외톨이라니.

 

 외톨이가 가장 많은 곳은 대도시의 도심지역이다. 부산 중구의 경우, 1인 가구의 비율이 39.8%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서울은 35.8%1인 가구인데, 그중에서도 관악구 신림동은 74.4%1인 가구다. 대학생과 고시 준비생을 위한 원룸촌이 많은 데다 전철 2호선으로 출퇴근하는 미혼의 젊은이들이 모여들면서 어느새 외톨이들의 집단 서식지가 되었다.

 

 대도시 도심 다음으로 외톨이가 많은 곳은 농어촌 지역이다. 전남, 경북, 강원도 순으로 2829%1인 가구다. 농어촌 지역은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 비율이 20%가 넘고 그 중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이 태반이다.

 

 또 농어촌 노인들 가운데는 치매나 우울증 환자도 많다. 그러니 농촌 노인들의 자살률도 점점 높아진다. 경기도의 경우, 자살한 노인이 2000년에는 301명이던 것이 2010년에는 1102명으로 늘었다. 혼자 죽는 고독사 역시 2000년에는 전체 사망자의 15.5%였으나 2010년에는 23.5%로 늘어났다. 한 해 약 1000명이 혼자 죽음을 맞는다.

 

 외국의 주거 통계를 찾아보니 예상대로 선진국일수록 1인 가구의 비율이 높다. 노르웨이가 38.5%로 가장 높고, 독일이 37.5%, 벨기에가 33%, 프랑스가 32.6%, 영국이 29%, 일본이 27.5%. 미국이 27.1%, 캐나다가 26.8%.

 

 그렇다면 선진국이 과연 행복하고 살기 좋은 나라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무리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선진국 소리를 들어도 외톨이로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면 삶의 질이나 행복지수가 그와 비례해서 높아진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내 경험으로도 독일은 복지와 환경을 비롯한 여러 가지 면에서 부러워할만한 선진국이었으나 개나 고양이를 키우며 혼자 사는 독일의 노인들은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미국은 부자들만 행복한 나라처럼 보였다.

 

 선진국일수록 이혼과 독신 남녀의 증가로 가족의 해체가 일반적 현상으로 나타나 혼자 살다 혼자 죽는 고독사가 이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된 지 오래다. 일본의 경우, 한 해 32000명 가량이 연고자 없이 혼자 죽음을 맞는 무연사(無緣死)로 기록된다.

 

 이른바 무연사회(無緣社會)’가 선진국 일본의 미래상이라니.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근 10만 명의 독거노인들이 고독사의 위험에 방치돼 있다니 무연사회가 남의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이런 통계수치를 훑어보다가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집, 마을, 텃밭, 공터 같은 친숙한 말 대신에 단독주택, 단지, 공한지, 나대지 같은 삭막한 관청용어들을 자주 입에 올리고, 건설회사 이름과 괴상한 외래어가 뒤섞인 00타운, 00, 00하이츠 같은 획일적인 아파트에 갇혀 살면서 마음의 안식처인 고향과 집, 가족으로부터 이탈하여 외톨이가 된 것은 아닐까? 이제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보다 더 많다.

 

 고향 산천에 대한 애틋한 향수라는 구심력보다 출세와 돈벌이라는 원심력이 강할 때 이미 무연사회의 비극은 시작된 것이 아닐까? 가난하고 좁아터진 고향 마을이 감옥처럼 갑갑하게 여겨지고, 가족이 족쇄처럼 자기를 얽어매고 있다고 느끼는 야심찬 젊은이는 지루하고 답답하고 지겨운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미지의 도시로 향한다.

 

 친숙하고 안온한 고향 마을과 집과 가족보다 익명성과 자유와 모험이 보장되는 낯선 도시의 아파트와 원룸을 동경하면서 우리는 이미 외톨이가 될 운명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그가 도달한 곳은 돈만 있으면 마음껏 소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혼자 살고 혼자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의 방식이 일상화된 선진국이라는 유토피아이다. 유토피아란 서양말은 이 세상에는 없는 곳, 즉 신기루를 가리킨다.

 

정지창 / 영남대 독문과 교수

(2012.7.3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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