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심
어느 날 아내는 저에게 사람들이 ‘슬프고 안쓰러워’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 감정을 불교에서는 ‘자비심’이라고 부르는데, 자비는 사랑을 의미하는 자(慈)와 동정을 의미하는 비(悲)가 합쳐진 말입니다. 자비심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필연적으로 죽게 마련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일어납니다. 보다 넓고 보다 깊은 이 관점에서 볼 때 부자도 권력자도 불쌍합니다. 명예를 얻은 사람도,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도 안쓰럽습니다. 그들 또한 언젠가는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를 당하게 되면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재산, 권세, 명예, 미모 등은 아무 쓸모도 없는 것으로 변해버리게 됩니다.
보다 멀고 긴 이 관점.
이 관점을 가진 자비의 사람은 남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욕할 때 그는 그 사람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동정합니다. 그가 보다 멀고 긴 안목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그가 스스로의 몸과 마음에 독을 만들어 퍼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슬프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비심을 가진 사람이 자아를 보호하려는 마음보다는(또는 그 마음과 함께) 타자를 위하고자 하는 마음을 더 많이 갖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비심은 동정심의 일종이고, 동정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것은 나는 강하고 상대가 약할 때 일어납니다. 두 번째 것은 나와 상대가 함께 약할 때 일어나는데, 자비심은 이 두 번째 동정의 다른 이름입니다. 바꿔 말하여, 자비심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불쌍하기 때문에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에 비해 일반적인 동정은 자기는 불쌍하지 않는 상태에서 남만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자비심으로서의 동정은 일반적인 동정보다 훨씬 아름답고, 훨씬 고귀하며, 훨씬 우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성경 말씀을 저는 “선행을 하되, 그것을 강자의 약자에 대한 동정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가 동일한 약자라는 의미를 배경에 두고 하라.”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그런 동정 , 이해, 자비, 사랑의 마음은 남들에게 이익을 주기 이전에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참다운 이익의 꽃을 피웁니다. 그런 동정, 이해, 자비, 사랑이 훌륭한 것은 그것이 남들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이 보다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남들에게 이익이 주어지기 이전에 자기 자신부터 이롭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 것처럼 자비심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은 자기 자신의 ‘에고’를 약화시킵니다. 그 다음, 에고의 약화는 집착의 약화, 욕망의 약화, 긴장의 약화를 유발하고 이 자아의 약화로부터 남을 향한 동정이 생겨납니다.
이런 흐름을 통해 우리는 자비심을 일으키는 동안 거친 세파를 뚫고 나오는 동안 얼어붙었던 나 자신의 마음에 봄 햇살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내 마음의 긴장, 경직, 탐욕, 집착이 조금씩 조금씩 녹아내리게 됩니다. 이 ‘해빙’의 다른 이름이 마음의 여유로움, 마음의 한가함, 마음의 부드러움입니다. 그리고 여유, 한가함, 부드러움을 가진 마음은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김정빈 /‘아들에게 배웁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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