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존귀해질 수 있다
돈에 대한 지식에는 여러 가지 차원이 있다. 돈의 흐름을 잘 읽어내는 안목, 여러 투자처들을 섭렵하면서 돈을 불리는 감각, 돈벌이가 될만한 일을 식별해내는 직관, 들어오는 돈을 알뜰하게 관리하는 수완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갖추고 있다면 경제적으로 윤택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돈에 대한 지식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하고 본질적인 차원이 있다. 돈이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그동안 돈을 최대한 획득하는 방법에만 골몰하느라, 그 돈으로 삶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는 소홀했던 편이다. 그 배경에는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것은 커다란 축복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근면과 성실로 이뤄낸 자랑스러운 성취다. 그러나 너무 짧은 시간 동안에 부가 막대하게 불어나면서 삶의 균형이 무너졌다. 상승 이동의 기회가 무한히 열리는 듯한 상황에서, 우리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에 매달려 왔다. 그 결과 한국인의 노동 시간은 세계 최고가 되었다. 한강의 기적은 개발도상국의 귀감이지만, 그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적지 않다.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식구들끼리 대면하는 시간은 부족하여 가족관계가 서먹하다.
그보다 더욱 심각한 대가가 있다. 삶과 사람의 가치가 점점 돈으로만 환산되고 평가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노동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상황에서는 사람을 어느 정도 귀하게 여겼다. 그런데 냉전 해체 이후 1990년대에 접어들어 발흥한 ‘금융자본주의’가 범지구적인 지배력을 강화하고, IMF 금융위기 이후 2000년대에 그 위세가 한국에서도 맹렬해지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났다. 돈이 돈을 낳는 세상에서, 부가가치의 원천은 사람이 아니라 돈으로 여겨진다. 사람의 가치는 점점 희미해진다.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내가 가진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 이는 누구인가?” 여기에서 돈을 빼놓고서 따져 보아야 한다. ‘내가 줄 수 있는 것’과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 선명하게 떠오른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그 목록이 길게 나올수록 유능한 사람이다. 타인이 필요한 것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돈 이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줄 수 있을까? 상대방이 갖고 싶어 하는 어떤 물건을 선사할 수도 있다.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물질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나의 지식이나 지혜를 전해줄 수도 있다. 배움의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에게 세상과 인생에 대한 깨우침을 나눌 수 있고, 어떤 고민이나 어려움에 빠진 친구에게 조언을 건넬 수 있다. 누군가는 나의 시간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자기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달라거나 그냥 자기와 함께 있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의 몸을 원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튼튼한 근력, 능란한 손재주, 뛰어난 운동 실력, 성적인 매력 등이 상대방의 어떤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위에 나열한 것들은 내가 타인에게 줄 수도 있고, 타인이 내게 줄 수도 있다. 실제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그러한 것들을 넉넉하게 주고받는다면 삶은 기쁨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별로 그렇지 못하다. 내게 뭔가를 원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바라는 것이 별로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별 볼일 없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한 가지 중요한 원인으로 돈이 지목된다.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버릴수록 사람의 가치는 평가절하된다. 돈에 매달릴수록 우리는 무능해진다. 통장의 잔고로 측정되는 삶은 초라하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어쩌면 개처럼 벌기만 하다가, 정승 노릇을 어떻게 하는지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경제 규모로 세계 십 몇 위에 오를 만큼 풍요로워졌는데도, 여전히 개처럼 돈벌이에만 골몰한다. 돈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좋은 것이 되려면 ‘좋은 삶’이라는 지향과 맞물려야 한다. 돈의 힘을 사회적으로 제어하면서, 이로움과 의로움이 양립되는 벡터를 끊임없이 모색할 때 진정한 부(富)를 향유할 수 있다.
왜 돈의 인문학인가. 나를 끊임없이 모독하는 힘에 굴복하지 않는 일은 어디에 있는가. 천박함과 난폭함으로 치닫는 세계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항체를 갖고 싶다. 생애의 드넓은 기쁨을 누리는 시공간을 만나고 싶다. “가난한 사람은 책의 힘으로 부유해질 수 있고, 부자는 책의 힘으로 귀해질 수 있다.” 타이완의 어느 서점에 붙어 있는 문구다. 인문학은 삶의 부유함과 존귀함을 발견하는 공부다. 돈과 사람의 관계를 되묻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가치의 근원에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인생을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 살아가는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다.
김찬호 / ‘돈의 인문학’중에서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비심 (0) | 2012.01.31 |
---|---|
금욕을 통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0) | 2011.12.24 |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정말로 내게 필요한 것인가 (0) | 2011.09.10 |
자비(慈悲)의 정신 (0) | 2011.07.14 |
니토(泥土) 위에 쓰는 글 (0) | 2011.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