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정말로 내게 필요한 것인가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잠시 세상에 내려온 천사 미하일이 자신을 추위에서 구해준 구두 수선공의 집에서 먹고 자며 일하게 된다. 어느 날 한 부자가 고급 가죽을 가지고 와서 으시대면서 그것으로 자기의 장화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다. 구두 수선공은 그 일을 미하일에게 맡겼다. 그러나 그가 만든 것은 엉뚱하게도 굽 없는 슬리퍼였다. 그것을 본 수선공이 놀라서 당황하고 있을 때 부자의 하인이 황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주인 나리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 마차 안에서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는 전갈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장화가 필요 없고 죽은 사람에게 신기는 슬리퍼를 만들어 달라고 다시 주문했다. 미하일은 이미 완성해놓은 슬리퍼를 툭툭 털어서 하인에게 건네주었다.
부자는 왜 고급 가죽으로 된 장화를 원했을까. 마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굳이 튼튼한 재질의 신발이 없어도 될 텐데 말이다. 구두 수선공에게까지 이런 가죽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뽐낼 정도라면, 완성된 장화를 신고 다니면서 얼마나 티를 낼지 짐작이 된다. 말하자면 ‘과시적 소비’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보통 사람들이 감히 소지할 수 없는 ‘명품’ 장화에 집착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선망에 종속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장화 이외에도 여러 가지 희소한 물건들을 사 모았을 듯하다.
톨스토이는 그 소설에서 말한다. “ 그 부유한 손님은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지 못했다. 사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살아서 신을 장화인지 아니면 죽어서 신을 슬리퍼인지, 그것을 아는 것은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 이 말을 화두로 삼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정말로 내게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인가. 설령 다른 사람들의 욕망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 욕망은 나에게 정당한가, 그것은 삶의 필요에 배반하지 않는가. 재물의 외피로 환원되지 않는 자아를 직면할 때, 우리는 자신이 정말로 누구인지 질문하기 시작한다.
김찬호 / ‘돈의 인문학’중에서
* 타인에게 종속된 욕망
지하철을 탈 때 승객들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경우에는 나도 별로 자리에 집착하지 않는다. 반면에 주변 사람들이 서로 앉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으면, 몸이 별로 피곤하지 않아도 빈자리가 생기면 먼저 차지하고 싶어진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욕망이 타인의 욕망에 종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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