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 내일은 너
지난여름 나는 스웨덴의 공동묘지 두 군데를 관광했다. 유명한 현대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광활하고 아름다운 묘지들이었다. 산 자들의 지척에 죽음이 있음을 온전히 이해한 영혼이 깨인 건축가에 의해, 손 안 댄 듯이 손 댄 거룩하되 따사로운 공간이었다. 고대에서부터 이루어져 온 하고 많은 역사 유적들이 장엄하나 쓸쓸한 인간 한계를 확인시키는 것과는 달리, 내게 그 공동묘지는 죽음의 힘으로 마침내 공평무사해져서 평화를 되찾는 인간들의 거처로 비쳤다.
거기 한 구석 어디서 한나절 졸고 나면 심신이 두루 때를 벗어 신선이 될듯도 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말을 건네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 수 있는 공간이 그 공동묘지였다는 말이다. 나는 그곳에서 죽은 자를 조상한 것이 아니라 죽은 자로부터 쓰디 쓴 삶을 위로받았다 하겠다.
그 공동묘지 둘 중 하나에 있었지 싶다. 작디작은 채플이었다. 땅속에 묻히기 전에 다시 한 번 이별하는 그 처소의 입구에 해독할 수 없는 스웨덴어 문장이 동판에 새겨져 붙어 있었다. 통역을 불러 물어보았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
통역의 입에서 간단히 이 말이 떨어졌다.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사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그 통절한 메시지가 어두운 내 눈을 찔렀던 것이다.
이 글은 『샘이깊은물』 주간이었던 설호정 씨가 쓴 「삶 그리고 마무리」라는 글의 한 부분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는 순간, 심장이 딱 멎는 듯했습니다. ‘맞아!’ 나도 모르게 입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왜 이 평범한 진리에 설호정 씨는 눈이 찔린 듯했으며, 나는 심장이 멎는듯했을까.
그것은 죽음을 나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죽음을 진정으로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죽음을 잊고 삽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만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듯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죽은 이들의 저 소중한 가르침,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말 속에는 열심히 후회 없는 삶을 살라는 교훈의 의미가 더 큽니다. ‘나만 죽는 줄 아느냐, 두고 보자, 너도 죽는다’는 힐난의 의미보다는 , 언젠가는 누구나 다 죽기 때문에 항상 죽음을 잊지 말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라는 당부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매일매일의 삶에 충실할 때 죽음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하루를 충만히 사는 것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준비입니다.
(....생략...)
정호승 /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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