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여름밤의 환상(幻想)
골짜기 야생차의 향기
8월이다! 선들바람이 꽃핀 배롱나무 우듬지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간다. 억수장마가 계속되던 지난 달, 어느 지인께서 석곡에서 채취한 야생차를 보내오셨다. 한파 속에 살아남은 참 귀한 차다! 4월에 채취한 차를 한 번 덖어 한 달여 동안 숙성시킨 후에 다시 가마에서 볶았단다. 등산용 차 물병도 동봉했다. 고소한 맛에 보내주신 분의 향기가 되살아난다. 마치 초의선사가 다산과 황상에게 보낸 차 같다. 다산의 제자인 황상은 정황계첩(丁黃契帖)으로 우리에게 가슴 뭉클한 드라마를 연출한 분이다.
다산과 황상의 만남
1801년 40세에 강진으로 유배 간 다산(1762~1836)은 그 이듬해 10월, 15살의 황상(1788~1863)과 첫 대면한다. 과거를 볼 수 없었던 미천한 신분의 황상은 다산이 문사(文史)공부를 권하자 이를 사양한다. “선생님! 제게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너무 둔하고, 앞뒤가 꽉 막혔으며, 답답합니다.” 다산은 삼근계(三勤戒)를 황상에게 내려주며 말한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너한테는 없구나. 외우는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하고, 글 짓는 것이 날래면 글이 들떠 날리고,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친 것이 폐단이다. 둔한데도 계속 천착하는 사람은 그 흐름이 성대해지고, 답답한데도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마음을 확고하게 잡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면 못할 일이 없다. 마음을 다잡아 부지런히 노력해라.” 황상은 오직 스승의 말씀을 좆아 모범이 되는 옛 시를 읽고, 책을 읽고, 초서하는 동안 3년 반 만에 정약전도 감동할 정도의 문장가가 되었다. 다산도 황상을 매우 아껴 나들이 갈 때면 늘 그를 데리고 다녔다. 장남 학연이 강진에 왔을 때 그와 함께 두륜산 정상까지 오른 이도 황상이었다. 황상이 시를 지어오면 다산은 그 시에 차운(次韻)해서 시도 써주었고, 스스로 제자 중에서 황상을 얻은 것을 매우 기뻐했다.
정황계첩(丁黃契帖)의 긴 여운
1818년 10월, 57세의 다산이 18년 만에 꿈에 그리던 마재 집으로 돌아온다. 다산에게 함께 배우던 황상의 동생 황지초가 마재로 스승을 찾아가자 그간 한 번도 연락을 취하지 않았던 무심한 제자 황상에게 ‘한 길로 매진하는 것도 좋지만, 도를 품고 세상을 경영하는 온축도 필요하다’며 편지를 보내 넌지시 나무란다. 사실 황상은 다산을 처음 만날 때처럼 둔한 병통이 있었지만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1836년 2월, 다산이 강진을 떠난 지 무려 18년이 지나서야 황상은 스승을 마재로 찾아간다. 이승에서 마지막 한 번 스승님의 얼굴을 뵙고자 회혼례(回婚禮)에 맞춰 상경했지만, 다산은 이미 병세가 위중했다. 15살 소년 때 처음 만난 스승을 쉰을 앞둔 중늙은이가 되어 다시 뵙게 된 것이다. 삭정이처럼 사위어가는 스승에게 굵은 회한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다산도 반가워서 제자의 투박한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며칠간 회포를 풀고 작별을 고할 때, 스승은 혼미한 중에도 제자 손에 접부채와 피리와 먹을 선물로 들려주고, 시공부에 참고할 운서(韻書)도 함께 내어준다. 어쩌면 살아생전 마지막이 될 줄도 모르는 순간이다. 우려대로 다산은 황상이 귀가 중에 세상을 뜨고 만다. 부고를 들은 황상은 걸음을 돌려 스승의 장례를 끝까지 지키고, 상복을 입은 채 강진으로 되돌아온다.
1845년 3월, 스승의 기일에 맞춰 황상은 다시 스승의 무덤 앞에 섰다. 18일을 꼬박 걸어 강진에서 지금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묘소에 도착한 황상을 다산의 장남 학연은 알아보지 못했다. 함께 두륜산을 오른 사이건만 10년간 소식이 끊겼고 황상도 환갑을 앞둔 늙은이였기 때문이다. 황상의 손엔 10년 전 스승께서 작별 선물로 준 부채가 들려 있었다. 아들과 제자는 서로 붙잡은 손을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그 두터운 뜻이 사무치게 깊어 심히 떨리는 손으로 학연은 아버지가 황상에게 임종 전에 선물한 부채 위에 감사의 시를 써 준다. 그리고 이제부터 정(丁)씨와 황(黃)씨 두 집안이 자손 대대로 서로 잊지 말고 왕래하며 오늘의 이 아름다운 만남을 기억하고자 문서를 써서 맹세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정황계첩(丁黃契帖)이다. 대를 이은 사제지간의 감동적 휴먼 스토리다.
한 여름 쉬어가는 여유
노르웨이의 참혹한 테러와 중부권의 물 폭탄으로 주변이 어수선하다. 다산 선생은 ‘걸명소(乞茗疏)’에서 ‘아침 햇살에 비로소 일어나 차를 마시면 뜬 구름이 맑은 하늘에 희게 보이고, 낮잠에서 처음 깨어나 차를 마시면 밝은 달이 푸른 시냇물에 어른거리네.’라고 하였다.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도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서 이렇게 음유했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최인호도 항암치료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펴냈다.
부조리한 일상과 신화적 구조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주인공 K가 사흘 동안 또 다른 K로 변신하여 부조리한 이 세상의 배역과 역할에 간난신고한 끝에 인간본성을 되찾는 줄거리다. 주인공을 통해 우리는 이 사회의 신화적 구조를 읽는다. 신화는 부조리한 모든 것과 작별한 뒤라야 인간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부조리한 일상과 신화에 대한 연결구조는 마치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와 닮았다. 저승 왕은 시지프에게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형벌을 내린다. 이 바위는 그 자체의 무게 때문에 산꼭대기에서 다시 굴러 떨어지곤 한다. 시지프는 영원히 쉴 수 없도록 만드는 고통 속에서도 정상에서 되돌아 내려오는 걸음이 주는 잠시 동안의 휴식을 즐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시지프는 신들을 부정하며 바위를 다시 들어 올리는 한 차원 높은 성실성을 발휘한다. 물론 신화 속에는 이밖에도 많은 부조리가 등장한다. 탄탈로스는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지만 물을 마실 수 없고, 다나오스의 딸들은 독에 물을 채워야하지만 밑 빠진 독이라 물을 채울 수 없다.
알베르 까뮈는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라고 했다. 인간이 부조리와 대처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존재라면 그 대안으로 사랑을 제시한다. 부조리와 정면 대결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하는 사랑은 동지애와 우정 같은 폭넓은 의미의 ‘인간관계’가 될 것이다. 치열한 삶을 사는 이유도 여기 있을 않을까?
‘비아 락테아(Via Lactea)’
올림포스 산 신들의 무수한 궁전 한 가운데는 큰 길이 하나 툭 터져 있는데 이 길은 밤중이면 땅에서도 보인다. 이 길이 바로 은하수라고 부르는 ‘비아 락테아(Via Lactea)’다. 헤라여신의 젖줄기가 굳어진 길(Milky way)이다. 소년시절 은하수를 쳐다보면 미래가 꿈처럼 펼쳐진 듯했다. 견우와 직녀가 1년에 단 한번 미리내를 건너 해후한다는 칠석이 6일이다. 칠석물은 바로 이들의 간절한 만남이 울음 비가 되어 내린다던가? 그리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무엇이라고 여겼을까?
세계의 중심이라는 델포이(대지의 자궁)에 그 유명한 아폴론 신전을 지어 헌납한 트로포니오스는 아폴론에게 포상을 요구했다. 그리스 신들 중에서 가장 멋지고 지혜로웠던 아폴론은 그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엿새 동안 이 세상의 온갖 즐거움을 다 누리고 살면 상을 베풀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아폴론이 시키는 대로 하자 이레째 되는 날 밤에 상을 받았는데, 그것은 ‘자다가 맞는 죽음’이었다. 신의 뜻을 전하는 신탁으로 유명한 태양신 아폴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 자다가 맞는 죽음이라니?
마음을 여는 지혜
8월,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들 있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한 번쯤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크로노스가 누구인가? 바로 시간이다. 크로노스가 한 손에는 모래시계를, 또 다른 손에는 낫을 들고 ‘시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것을 소멸 시킨다’고 암시한다. 신화 속에는 어떠한 금기나 도덕도 없다. 인간이 만든 신화일진대 인간사 모든 형태의 삶이 다 꿈틀거린다. 특히 인간관계나 사랑의 모습이 적나라하다. 이 여름 부조리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신화를 되새김하면 신의 마음을 얻듯이 인간의 마음을 여는 지혜를 찾지 않을까?
염천(炎天)도 처서(23일)가 지나면 백로가 곧 다가오니 한풀 꺾이리라. 달빛을 머금은 바닷가에서 몰아지경의 춤사위를 그린 미국태생 윈슬러 호머의 ‘여름 밤’으로 이만 인사드립니다. 9월에 다시 뵙겠습니다.
< 2011. 8.1 >
정 순 영 엮음 / 의정부우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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