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청산도에서 보내는 편지

송담(松潭) 2011. 7. 29. 12:53
 

 

청산도에서 보내는 편지





오늘은 8월 5일입니다. 그 동안 손꼽아 기다려 온 청산도 여행을 가는 날입니다. 어제부터 이것저것 챙겨 두었는데 아무래도 빠진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부족함의 행복까지도 느껴지는 아침인데요. 잠을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차에 태웠습니다. "엄마 아빠랑 놀러 가는 거야?" 좋아하는 늦둥이도 다시 잠에 취해 꾸벅거립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우리 부부는 눈빛을 교환하며 웃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교환한 눈빛이다 싶어 잠시 머쓱해졌습니다.


떠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 같습니다. 근심 걱정은 어디에도 붙어 있지 않습니다. 머리가 희끗거리는 할아버지가 손자와 다정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고, 한껏 멋을 낸 젊은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닙니다. 청산도행 배를 기다리고 있는 완도항의 모습입니다. 뚜우~~ 뱃고동 소리가 들려옵니다. 갑자기 사람들의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합니다.


바다!

자꾸만 멀어지는 육지의 모습들이 까만 점으로 남을 때 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어제까지 바동거리며 살아온 나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갑자기 연민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아직 만난 적이 없는 당신도 거기에 끼어 있습니다. 햇살에 일렁이는 파도는 황금빛으로 되살아납니다. 때로는 금빛 물고기도 되고 도마뱀도 되어 바다 위를 뛰어 다니다가 스르르 사라집니다. 갈매기도 한참을 따라오다가 돌아갔습니다.


물안개가 피어오른 청산도는 한 폭의 산수화 같습니다. 그 사이를 미끄러지듯 배가 접안을 했습니다. 선창에 도착하자 소란스러운 경적소리와 호각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마터면 육지의 모습들을 영영 잊어버린 채 환상에 쌓여 있을 뻔 했답니다. 당신 생각도 잊어버린 채 말입니다.


짐을 풀자마자 바다로 뛰어 들었습니다. 먼 바다에 떠 있는 섬이라서 그런지 수온이 차갑습니다. 냉.온탕을 하듯 백사장과 물속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치면 아름드리 해송이 만들어 낸 그늘에 누워 쉬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간혹 꿀맛 같은 단잠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조개잡이를 하였는데 호미로 모래를 살살 긁어대면 뭔가가 툭 하고 걸리는데 그게 바로 조개였습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새파아란 수평선 흰구름 흐르는......오늘도 즐거워라....조개잡이 하는 사람들....' 막 낙조가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황금빛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온통 붉은색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잠시 멍한 기분으로 서 있었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몽돌해변에 앉아 파도에 씻기는 조약돌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을 보았습니다. 별이 어찌나 많던지 곧 쏟아져 내릴 것 같았습니다. 북두칠성의 국자가 바로 머리 위에 있었어요. 평소에 희미하던 4번째 별도 또렷하게 보였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맑은 밤하늘입니다.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이런 모습들을 같이 볼 수 있었으면..... 물론 거기에는 아직 만난 적이 없는 당신도 끼어 있습니다.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행복한 꿈을 꾸십시오.




아내가 조개를 씻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자그륵 자그륵...... 그렇게 행복을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어제 캔 조개의 맑은 국물이 해장국 역할을 톡톡히 해 냈습니다. '거 참 시원하다!' 했더니 늦둥이도 따라 했습니다. 밥상머리에 때 이른 웃음이 터졌답니다.


바다에 뛰어들기는 이른 시각이라 섬 구경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차를 몰고 보적산 범바위를 보러 갔습니다. 마을을 지나자마자 산길 도로가 나 있었어요. 승용차로 오르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어 보였지만 그래도 가 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나무가 별로 없는 민둥산이었습니다. 멀리 능선까지 풀 숲으로 난 길이 훤히 보였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탄성을 질러 댔습니다. 능성이를 타고 계속된 길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고 우리는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우뚝 솟아있는 바위가 나타났습니다. 범바위라고 합니다. 물론 생긴 모양이 호랑이를 닮아서 지어진 이름이겠지만 형상보다는 민둥산에 덩그라니 놓여있는 모습만으로도 빛나 보였습니다. 주위에 견줄만한 것이 없었으니까요. 울긋불긋 발라 논 마을지붕과 굽이굽이 잘 이어진 계단식 논들이 끝나는 지점에, 무채색으로 정지된 바다는 소꿉놀이를 하는 그림 같아 보였습니다. 범바위에서 내려다 본 청산도의 풍경입니다.


더위가 밀려올 쯤 도착한 곳이 '서편제 촬영지' 였습니다. 아름드리 노송들이 있는 언덕배기에 촬영을 기념하는 몇 개의 시설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를 유혹하는 곳은 그 옆에 있는 황톳길입니다. 유봉의 선창에 화답하는 송화, 머뭇거리다가 뛰어든 동호.......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삶의 애환을 승화시킨 이들이 뛰어 놀던 곳입니다. 천천히 한발 두발 걸어 봅니다. 누군가와 어울려 멋진 놀이판을 만들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거기에는 물론 당신도 끼어 있습니다.


다시 지리해수욕장의 밤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기로 하였습니다. 전복보다도 귀하다는 손바닥만한 자연산홍합을 구해 놓았거든요. 물론 가격은 비싸지 않습니다. 이놈들을 안주 삼아 밤바다의 이야기를 들어 볼 작정입니다. 당신도 간혹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시겠어요?


 하재남 / 순천우체국 우편집중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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