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어린 왕자

송담(松潭) 2009. 12. 25. 18:31

 

어린 왕자



 여섯 살 때 나는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보아 뱀을 그려 어른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어른들은 왜 쓸데 없이 모자를 그렸냐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림 그릴 시간이 있으면 공부나 하라고 충고했습니다.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 꿈을 버렸습니다. 그 대신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습니다. 비행기를 몰고 세계의 여기저기를 날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비행기가 고장나서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마실 물도 일주일치밖에 없었습니다. 첫날 밤을 보낸 뒤, 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잠이 깼습니다.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나 싶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에서 아이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 그렸던 뱀을 그렸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보아 뱀이잖아. 싫어! 양을 그려 달란 말이야.”  나는 그 아이가 내 그림을 알아보는 것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나는 양을 그려 본 적이 없었지만 할 수 없이 양을 그렸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양이 병들었다며 다시 그리라고 했습니다. 몇 번 퇴짜를 맞은 뒤, 나는 구멍이 뚫린 상자를 아무렇게나 그렸습니다. 그제야 아이는 상자 속에 잠든 양을 그렸다며 좋아했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에서 왔니? 집이 어딘지 말해 봐라.” 아이는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나는 하늘의 작은 별에서 왔어.”  그 별은 지구에서도 보였습니다. 별의 이름은 소혹성 B-612호 이고, 아이는 그 별의 어린 왕자였습니다.


 어린 왕자는 별에서 살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내 별은 굉장히 작아. 기껏해야 집 한 채만 한 크기야. 해가지는 모습을 하루에도 마흔 네 번이나 볼 수 있어. 내 별은 크게 자라는 나무가 살 수 없는 곳이야. 별이 하도 작아서 나무를 그대로두면 별이 터져 버리거든. 그래서 나는 바오밥 나무의 싹들이 돋아나면 뽑아 버려.”  어린 왕자는 별에는 작은 화산 세 개와 장미 한 송이가 있다고 했습니다. 장미는 어린 왕자의 별에 날아온 씨가 싹을 틔운 꽃입니다. 스스로 해님과 함께 태어나서 예쁘다며, 아침 식사로 시원한 물을 달라고 했습니다. 또한 바람막이와 둥근 유리 덮개를 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가 하면, 자기한테는 가시가 많아 호랑이가 와도 무섭지 않다고 했습니다. 장미는 불평 많고 잘난 척만 하는 꽃이었던 것입니다.

 

 어린 왕자는 장미를 무척 사랑했지만 자신의 별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떠나는 날 아침, 어린 왕자는 별을 말끔히 청소했습니다. 작은 화산 세 개의 그을음을 털어내고, 바오밥 나무의 싹을 뽑아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미에게 물을 줄 때는 눈물이 쏟아질 뻔했습니다. “안녕, 잘 있어.” 어린 왕자는 장미에게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내가 어리석었어요. 미안해요. 행복하갈 빌겠어요.” 장미는 어린 왕자에게 사과하고는 재빨리 말했습니다.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가, 떠나기로 마음먹었으면.” 장미는 자기가 우는 모습을 어린 왕자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만큼 자존심이 강한 꽃이었습니다.


 또한 어린 왕자는 별을 떠나 여행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지구로 오는 동안 여러 별들에 잠깐 들렀습니다.


 첫 번째 별에는 임금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어린 왕자가 나타나자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오, 나의 신하가 한 사람 왔구나!” 임금님은 모든 사람을 자신의 신하로 여기는 모양이었습니다. 임금님은 명령하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걸핏하면 명령을 내렸습니다. 어린 왕자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해.”


 두 번째 별에는 자기가 몹시 잘났다고 여기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오, 저기 나를 우러러보는 사람이 오는구나!” 박수를 받기 좋아하는 사람은 어린 왕자한테 부탁했습니다. “제발 나를 존경해 다오, 나를 우러러보아 달란 말이야.” 어린 왕자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해.”


 세 번째 별에는 술꾼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지금 뭘 하고 계세요?” “술을 마시고 있단다.” “술은 왜 마셔요?” “부끄러움을 잊어버리려고 마신단다.” “무엇이 부끄러운데요?”

“술을 마시고 있는 게 부끄러워서.” 어린 왕자는 그 별을 떠나며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해.”

(.... 생략....)

 여섯 번째 별은 이전 별보다 열 배나 컸습니다. 이 별에는 두꺼운 책을 쓰는 지리학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지리학자에게 이제 어느 별을 가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지구라는 별에 한번 가 봐. 좋은 별이라고, 무척 이름 높은 별이야.” 그리하여 어린 왕자가 일곱 번째로 들른 별이 지구였습니다.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여우를 만났습니다.

“안녕! 나하고 놀지 않겠니?”

여우가 말했습니다.

“나는 길들여지지 않아서, 너하고 놀 수 가 없어.”

“그래? 길들여진다는 게 뭐니?”

그것은 관계를 맺는 거야.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이가 되는 거지.”


 나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겁게 지냈습니다. 사막에서 사고를 당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마실 물이 떨어져 목이 말랐습니다. “우리, 우물을 찾아보도록 하자.” 나는 어린 왕자와 함께 우물을 찾아 나섰습니다. 넓은 사막을 몇 시간 동안 터벅터벅 걸었습니다.  어느 새, 날이 저물어 밤하늘에 별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왕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아저씨, 별이 아름답지? 별은 어딘가에 눈에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어서 그래.”

어린 왕자는 모래 언덕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사막도 아름답지? 사막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어서 그래.”

“그래,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별이든 사막이든, 아름답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우리는 밤새도록 걸어 새벽녘에야 우물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 마른 목을 축였습니다. 어린 왕자가 말했습니다. “내일은 내가 지구에 온 지 일 년이 되는 날이야. 아저씨는 빨리 비행기를 수리해. 그래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잖아. 내일 저녁때 이곳에서 다시 만나.”

 다음 날, 나는 비행기를 다 고쳤습니다. 이제는 돌아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나는 어린 왕자와의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저녁때 우물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어린 왕자는 우물 옆의 낡은 돌담 위에 힘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아저씨, 비행기 다 고쳤지? 집으로 갈 수 있게 되었네? 나도 오늘 내 별로 돌아가. 뱀이 나를 도와주기로 했거든. 자기가 물면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갈 수 있대.”

나는 돌담 밑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노란 뱀이 기어와 어린 왕자의 발목을 물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린 왕자에게 달려가 그 몸을 안았습니다. 어린 왕자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간신히 말했습니다.

아저씨, 안녕. 밤이 되면 하늘을 쳐다봐. 내가 많은 별들 가운데서 웃고 있을 거야.

어린 왕자는 그렇게 고향으로 떠났습니다.

나는 어린 왕자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 생 텍쥐페리(1900~1944)

 

생 텍쥐페리는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나 생 모리스 드레망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919년 군에 입대하여 비행 훈련을 받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용기 조종사로 출전하였고 1943년 <어린 왕자>를 발표했으며 1944년 7월 31일 정찰 비행 중 행방불명되었다.

 

 어린 왕자는 집 한 채만 한 작은 별에서 왔다. 그 별에는 작은 화산 세 개와 장미 한송이가 있었다. 어린 왕자는 장미를 사랑했지만 자신의 별을 떠나 여행을 시작했다. 명령하기를 좋아하는 임금님, 자기가 몹시 잘났다고 여기는 사람, 술꾼, 사업가, 가로등지기, 지리학자 등의 별을 차례로 방문했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어른들에게 실망하고 만다. 그리고 일곱 번째로 들른 지구에서는 여우를 만나, 관계를 맺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또한 정말 소중한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어린 왕자>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신현배 엮음 / ‘5000년 세계 고전명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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