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 샤머니즘, 문화
한(恨)을 한때는 퇴영적인 국민정서라 했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해석을 잘못한 거예요. 인본의 한을 ‘우라미’라고 하는데 우라미는 원망이에요. 원망이 뭐냐, 복수로 가는 거예요. 일본의 원망이나 복수가 일본예술 전반에 피비린내로써 나타나는 겁니다.복수고, 그게 어디로 가냐면 일본의 군국주의로 가요.
우리의 한(恨)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시지만, 내가 너무 없는 것이 한이 되어서... 말하자만, 내가 뼈가 빠지게 일해서 땅을 샀다. 내가 무식한 것이, 낫 놓고 기역자 모른 것이 너무나 한이 되어서 내 자식은 공부시켰다. 미래지향이거든요. 소망이거든요. 이게 절대로 퇴영적인, 부정적인 정서가 아닙니다. 어떤 때는, 버선목을 뒤집어 보일 수가 없지만, 판소리를 듣고 있을 때 판소리 어느 대목에서 저게 바로 우리민족의 모습이다, 그런 것을 느낄 때가 있어요.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표현을 합니까. 언어로써는 표현이 안 되죠. 어떤 교감, 순간적인 교감에서 그런 것을 느끼는데. 돌아가서, 샤머니즘의 재래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우리가 샤머니즘을 오늘 젊은 사람이나 지식층에서 어떻게 바꿨냐 하면.... 누가 하나 무속을 연구한다고 온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무속만을 연구하면 안 된다, 샤머니즘 자체를 연구해라. 그런데 어떻게 보냐 하면, 무당, 그것만을 샤머니즘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절대 무당의 행사가 샤머니즘이 아니에요.
샤머니즘은 어떤 면에서는 생명주의입니다. 어디서 볼 수 있냐 하면, 큰 나무에 제사를 드리잖아요. 그것은 생명에 대한 존중이에요. 사람은 오십 년, 백 년밖에 못사는데 이 나무는 천 년을 살았다. 이 나무가 사람과 마찬가지로 능동적인 생명체다. 천 년을 살았다면 이 천 년의 세월 속에서 이 나무는 어떤 노하우가 있는가, 이것을 교신해 볼 수는 없는가, 그런 소망이거든요. 그러니까 자연이 위대한 것을 다 숭상한 것이 샤머니즘이에요.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에요. 생명의 능동성에 대한 교감, 교통 이것을 원하는 거고. 무속도 영혼이 있다. 영혼이 능동성이죠. 그렇다면 그 보이지 않는 영혼이 어디, 이 우주 어디에 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부모, 우리 형제, 우리 남편을 어떻게 교신할 수 없을까, 영혼끼리. 이 소망이 무속이거든요. 그게 오늘날 과학에서도 생명의 신비를 찾고 연구하고 있잖아요. 그것은 과학이고, 교신하려고 하는 그 자체는 미신이다. 이게 좀 안 맞는 거 아니에요. 소망은 같거든요. 생명의... 교신한다든가 규명한다든가... 이것이 소망이거든요. 소망 그 자체가 한이거든요.
일본 문화의 본질은 죽음과 폭력이지 결코 삶과 생명이 아닙니다. 일본사를 관류하는 전통은 에로스(性), 그로테스크(奇怪性), 난센스(無哲學)로 집약됩니다. 에로는 항상 그로테스크를 동반하여 찰나적 탐미주의와 유미주의로 귀착되고 급기야는 허무주의로 귀결됩니다. 이것이 무철학 또는 무사상의 근거지요. 이런 취약한 기반 때문에 일본은 모방을 위한 지식과 감각을 발전시켰어요. 모방과 로맨티시즘이 결합되면 곧 감상주의가 됩니다. 감상주의는 얄팍하지만 대중을 동원하는 순간적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일본이 군국주의로 뻗어 나가는 활화산 역할을 담당한 것입니다.
동양철학은 삶의 철학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죽음의 철학과 구분되지요. 한국의 경우에는, 노장사상을 전혀 모르는 무식한 촌로라도 그의 몸짓에는 삶의 철학이 배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리얼리티지요. 일본 문물의 본류는 우리예요. 그들은 우리 것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투명과 비상을 상징하는 한국의 색깔과 선이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투명한 흰색은 영의 세계를 지시하고, 하늘을 향한 선의 흐름은 승천을 상징하지요. 투명은 정신이며 선은 생명입니다.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 여기에서 분출합니다.
박경리 / ‘가설을 위한 망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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