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조지 오웰의 신조어 ‘뉴스피크’

송담(松潭) 2007. 8. 22. 11:14
 

 

조지 오웰의 신조어 ‘뉴스피크’

 


‘뉴스피크(Newspeak)’라는 말이 있다. 새 말하기, 말 없애기, 말 만들어 하기, 말 바꿔 하기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조지 오웰(Orwell)이 소설 ‘1984’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낸 말이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도 알게 모르게 많이 쓰이고 있는 방식인데도 그 말 자체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바로 이런 것이다. ‘좋다’(Good)와 ‘나쁘다’(Bad)에서 ‘나쁘다’는 말을 없애버린다. ‘행복하다’(Happy)와 ‘불행하다’(Unhappy)에서 ‘불행하다’는 말을 금지시켜 버린다. 그렇게 하면 모든 사물은 아무리 나빠도 좋은 것이 되고 세상은 행복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낙원과 지옥에서 지옥이라는 말을 없애버리면 이 세상은 낙원이 되고, 지옥에 살면서도 그곳이 바로 낙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뉴스피크’는 특히 현대 선전 선동술과 세뇌교육에서부터 일반 홍보나 광고에까지 흔히 사용되고 있다. 독재사회일수록 더욱 그렇다. ‘1984’에 나오는 빅 브러더(Big Brother)가 지배하는 독재국가에서는 전쟁을 하는 ‘전쟁성(戰爭省)’을 ‘평화성(平和省)’으로 바꿔 부른다. 거짓말만 하는 선전성은 ‘진실성’이라고 한다. ‘전쟁’과 ‘허위’라는 말을 없애버리거나 반대로 부르면 각각 전쟁이 평화가 되고 허위가 진실이 되는 것이다.


 전쟁을 준비하면서도 평화를 말하고 거짓을 말하면서도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핵은 분명 전쟁의 최고 상징이지만 핵의 보유가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고 할 때는 평화의 최고 상징이 되는 것이다.


‘뉴스피크’가 기호전략과 연결되면 더욱 헷갈리게 된다. 기호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언어학자 소쉬르(Saussure)는 일찍이 기호(記號)에는 기표(記表·Signifier)와 기의(記意·Signified)가 있다고 했다.

기표는 기호의 겉 표현(Form)이고 기의는 기호의 내용 또는 본질(Content)이다.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는 것이면 헷갈리지 않지만 그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 문제가 된다. 악마가 천사의 탈을 쓰고 나타날 때와 같은 것이다.


‘대한민국’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비교할 때 국호의 기표상으로는 후자가 더 민주주의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기의상으로나 실질상으로는 대한민국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민주주의적인데도 말이다.


이탈리아의 베니스는 123개의 섬을 다리로 연결해서 형성돼 있다. 독재자 무솔리니가 1933년 이 베니스에 메인 브리지를 건설하고서 그 이름을 ‘자유의 다리’라고 했다. 독재의 화신인 자신이 자유의 화신처럼 보이게 하려는 ‘뉴스피크’이다.


 우리나라의 자유당,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시절에 자유와 민주와 정의가 오히려 각각 부족했다. 천 년을 내다보고 만든 새천년민주당, 100년은 가리라고 만든 열린우리당이 모두 단명으로 끝났다. 한나라당은 두나라당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것도 모두 형식이나 스타일로 내용과 본질을 결정해 보려던 ‘뉴스피크’의 실패작이다.


 ‘미래창조 대통합 민주신당’이란 이름은 어떤가. 좋은 말은 다 모아 놓았다. 우연히도 북한의 나라 이름과 같이 11자로 긴 게 흠일 뿐이었다. 지난 10일 범여권의 합당선언에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줄어졌지만 일곱 자도 우리 정당 사상 제일 길다. 그래도 이 ‘뉴스피크’의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는 비판이 많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나라 안의 정치나 대통령선거 등에서 쏟아져 나올 ‘뉴스피크’에 홀려 오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물며 평양에서 열릴 제2차 남북 정상회담과 같은 나라 바깥과의 큰일에서는 그런 오판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같은 말이라도 뜻이 반대가 되는 ‘뉴스피크’, 그리고 기표와 기의가 다른 기호의 레토릭 장난에 놀아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청수 / 고려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2007.8.22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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