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민족주의서 우파 탈민족주의로 이동”
그간 좌파와 민족주의의 ‘어색한 동거’가 가능했던 이유는 북한의 존재 때문이었다. 1980년대 말 사회주의 붕괴와 더불어 북한 체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다가 좌파 민족주의가 대학가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자 북한을 우리 민족이라 하여 우호적으로 보려는 세력들이 ‘평화세력’이란 이름으로 집결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북핵 사태는 이런 민족주의에 변화를 일으키는 분기점이 됐다. 두 정권의 실정(失政)과 맹목적 ‘친북’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은 상호작용을 하며 좌파 민족주의에 대해 국민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전문 학자들의 기고문을 연재하면서 관련된 논점을 짚어본다.
포스트 386의 등장 북한의 인식변화 등으로
한민족 민족주의서 대한민국 민족주의로 전환
지난 6월 말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보도된 바 있다. 그 보도에 따르면 조사 대상 학생 10명 가운데 4명은 언제 6·25가 발발했는지 정확한 연도를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남·북한 통일에 대해 필요성을 그다지 절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 결과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젊은 세대의 인식이 그동안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의 한 축이었던 민족주의적 시각의 변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민족주의의 특성을 단순화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정치적으로 본다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관련된 민족주의적 대응이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민족의 문화적, 혈연적, 역사적 특성을 강조한다. 최근 일본 식민지 시대의 특성을 두고 학계에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일본에 대한 저항적 민족주의는 대체로 보수·진보의 구분 없이 수용되고 있어서 정치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큰 쟁점으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독도 영유권이나 야스쿠니 신사 문제처럼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양국 간 갈등 역시 내부적으로 큰 이견 없이 일본에 대한 저항적 민족주의를 재생산하게 했다.
또 다른 형태의 민족주의는 남북한의 분단과 한국전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관점은 대체로 진보적 시각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간략히 정리하면, 민족국가 건설은 남북한의 통일에 의해서 완성될 수 있는 것인데 미국이 개입함으로써 분단이 고착화되었고 그로 인해 민족국가의 건설이 지연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미국에 대해서는 저항적 민족주의가 형성되었고, 미국이라는 외세를 배격한 남북한 간의 자주적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한편, 이승만의 단정(單政)과 냉전하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편입한 것을 옹호하는 보수적 시각은 이러한 진보 진영의 민족주의에 결코 동조할 수 없었다. 이념적 적대감으로 인해 이들에게 북한은 통합의 대상이기 이전에 타도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이러한 커다란 시각의 차이로 인해 북한을 둘러싼 민족주의적 논쟁은 항상 우리 사회에 커다란 이념적 갈등을 불러왔다.
그런데 일본이든 미국이든 우리 민족주의의 기저에는 뿌리 깊은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깔려 있었다. 우리 민족주의가 저항적 속성을 갖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상당한 세월이 흘렀고 우리 사회의 성장·발전과 함께 민족주의적 시각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지금 중·고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20대의 젊은 세대들은 윗세대들과는 대단히 상이한 환경에서 성장해 왔다. 이들은 산업화의 수혜자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된 사회에서 자유를 누리며 컸고, 이념적으로는 냉전과 반공 이데올로기로 고통 받은 기억을 갖지 않은 세대이다. 오히려 이들은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을 보며 성장해 왔다. 세계 곳곳에서 만나는 우리 제품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박찬호, 박세리, 김연아, 박지성, 박태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스포츠 스타들의 활약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만큼 기성세대와는 달리 질곡의 역사로 인한 피해의식이나 열등감도 없다. 일본인들이 ‘겨울연가’ 등 한류에 열광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길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제이 팝(J-pop)이나 일본 만화 등 일본 문화를 즐기는 데 대한 거부감도 없다.
미국에 대한 태도에도 기성세대에서는 한 쪽에서는 무조건적인 거부와 저항, 또 다른 쪽에서는 맹목적 추종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이 존재하지만,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상반된 극단적 반응을 불러 온 미국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막강한 국력에 대한 동경심도 크지 않다. 젊은 세대가 바라보는 미국은 우리가 여전히 배워야 할 선진국이면서도 동시에 경쟁국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지만 한·미 간에 이해관계가 부딪힐 때는 분노하고 우리 이익이 관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들에게 미국은 더 이상 구세주도 아니고 제국주의적 악도 아니다. 북한에 대한 태도 역시 변화가 생겨났다. 이들은 북한에 대해 동포애를 갖고 있고 궁극적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데도 공감한다. 이 때문에 북한이 기아나 수재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같은 민족이고 타의에 의해 분단되었기 때문에 무조건 통일해야 한다는 통일지상주의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이들 세대는 통일 이후에 지불해야 할 비용과 사회적 결과에 대해서도 주목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민족주의에 대한 이들의 시각은 이념적이라기보다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격렬한 논쟁과 갈등을 이끌었던 민족주의는 이제 변화하고 있다. 기성세대의 저항적 민족주의가 피해의식과 열등감의 소산이었다면 젊은 세대는 역사로 인한 굴절과 구김을 경험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실용적 태도, 미국·일본에 대한 당당함이 그 변화된 특성이다. 특히 분단의 장기화와 한국 사회에 대한 자긍심의 증대와 함께 북한과의 상이한 정체성도 커지고 있다. 마치 같은 독일어권이고 게르만족이라고 해도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서로 다른 나라이듯이, 북한을 별개의 존재로 간주하는 시각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남한만의 새로운 민족의식과 정치적 정체성이 강화되어 가고 있다. ‘대한민국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
(2007.9.3 조선일보)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 충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세계화 시대 민족주의의 새로운 성찰적 계몽 필요
“이 나라에 입국한 이래, 사람은 관념의 세계시민은 될 수 있어도 그와 마찬가지로 현실의 세계시민이 될 수 없음”을 실감했다고 소설가 최인훈은 ‘화두’에서 적고 있다. 여기서 이 나라란 미국을 말한다. 10여 년 전 발표된 이 소설은 여전히 우리에게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세계시민은 가능한가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난 두 가지 현상, 영화 ‘디 워’를 둘러싼 논란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우리사회에 다양성의 존중을 촉구한 것은 우리 민족주의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디 워’ 열풍이 보여주듯 민족주의는 여전히 대중의 열망을 점화할 수 있는 뇌관이다. 동시에 민족주의에 내재한 극단의 애국주의 내지 인종주의 편향은 국제기구의 공개적 우려를 낳을 만큼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다.
민족주의는 해방 이후 경제주의, 민주주의와 함께 국가적 수준의 대규모 정치·문화 동원을 가능케 했던 이념의 하나였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는 민족해방에 대한 염원이 ‘건국’으로 나타났다면, 경제적 삶의 향상에 대한 기대는 ‘산업화’로, 민주주의 정착에 대한 열망은 ‘민주화’로 외화돼 왔다. 이 가운데 특히 민족주의는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연결하는 매개 영역이자, 좌파와 우파가 공존하는 점이지대를 이뤄 왔다.
우리 민족주의를 진단할 때 다음의 세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우리 민족주의는 서구 민족주의와 사뭇 다르다. 서구 민족주의가 근대에 의해 발명된 ‘상상적 공동체 의식’이라면, 우리 민족주의는 근대 이전의 역사적 전통과 ‘한민족’이란 에쓰니(ethnie)에 기반한 문화적 독자성을 갖는다. 민족이란 말이 근대 이후에야 활발히 쓰였다 하더라도, 근대 이전에 이미 전쟁을 통해 민족과 타자의 의식적, 무의식적 구분이 이뤄졌으며, ‘장기지속’으로서의 공통의 생활양식이 집단적으로 공유돼 왔다. 다시 말해, 우리 민족주의 안에는 전통과 근대가 공존해 있었다.
둘째, 근대 이후 우리 민족주의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는 민족해방의 전통을 갖고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세계체제 내지 제국주의에 대응하는 이념적 구심을 이뤄 왔다. 역설적인 것은 민족주의가 본래 보수주의와 친화적인 담론인데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 민족주의’ 이후 보수주의와 민족주의는 점차 멀어져 왔다는 점이다. 이후 민족주의는 민족해방주의(NL)에서 볼 수 있듯이 좌파적 성향이 두드러져 왔다.
셋째, 세계화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경제적 민족주의와 문화적 민족주의가 분화돼 왔다. 이에 대해서는 지구적 차원에서 경제적 의존이 강화되면 될수록 문화적 자율에 대한 열망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민족주의 이론가 채터지(Chatterjee)의 주장이 유효하다. 외환위기 이후 세계화가 강제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지구적 차원에서의 경제적 의존의 심화를 보여준다면, 촛불시위와 같은 사회운동은 문화 영역에서 철학자 호네트(Honneth)가 말하는 ‘인정(認定)의 정치’를 상징한다.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민족주의의 존재 양상은 모순적 풍경을 이룬다. 글로벌 또는 아메리칸 스탠더드를 위해 어릴 적부터 영어 학습에 전력을 기울이면서도 월드컵 거리응원에서 나타나듯이 민족주의는 애국주의로 쉽게 전이돼 왔다. 한때 우리사회를 달궜던 박찬호 신드롬은 매우 적절한 사례다. 문화적 세계화의 한 양상인 스포츠의 세계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거기에는 박찬호란 이름으로 상징되는 애국주의가 숨쉬고 있었다.
바로 이점에서 세계화와 민족주의의 관계는 복합적이다. 세계화의 진전은 초국적기업에서 볼 수 있듯이 분명 경제적 민족주의를 약화시킨다. 하지만 경제적 민족주의에 대응하는 문화적 민족주의는 영역과 이슈에 따라 약화되기도 하고 강화되기도 한다. 영어 열풍에서 볼 수 있듯이 구체적인 삶의 양식에 연관된 민족주의는 약화되고 있지만, 문화적 정체성에 연관된 민족주의는 강화되는, 경우에 따라서 극단적 애국주의의 성향을 드러낸다.
더하여 정보사회의 도래와 함께 등장한 네티즌의 특성도 주목해야 한다. 네티즌의 무기는 정보사회학자 카스텔스(Castells)가 말하는 네트워크다. 인터넷상의 네트워크는 안과 밖의 경계가 부재하며 동시적 소통을 보장한다. 가상의 네트워크는 민족주의적 정체성 형성의 구심을 이루며, 때때로 사회운동으로 폭발하기도 한다. 과거와 다른 점은 이 새로운 민족주의 형성의 지점이 고정돼 있지 않고, 노마드(유목)적 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디 워’ 열풍에서 볼 수 있듯 예기찮은 지점들에서 민족주의는 분출하는 동시에 그 열광은 이내 새로운 지점을 향해 이동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민족주의의 복합성에 대한 가치판단에 있다. 오늘날 민족주의적 정체성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목욕물이 더럽다고 아기마저 버리는 잘못을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과잉화된 민족주의로서의 애국주의가 인종차별주의로 흐르게 될 가능성을 배제해서도 안 된다. 민족적 자율에 대한 자존심은 보편적 인권과 공존할 때 빛을 발한다.
세계화 시대에 민족주의는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민족주의의 분출은 바로 그 세계화의 충격이 가져온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의 충돌, 경제적 세계주의와 문화적 민족주의의 갈등, 민족적 시민과 세계시민 사이의 긴장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민족주의에 대한 새로운 성찰적 계몽이 요청되는 지점에 우리 사회는 이미 도달해 있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2007.9.3 조선일보)
“좌파+민족주의 20년 동거 끝나”
2004년 6월 김선일씨 피랍 피살사건 때 반미구호를 소리 높여 외쳤던 것에 비하면 이번 아프가니스탄 인질사건에 대해 보여준 한국인들의 대미(對美) 태도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일부의 반대시위 선동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체결은 정상적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반미친북(反美親北)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
70년대와 80년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선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형성된 좌파와 민족주의의 20년 공존이 끝나가고 있다는 진단이 학계에서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는 20세기 우리 역사에서 생겨난 수세적이고 저항적인 민족주의와의 결별이라는 점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다수 사회과학자들의 진단이다. 오히려 외국에서는 한국민족주의가 너무 공세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는 이를 ‘한민족 민족주의’에서 ‘대한민국 민족주의’에로의 대전환이라고 명명했다. 다만 이 현상을 좌파와 결합했던 민족주의가 우경화하는 현상으로만 파악할 경우 사태의 핵심을 놓칠 수 있다고 강 교수는 우려했다
2007.9.3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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