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만 느껴진다면 `와인초짜`
독일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적포도주가 식탁에서 나를 유혹하듯 빛나고 있었다.
내가 학생 때 시골 과수원에서 포도를 항아리에 넣고 설탕과 소주를 부어 만든 포도주만 마셔 보았기 때문에 식탁에 놓인 포도주를 보며 포도 냄새가 물씬 나는 단맛을 연상하였다. 그러나 한 모금을 막걸리 마시듯이 쫙 들이켜고 나니 `와. 이럴 수가` 떫고, 쓰기만 하던 그 포도주 맛을 잊을 수 없다. 포도주 맛을 보는 방식을 모른 채 수입 포도주를 마셔본 분은 나와 같은 경험을 하였을 것이다.
혀는 많은 맛을 감지하지만 단맛 신맛 짠맛 쓴맛 네 가지가 맛의 기본이며, 해당 맛을 느끼는 부위가 정해져 있다.
혀 앞부분은 단맛을, 측면에서는 신맛을 감지하고, 뒤쪽에서는 쓴맛을 느낀다. 짠맛은 혀 중간 비교적 넓은 부위에서 감지되는데 와인에서는 짠맛을 별로 느낄 수 없다.
포도주를 단숨에 꿀꺽 삼키면 혀의 일부분만 닿고 식도로 통과하므로 닿는 부분의 맛만 느끼게 된다. 따라서 급히 마시는 포도주가 쓰게만 느껴지는 것은 쓴맛을 감지하는 혀 뒷면만 닿았기 때문이다. 입 안에 넣은 와인을 꿀꺽 삼키지 말고 혀의 모든 부분에 고루 퍼지도록 하여 여러 맛을 보도록 한다. 씹는 움직임을 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특히 1초 내지 2초간 물고 있으면 입 안 온기에 의하여 잠재되었던 맛이 드러나서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포도주의 참맛은 단맛 신맛 쓴맛이 복합적으로 균형을 이룬 맛이다.
포도주는 적당히 신맛을 가져야 청량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신맛이 부족한 포도주는 밋밋한 맛이라는 뜻으로
플랫 와인(flat wine)이란 표현을 쓴다.
신맛이 아주 강한 것은 덜 익은 포도나 저온지역에서 수확한 포도의 특징이다. 발효한 후에 남아 있는
당분(잔당) 양이 많으면 스위트 와인(sweet wine)이 되고.
당이 소진되어
단맛이 거의 없는 와인을 드라이 와인(dry wine)이라고 한다.
백포도주 맛의 결정은 주로 신맛과 단맛 균형에서 온다. 단맛은 설탕의 단맛과 같이 밋밋한 단맛이 아니라 과일이 익음으로 오는 달콤함 또는 감미로운 달콤한 맛(mellowness)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드라이한 백포도주는 산도는 높으나 감미로움이 적은 반면 스위트 와인은 감미로움은 높으나 산도가 낮다. 산도와 감미로움이 낮으면 맛이 얕고 풍미가 적어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하는 와인으로 취급된다.
적포도주 맛은 산도와 감미로움 그리고 떫은맛 정도가 균형을 이룰 때 제 맛을 낸다. 햇적포도주(young red wine)에서 흔히 쓴맛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숙성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 적포도주에 함유된 타닌으로 인해 떫은맛을 느끼는 데 이는 타닌이 입 안을 건조하게 하는 수렴성이 있기 때문이다.
혀로 느끼는 와인 전체 맛의 깊이를 보디(body)라고 하는데 이는 와인에 함유된 알코올 양과 추출 물질(참나무통에서 우러나오는 물질), 혹은 발효 후 잔당의 양 등 영향으로 입에서 느끼는 가득찬 느낌 혹은 중후한 느낌을 말한다.
장기 숙성된 맛이
진한 와인은 풀 보디(full body),
가벼운 것은 라이트 보디(light body), 그리고
그 중간을 미디엄 보디(medium body)라고 한다.
맛은 와인 자체가 가진 특성뿐만 아니라 환경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촛불이 밝혀진 아늑한 분위기에서 와인을 한 모금씩 음미하면서 마시는 맛과 복잡한 할인점에서 판촉용 와인을 종이컵에 마시는 맛은 동일한 와인이라도 다르게 느껴진다.
따라서 와인을 마실 때는 마시는 와인 종류에 맞는 와인 잔을 선택하고 적당한 분위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원목 / 고려대 명예교수
(2007.8.29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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