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27033 개밥바라기별 1.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버스를 탔을 때에는 눈송이가 커지면서 함박눈이 되었다. 차들은 네거리가 나올 때마다 밀려서 서로 엉키고 신호는 있으나마나였다. 나는 연신 손목시계를 살피다가 차라리 걷기로 하고 차에서 내렸다. 차도와 인도가 벌써 분간할 수 없이 눈에 덮였고 .. 아름다운 詩, 글 2008.11.02
고향산천에 고추잠자리 고향산천에 고추잠자리 산들산들 날아오르고 한가위라 명절날 고향 산천에 고추잠자리 산들산들 날아오르고 바람결도 소소소 간지럼피운다 햇살은 무르익어 대추 볼 볼그족족해가고 징검다리 노둣돌 감싸 흐르는 강물도 한결 더 빤질빤잘 빛난다 오랜만에 찾아뵙는 부모님 오매 내 새끼야 목소리 .. 아름다운 詩, 글 2008.09.17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 아름다운 詩, 글 2008.08.25
해남에서 온 편지 / 이지엽 해남에서 온 편지 / 이지엽 남편을 여의고 시골에 혼자 사는 어머니가 수녀가 된 딸을 걱정하며 건네는 편지 형식의 이 절절한 사연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서 더욱더 애틋한 감정을 자아낸다. '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오늘도 삭신 쿡쿡 쑤'시는 어머니의 고단한 삶은 먼저 세상을 등진 남편.. 아름다운 詩, 글 2008.08.04
별 / 공재동 별 / 공재동 즐거운 날 밤에는 한 개도 없더니 한 개도 없더니 마음 슬픈 밤에는 하늘 가득 별이다. 수만 개일까. 수십만 갤까. 울고 싶은 밤에는 가슴에도 별이다. 온 세상이 별이다. < 1985 > 슬픈 사람에게 별은 친구이자 애인 별을 노래한 시들은 지천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 모든 죽어가는 것.. 아름다운 詩, 글 2008.06.25
하느님에게 / 박두순 하느님에게 / 박두순 때맞춰 비를 내리시고 동네 골목길을 청소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가슴아픈 일이 있어요. 개미네 집이 무너지는 것이지요. 개미네 마을은 그냥 두셔요. 구석에 사는 것만 해도 불쌍하잖아요 가끔 굶는다는 소식도 들리는데요.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기.. 아름다운 詩, 글 2008.06.12
담요 한 장 속에 / 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 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 아름다운 詩, 글 2008.05.23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 아름다운 詩, 글 2008.05.13
오산 인터체인지 / 조병화 오산 인터체인지 / 조병화 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삭지 않는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등(燈)은, 덴막의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 속에 초초히 떨어져 서 있고 허허들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진다 어느새 이곳 자, 그럼 .. 아름다운 詩, 글 2008.05.02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아름다운 詩, 글 2008.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