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 4

신선이 덮는 이불을 발밑에 두고

신선이 덮는 이불을 발밑에 두고 시간, 공간, 인간, 한세상 사는 일은 이 3간을 통과하는 일이다. 이 3간 중에서 비교적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공간이다. 상대적으로 시간,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바꾸기 어렵다. 공간이 바뀌면 시간의 흐름도 달리 흘러간다. 교도소에서 보내는 시간과 영화관에서 보내는 시간의 흐름은 다르다. 그 공간에서 만나는 인간의 종류도 달라진다. 그러니까 어떤 공간에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더군다나 자기에게 기쁨을 주고 세상의 시름을 달래주는 특정한 공간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차인(茶人) 나광호 선생을 만나 보니, 이 사람은 생계 활동 이외의 시간만나면 지리산 형제봉을 올라가는 게 일이다. 형제봉에만 올라가면 삶의 의미가 느껴진다고 한다. 형제봉은 지리산 자락이 남쪽..

여행, 걷기 2024.03.26

고통이 주는 선물

고통이 주는 선물 ‘내 인생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어요.’ 만나는 이마다 이런 하소연을 한다. 행복은 저 멀리 신기루처럼 깜박일 뿐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전시된 타인들의 행복한 모습은 우리의 남루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감당해야 할 인생의 무게가 태산처럼 느껴질 때 비애감도 덩달아 커진다. 고달픔, 서러움, 억울함의 감정은 무거운 추가 되어 우리를 심연으로 잡아당긴다. 누구나 행복을 바라지만 행복이 인생의 목표가 되는 순간 지금이라는 기적을 한껏 누리지 못한다. 행복의 신기루를 좇는 이들일수록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고통은 즉시 제거되어야 할 적이다. 고통은 행복의 철천지원수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한병철 교수는 고통에 대한 전반적인 두려움이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

상처의 치유 2024.03.22

돈의 맛

돈의 맛 아무리 안전하게 가둬 놓는다 해도결국 사회가 해체한다. 십몇 년 전쯤이었던가. 명동의 사채업자를 알게 되어 몇 번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채업도 전문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력과 자격증은 필요 없었지만 나름대로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었다. 그 전문성은 돈을 회수하는 능력이었다. 빌려준 돈이 회수가 안 되면 망한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을 판단하는 지인지감이 발달해 있었다. '이 사람이 돈 떼어먹고 도망갈 것인가?' 또 하나의 특징은 말을 짧게 하고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점이었다. 밥 먹다가 강호동양학의 장문인(?)을 제압하는 코멘트를 하나 날리는 게 아닌가! “조 선생, 돈맛을 압니까? 맛도 모르면서 왜 그렇게 아는 체를 합니까?” “무슨 맛입니까?" "죽어도 못 끊..

2024.03.03

예(藝) 안에서 놀다

예(藝) 안에서 놀다 '유어예(遊於藝)'라는 말을 좋아한다. 놀기는 놀더라도 '예' 안에서 놀면 후유증이 적다. 그 예가 종합적으로 녹아있는 공간이 원림이라고 생각한다. 원림은 한자문화권의 상류층과 식자층이 가장 갖고 싶어했던 공간이다. 나는 원림을 좋아해서 시간만나면 중국의 졸정원(拙政園)을 비롯한 전통 정원들을 보러 다녔다. 특히 양주의 원림 중에서도 개원이 취향에 맞았다. 일본 교토의 정원만 해도 볼만한 곳이 금각사 정원을 비롯하여 20여 군데가 넘는다. 문제는 이러한정원(원림)들을 조성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가산가수(假山假水,인공으로 조성한 자연)를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원림은 돈이 적게 들면서도 그 효과는 크게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연에 있는 진산진수(眞山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