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맛

송담(松潭) 2024. 3. 3. 13:14

돈의 맛

 

아무리 안전하게 가둬 놓는다 해도결국 사회가 해체한다.

 

십몇 년 전쯤이었던가. 명동의 사채업자를 알게 되어 몇 번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채업도 전문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력과 자격증은 필요 없었지만 나름대로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었다. 그 전문성은 돈을 회수하는 능력이었다. 빌려준 돈이 회수가 안 되면 망한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을 판단하는 지인지감이 발달해 있었다. '이 사람이 돈 떼어먹고 도망갈 것인가?' 또 하나의 특징은 말을 짧게 하고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점이었다. 밥 먹다가 강호동양학의 장문인(?)을 제압하는 코멘트를 하나 날리는 게 아닌가!

 

“조 선생, 돈맛을 압니까? 맛도 모르면서 왜 그렇게 아는 체를 합니까?”

“무슨 맛입니까?"

"죽어도 못 끊는 맛이죠.”

"그런 맛을 '빈(空)' 맛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당신 호는 '공전(空錢)'이라고 하시오. 근데 당신 뒤에 감방이 어른거립니다."

 

이 친구가 10년 세월을 뛰어넘어 오랜만에 연락해 왔다. 강남에서 수천억대를 굴리는 선배 사채업자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다. 그 선배는 얼굴에 난 검버섯과 뾰루지를 제거하는 치료를 한다고 간단한 마취를 했는데 그만 못 깨어나고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죽고 나서 캐비닛에 있었던 돈 빌려준 장부를 들여다보니까 전부 암호로 되어 있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본인만 아는 암호였다. 항상 검찰 수사에 대비했던 것이다. 본인이 죽고 나니까 그 가족이 돈을 회수할 방법이 없었다. 주변에서 거액을 빌려갔던 수십 명이 만세를 불렀다는 후문이다. 업자의 황망한 죽음은 공전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돈 써 보지도 못하고 '쩐의 전쟁'만 하다가 죽어 버리니까 아무 소용없네!”

 

내공이 깊다고 알려진 어느 신흥 종교 교주를 만났을 때 돈에 대해 물었다. 나는 고단자를 만나면 복잡한 형이상학적인 질문 안 하고 단순하게 '쩐'과 '색'에 대해 질문한다. 교주는 세 마디로 답변했다.

 

“돈은 필요 없는 것이네",

 

돈이 필요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밤낮으로 간절하게 기도하고 염원하면 그 일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화엄경 식으로 말하면 '일체유심조(切唯心造)'라는 이야기이다.

 

 

“돈은 강물처럼 흘러가지. 한군데에 가둬 놓을 수가 없어. 자기가 아무리 안전하게 가둬 놓는다고 해도 결국 사회가 해체하는 수가 있어."

 

강물처럼 흘러간다는 말은 돈이 결국은 흩어지게 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쓸 때는 과감하게 써라.

 

"그렇지만 돈이 필요할 때는 또 필요하지."

 

조용헌 / ‘내공’중에서

 

< 2 >

 

재벌 회장은 어떤 팔자인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싶은 돈을 유달리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수많은 화근을 초래한다. 모두가 달려들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팔자가 재벌 팔자이다. 재벌의 오너가 되던지, 재벌가의 가족이 되는 팔자는 만인이 선망한다. 돈이 많기 때문이다. 인간은 돈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전인 조선 시대에도 인간 욕망의 순서는 돈이 제일 먼저였다. 재색명리(財色名利)가 그것이다. 재물욕, 색욕, 명예욕, 이욕. 색色보다 돈이 앞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러나 돈이 많으면 팔자가 세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싶은 돈을 유달리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수많은 화근을 초래한다. 모두가 달려들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곡괭이를 들고 달려들고, 누구는 부비트랩을, 또는 독극물을 투약하려고 한다. 때로는 색풍(色風)이 몰아치기도 한다. 팔풍(八風, 마음을 어지럽히는 8가지 경계를 바람에 비유한 것) 중에서 색풍도 대단히 강하다.

 

재벌을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바라는 게 있다. 그냥 만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여기 좀 보태주세요. 거기 좀 지원해 주세요. 이것 좀 신경써 주세요.' 그래서 재벌 회장은 사람을 만날 때 끊임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저 사람은 또 어떤 요구를 할까. 어떤 트릭과 함정을 파서 나를 상대하는 것일까?' 모든 인간을 만날 때마다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 통이 크고 대가 셌던 정주영 회장도 항상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가 돈 달라고 하니까 말이다. 만약 돈을 안주면 그 사람은 뒤돌아서서 욕을 하게 되어 있다. '그 인간 정말 짠돌이다.'

 

돈을 유지하고 관리하다 보면 반드시 배신을 겪는다. 아주 믿었던 주변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몇 번 당하면 인간에 대한 깊은 환멸을 경험한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므로 수면제는 상비약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환멸은 장기 중에서 폐에 충격을 준다. 재벌 오너가 폐암에 잘 걸리지 않던가. 꼭 폐암이 아니더라도 근래에 LG 구본무도 70대 초반에 갔고, 한진의 조양호도 70에 갔고, 삼성의 이건희도 70대 초반에 식물인간이 되었다. 보통 사람도 요즘 어지간하면 80세는 넘기는데, 이들 오너들은 평균수명 미달이다. 몸에 좋다는 것은 다 구해서 먹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 간 것은 그만큼 보통 사람보다 훨씬 시달리며 살았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큰 회사를 운영하려면 오장육부가 강철로 되어 있어야 한다. 창업주는 강철이 있지만 3세쯤 되면 멘탈이 양철도 안 된다. 재다신약(財多身弱)이 재벌 회장을 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시달리며 사는 심란한 팔자이다.

 

조용헌 / ‘내공’중에서

 

<  3 >

 

용궁으로 간 타이탄

 

 

북대서양에 가라앉은 타이타닉호의 잔해를 구경하려고 바다 밑 4000m까지 내려갔던 잠수정 '타이탄'의 사고뉴스. 사고를 당한 5명은 모두 '수퍼리치', 갑부라고 한다. 왜 갑부들이 심해에서 죽어야만 했는가?

 

"5000억 원 정도가 있으면 비행기도 사고, 저택. 요트 · 수퍼카 등을 모두 살 수 있다. 그 이상 돈은 필요 없다. 살 것이 없으니까. 그런데 왜 당신은 종업원 수만 명을 관리하면서 돈을 더 벌려 하고, 골치 아프게 사는가, 한가하게 살지 않고?"

 

몇 년 전 필자가 어느 재벌 오너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재벌 오너가 미국의 갑부와 밥 먹다가 들은 충고라고 하면서 전해준 이야기다. 조 단위 부자가 유유자적하면서 한가하게 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한중락(閑中樂, 한가한 즐거움)은 도인이 되어야 가능하다. 내가 만나 본 서울 강남의 수천억 원대 부자 대부분이 수면제를 먹는다. 법정소송이 평균 3~4건씩 걸려 있기 때문이다.

 

수조원대 부자가 되면 모든 물질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자기 앞에 와서 굽신거린다. 이런 상태가 되면 일반적 오락은 전혀 와닿지 않고, 남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강력한 자극을 원하게 되는 것 같다. 강력한 자극이란 결국 목숨을 거는 놀이다.

 

물질적 충족은 반드시 영적 빈곤을 초래한다. 양만 추구하다 보면 음이 고갈된다. 이게 자연법칙이다. 영적인 빈곤 상태의 수퍼리치가 센 자극을 계속 찾다 보면 대서양의 4000m 심해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동양에서는 바다 밑에 용궁이 있다고 믿었다. 용궁에는 용왕이 산다. 타이탄에 탑승했던 갑부 5명은 용궁에 가서 용왕을 만나려고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해석된다. 용궁은 돈 있다고 가는 데가 아니다.

 

용궁 이야기가 나오니까 신라의 원효 대사가 생각난다. 이 양반은 용궁에 갔다 온 사람이다. 원효가 쓴 명저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의 저술 배경에는 '바닷속에서 이 책의 골격을 가져온 것'이라고 나온다. '현재 이 상태로 우주는 금강삼매에 들어가 있다'라고 보는 것이 원효의 관점이다. 이 상태에서 더하고 뺄 것도 없다는 말이다. 철들고 생각해 보니 용궁은 인간 내면의 무의식이었다. 인간의 8식 무의식 저 깊숙한 곳은 심해처럼 칠흑같이 깜깜하다. 원효가 들어간 심해의 깊이는 1만 미터가 넘었을까? 결국 잠수정 타이탄은 용궁으로 들어가는 반야용선(般若龍船,극락정토로 갈 때 타고 가는 배)이었다.

 

조용헌 / ‘내공’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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