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얼마의 땅이 필요한가?

송담(松潭) 2018. 1. 6. 05:10

 

사람에게 얼마의 땅이 필요한가?

 

 

러시아의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의 글 중에 “사람에게 얼마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매우 좋아해서 교육생들에게 자주 들려주곤 한다.

 

 러시아의 한 마을에 파흠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논밭을 넉넉히 가지고 있었지만 더 가지고 싶은 욕심이 왕성하여서 누가 ‘땅’이라는 말만 들먹여도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나그네로부터 기가 막힌 정보를 입수했는데 적은 돈으로도 많은 땅을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었다. 파흠은 당장 서둘러서 그 곳을 향해 길을 떠났다. 드디어 땅을 마음대로 골라서 살 수 있다는 바슈키르에 당도하였다. 여기 사람들은 멍청하게도 무한히 넓은 땅의 한 귀퉁이에서 작은 오두막을 짓고 조용히 살고 있었다. 땅을 누가 더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일도 없었으며 그저 서로 마음 놓고 소와 양을 키우면서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파흠은 촌장을 찾아가가서 말했다. “저는 땅을 사기 위해 왔는데 땅값은 얼마인지요?” “하루에 1천 루불입니다.” 파흠은 침을 꼴깍 삼키면서 물었다. “하루라는 것은 몇평인지요?”

“우리는 그런 셈은 잘 모릅니다. 다만 당신이 하루 동안 걸어 다닌 땅은 모두 당신의 것으로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파흠은 흥이 났다.

하루 동안 걸어다닌 땅을 1천루불에 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횡재인가 말이다. 촌장이 한마디 덧붙였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당신은 해가 뜰 때 걷기 시작해서 해가 지기 전에 제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물론 당신이 걸어간 곳에 표시를 해 두어야 하고요. 만일 당신이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지 못하면 당신에게는 땅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파흠은 얼씨구나 하고 1천 루불을 지불하고는 해가 뜨자마자 부리나케 걸렀다.

 

 시간이 아까워서 밥도, 물도 걸으면서 먹었으며 물론 잠시도 쉬지 않았다. 정오가 되었으나 파흠은 더 좋은 땅이 자꾸만 나타났기 때문에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어느 덧 해가 서쪽으로 제법 기울었다.

 그제야 파흠은 허겁지겁 삽으로 표시를 한 다음 돌아오기 시작했으나 뛰어도 뛰어도 출발했던 지점은 나타나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기전에 돌아가야 이 땅이 모두 내 차지가 되는데...”

입에서는 단내가 났고 눈앞이 가물가물했다. 파흠은 간신히 해가 지평선에 넘어갈 무렵에 출발점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그 자리에 쓰러져서 영영 다시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바슈키르 사람들은 파흠의 시체를 그 곳에 묻어 주었다. 그가 차지한 땅은 겨우 한 평이 조금 넘을까말까 한 넓이였다.

 

 

  TV에서 심심찮게 방영하고 있는 병원 중환자 병동의 환자들 중에 눈물의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한결같이 듣게 되는 공통점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중요한 어떤 것을 잊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만의 고백이 아니라 지금은 아니지만 내일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바로 우리 모두의 고백이었다. 그렇다면 뭔가 잘못된 삶을 우리 모두가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부모가 철없는 아이를 가르칠 때는 회초리를 사용하지만 신이 인간을 가르칠 때는 세월을 통해 가르친다고 했던가....

 

 파흠의 우선순위가 더 넓은 땅에 있지 않고 그의 생명에 있었다면 그는 땅과 함께 생명도 유지 했을 것이다. 삶의 우선순위가 잘못 매겨져 있다면 아무리 열심히 산들 그 인생은 결국 후회만을 남기며 한 평 남짓한 무덤을 위한 삶을 만들 뿐이다.

 

신 덕 영 / LG섬유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