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각황전 마당으로 나선 운정은 대웅전을 향해 합장했다. 그리고 각황전 쪽으로 돌아서 다시 합장했다. '내가 일찍이 뭐라고 가르쳤더냐. 비구의 몸으로 생명의 인연을 만들려거든 차라리 그것을 독사의 입에다 넣으라고 하지 않았더냐.' 세존의 준엄한 말씀이 또 정수리를 내려치는 것 같았다. 운정은 고뇌스런 숨길을 다스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천 근 무게로 각황전은 드높게 서 있고, 기와 이음매의 덮개가 없어 기와골이 물이랑처럼 이어진 넓은 지붕 위에는 시리도록 흰 햇살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용마루와 경계 짓고 있는 하늘은 끝 모르게 깊고 푸르렀다. 아, 저것이 필경 해탈의 빛이 아닐 것인가. 문득 생각하는 운정의 내부에는 차가운 전율이 일직선으로 뻗어내리고 있었다. 각황전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는 운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