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화엄사 각황전

송담(松潭) 2023. 1. 8. 21:03

화엄사 각황전


마당으로 나선 운정은 대웅전을 향해 합장했다. 그리고 각황전 쪽으로 돌아서 다시 합장했다. '내가 일찍이 뭐라고 가르쳤더냐. 비구의 몸으로 생명의 인연을 만들려거든 차라리 그것을 독사의 입에다 넣으라고 하지 않았더냐.' 세존의 준엄한 말씀이 또 정수리를 내려치는 것 같았다. 운정은 고뇌스런 숨길을 다스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천 근 무게로 각황전은 드높게 서 있고, 기와 이음매의 덮개가 없어 기와골이 물이랑처럼 이어진 넓은 지붕 위에는 시리도록 흰 햇살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용마루와 경계 짓고 있는 하늘은 끝 모르게 깊고 푸르렀다. 아, 저것이 필경 해탈의 빛이 아닐 것인가. 문득 생각하는 운정의 내부에는 차가운 전율이 일직선으로 뻗어내리고 있었다.

각황전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는 운정의 가슴에는 공허한 바람이 맴을 돌고 있었다. 삭발한 지 40여 년, 어느 길을 돌고 돌아 여기에 와 있으며, 깨닫고 이루었음이 그 무엇이란 말인가. 스스로의 허망한 그림자를 보아야 하는 고뇌스런 신음이었다. 각황전 앞에서 그 회한이 더 깊어짐은 무슨 연유인가. 각황전을 이루어낸 그 어느 이름 모를 목수의 금강석같이 견고한 신심과 원력 앞에 삭발승의 부끄러움이 새롭게 도지는 탓일 것이었다.

열아홉 나이에 불사에 참여한 그 목수가 각황전을 다 짓고 났을 때는 일흔아홉이 되어 있었다 한다. 실로 60년의 세월이 흘러간 것이고, 그는 그동안 각황전 언저리를 한 번도 벗어난 일이 없었다. 완공과 함께 머리에 동여맨 수건을 푼 그는 각황전 돌계단을 걸어내려와 뒷개울로 사라졌다. 그는 한나절이 넘도록 몸을 씻었다. 그리고 그날 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감자 어둠에 묻혀 있던 경내가 갑자기 휘황한 빛으로 밝아졌다. 놀란 대중들이 밖으로 나와 보니 한 마리의 백학이 현란한 빛을 뿜으며 각황전 위를 너훌너훌 날고 있었다. 그 백학은 각황전 위를 세 번 돌고는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목수를 어찌 기술자라고만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각황전이 어찌 솜씨로만 이룩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솜씨 뛰어난 기술자였을 뿐이라면 그 목수가 어찌 60년의 세월을 견디고 참아낼 수 있었을 것인가. 매시(每時)가 차가운 인내로 채워졌음이고, 하루하루가 뜨거운 신심으로 타올라 마침내 시공계(時空界)를 초월하는 경지에 들어 60년 세월이 하루같이 된 것이 아닐 것인가.

인간의 시간으로 그 긴 60년을 하루로 초월한, 청정한 영혼이 빚어낸 솜씨는 또 어떠했으랴. 이미 범상을 벗어난 그 솜씨로 빚어낸 것이기에 각황전은 저리도 빼어나고 신비로운 불전이 된 것인가. 일찍이 선암사로부터 발길을 시작해 지리산을 돌아 경상도로 건너가 태백산맥의 긴긴 줄기를 거슬러오르며 금강산에 이르기까지 대소 사찰을 거의 빠뜨리지 않고 들렀고, 다시 그 길을 되짚어 내려오면서 살펴보았지만 각황전만한 불전을 찾지 못했음이 결코 우연한 일만은 아니었음은 백학으로 환생한 그 목수의 넋이 깨우치고 있었다.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이 독특한 문 창살 하나, 기와 지붕, 그 목수의 넋은 각황전 부분부분에서 역력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일찍이 깨달음을 이룩하신 세존께서는 영원무궁토록 녹슬지도 썩지도 않을 순금의 말씀을 남기시고, 신심 뜨거운 목수는 세월을 따라 변하는 인간의 간사한 눈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도록 빼어난 모습의 불전을 남겼는데, 삭발하여 4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어느 번뇌의 샛길만 방황하다가 이제 또 그 허허로운 발길을 어디로 돌리려 하고 있음인가. 운정은 점점 세차게 일어나는 부끄러움의 물결에 떼밀리듯 각황전을 뒤로 하고 돌아섰다.

주지는 굳이 일주문까지 배웅을 나왔다.
「인연의 바람에 실리면 또 뵈올 날이 있을 것입니다.」
운정은 깊이 허리 굽히며 합장을 했다.
원로에 부디 평안하시고, 부처님의 가피가 있으시기를..
주지도 이별의 합장을 했다. 운정은 4개월 남짓 머물렀던 구례 화엄사를 떠나고 있었다.

조정래/태백산맥2 중에서

* 각황전의 각황은 부처님을 깨달은 왕(성인중에 성인)이라는 뜻과 숙종 임금에게 불교 사상을 일깨워 주었다는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 2 >



운정은 먼 하늘가에다 시선을 보내며 산사(山寺)의 비탈길을 걸어내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청아하고도 고적하게 들려왔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결의 차가운 신선감처럼 그 물소리의 맑음에는티가 섞여 있지 않았다. 잎 떨군 나무들의 단출한 모습들이 보여주는 시각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이미 절기가 겨울로 바뀌어 있음을 청각으로도 촉각으로도 느낄 수가 있었다. 절기가 바뀌면 햇빛이 달라지고 바람이달라지고 물이 달라진다…… 아니, 그 순서가 뒤바뀌어야 옳다. 햇빛과 바람과 물이 달라져 절기를 바꾸는 것이고 뒤미처 인지(人智)가 그것을 깨달을 뿐인 것이다. 뒤늦게나마 인간이 그런 자연의 조화를 깨달음은 인간만의 지혜로움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영육(靈)이 거기로부터 비롯된 까닭에 일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교감인 것이리라. 한줄기의 햇살, 순간을 스치는 바람, 한 조각의 구름, 한 방울의 물, 하나의 나뭇잎,하나의 열매, 그런 것들이 전생의 내 모습이고, 후생의 내 모습임을 어찌 부인하랴. 현생이 다만 인간으로 지음된 인연의 업보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무수한 살인을 보았다. 낫으로 찍어 죽이고, 대창으로 쑤셔 죽이고, 몽둥이로 패서 죽이고, 참나무 가지에 팔다리를 묶어 찢어 죽이고, 돌을 매달아 물에 빠뜨려 죽이고………… 총 한 방에 죽어갈 수 있는 죽음은 차라리 얼마나 행복한 죽음이었던가. 그 온갖 살인이 자행되는 현장에서 몸서리치며 불경을 염송하며 그래도 견디려고 했었다. 그 불지옥을 피하는 비겁보다 불티 하나만이라도 끄는 고통을 감수하고자 함이었다.

'나는 새가 창공에 그 발자국을 새기지 못하듯이 인간사 그 무엇이 영겁 속에 남음이 있으라'

세존의 말씀이 먼먼 메아리로 울려오고 있었다. 사람이 만들었을 뿐인 주의 주장을 서로 내세우며 그리도 인명을 쉽게 살상하는 땅이 장차 어찌 될 것인지, 운정은 칠흑의 어둠 속을 걷는 것만 같이 발이 자꾸만 헛놓이고 있었다.

조정래/태백산맥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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