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아내의 잃어버린 삶을 찾아주기

송담(松潭) 2021. 8. 23. 07:59

아내의 잃어버린 삶을 찾아주기

 

 

내가 20년 동안 글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나와 함께 징역살이를 한 사람이 있다. 아내 김초혜다. 아내는 자기의 시 쓰는 일도 제쳐놓고 나의 옥바라지를 하느라고 날마다 시장을 다녀야 하고, 내가 써놓은 원고를 꼼꼼하게 읽어 감수자의 역할을 해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보다도 아내를 가장 괴롭혔던 일이 『태백산맥』 때문에 벌어진 여러 가지 사건들이었을 것이다. 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시작된 심야의 공갈 협박 전화, 검찰의 내사 소식, 그리고 마침내 터진 1994년의 고발 사태, 그에 따른 경찰청의 수사, 검찰의 수사, 지금까지 미해결 상태로 밀려온 고비고비를 넘기면서 가뜩이나 겁 많은 아내는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인가

 

아내는 주부로서 나의 건강을 지키고, 문학 동반자로서 내 소설을 지키고, 시인으로서 자신의 작품을 써내는 삼중고를 꿋꿋하게 이겨냈다. 그런 고생을 20년에 걸쳐 해온 아내에게 깊이 미안하고, 참으로 고맙다.

 

나는 『한강』을 끝내가면서 잠깐잠깐 아내의 잃어버린 인생을 찾아줄 계획을 세우고는 했다. 그 큰 줄기는 앞으로 20년 동안 아내를 모시고 다니며 매주 여행을 하려는 것이다. 좋은 곳을 찾아 느긋하게 구경하며 오붓한 시간을 갖고, 그러다 보면 아내의 시심(詩心)도 새로워지고, 나의 감성도 윤택해지는 부수 효과도 덩달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아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 한다. 나를 만나 살아온 35년 세월 동안 고생도 많이 했고, 몇 개월 전에는 대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수술 결과가 좋아 하늘의 도우심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아내가 수술을 하게 된 것이 꼭 내 잘못인 것만 같아 마음 아픈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아내를 수술실로 들여보내며 내가 아무 힘도 없는 것에 안타까운 절망을 했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네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 피마르는 초조를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수술 전날 아내를 입원시키면서 퇴원을 할 때까지 9일 동안 한시도 병실을 떠나지 않고 간호를 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딱 한 가지, 미리 사가지고 간 꽃카드에 날마다 사랑의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내가 잠든 밤 11시에 써서 다음날 아침 아내의 머리맡에 놓아두고 는 했다.

 

그런데 나는 며칠이 못 가 그 병동에서 유명해지고 말았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간병인을 전혀 쓰지 않고 남편이 꼬박 간호를 하는 것은 서울대학병원이 생긴 이래 최초의 일이고, 날마다 사랑의 카드를 아내에게 쓰는 남편도 처음 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간호사들이 신기해하는 그것이 이상했다. 어떻게 대수술을 한 아내를 간병인에게 맡겨놓고 집에서 잠이 온단 말인가. 그리고 환자의 회복은 정신적 위안이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데 남편들이 왜 사랑의 카드를 쓰지 않는 것인지. 그 이야기를 듣고 유심히 살펴보니 역시 다른 병실에는 밤에 병원에서 자는 남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제 아내와 함께 떠날 여행 계획들을 구체적으로 세울 꿈에 부풀어 있다. 아내가 나한테 봉사한 것의 두 배로 갚아주고 싶다. 세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많은 분들께 은혜를 입었다. 소설이 길고 무대가 넓다 보니 많은 취재를 해야 했고, 그때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 고마운 분들이 아니었으면 소설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고마움의 인사를 드린다.

 

새날을 향하여 새롭게 옷깃을 여미며.

 

2002년 1월

조정래

 

‘한강10권(한강을 마치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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