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조정래 / ‘한강8’중에서

송담(松潭) 2021. 8. 15. 20:58

조정래 / ‘한강8’중에서

 

< 1 >

 

 

세상에 법원의 영장 없이 체포하고, 전시도 아닌데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이게 도대체 무슨 나라예요.

서경혜가 말하는 것은 긴급조치 1호의 5항과 6항이었다. 대통령긴급조치 1호는 전체 7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2.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3.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4. 1, 2, 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행동을 금한다.

5.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원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 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6.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위반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7, 이 조치는 19741817시부터 시행한다.

 

(P.88)

 

< 2 >

 

 

간디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비폭력 저항'이라는 독립투쟁 방법을 세계 최초로 실행했기 때문입니다. 비폭력 저항이란 무기를 든 영국군을 향하여 인도의 독립대원들이 아무것도 갖지 않은 맨몸으로 덤벼 항의하고 독립을 외쳐대는 것입니다. 무장을 했지만 수가 적은 영국군은 자기네보다 수십 배가 넘는 인도사람들을 해산시키려고 공포를 쏘아대고, 그에 맞서 인도사람들은 '영국군 물러가라!'를 더 크게 외쳐대고, 그러다 안 되니까 영국군은 개머리판이나 몽둥이로 인도사람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합니다. 그때 인도 독립대원들은 맨주먹으로 맞서 싸우는 육박전을 하는 게 아닙니다. 때리는 대로 맞고 피 흘리며 쓰러집니다. 그럼 그 사람들을 끌어내고 다음 사람들이 앞으로 나섭니다. 그러는 동안 쓰러진 사람들은 여자 간호대가 치료를 합니다. 중상자들은 빼고 경상자들은 붕대를 감거나 붉은 약을 바른 몸으로 다시 줄을 서 영국군을 향해 덤벼듭니다. 부상자들이 다시 덤벼들고 또다시 덤벼들고 ……, 결국은 영국군들이 질려버리고 맙니다.

 

그러한 독립투쟁이 인도 곳곳에서 일어났고, 그 세계 최초의 육탄투쟁은 외국 기자들에 의해서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각 나라 사람들은 그 희한한 육탄투쟁에 놀라는 한편으로, 세계 여론은 비무장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해 대는 영국군을 지탄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영국은 인도에서 물러나지 않을수 없었고, 인도는 우리보다 2년 뒤인 1947년에 독립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하아, 총칼을 들지도 않고 독립을 하다니, 그런 묘한 방법도 있구만요.”

 

, 그런데 간디가 두 번째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일이 생겼어요.. 인도가 독립이 되었으면 당연히 간디가 인도를 다스리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간디는 권력을 잡지 않고 독립대원이었던 네루한테 수상을 맡게 하고 자기는 야인이 되었습니다. 그때 전세계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간디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간디가 죽었을 때 아무 권력도 직위도 없는 야인이었는데 세계 각국의 대통령이나 수상들이 가장 많이 조문을 온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사람들은 성인이란 뜻의 인도 말을 이름 앞에 붙여 '마하트마 간디'라고 부르게 되었던 겁니다

마하트마 간디, 마하트마 간다... 참 부처님이 따로 없구만요.”

 

(P.93~95)

 

< 3 >

 

 

이용진의 말대로 나흘이 지나 수사기관에서는 민청학련 사건 수사 상황을 발표했다. 민청학련은 유신 반대 데모를 지도하는 단체가 아니라 공산주의자의 배후조정을 받아 폭력 혁명을 기도한 빨갱이 집단으로 둔갑되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 민청학련 사건은 수사 전모가 발표되었다. 민청학련은 처음 그대로 빨갱이집단으로 못박인 채 비상군법회의로 넘겨진 사람이 자그마치 253명이었다.

 

(P.108,110)

 

< 4 >

 

 

주선녀가 김광자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안 울려고 하는데도 뜻대로 안 되네요. 심장도 이식하는 의술이 디스크를 완치시킬 수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고 충격이에요." 김광자가 공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도 이상해서 그 점을 물어봤어요. 그런데 설명을 듣고 보니 좀 이해가 됐어요. 간단하게 말하면, 척추에 전신으로 퍼지는 중요한 신경들이 워낙 많이 집결되어 있어서 고난도의 수술 중에 하나라는 거예요. 위 수술이나 장 수술 같은 것하고는 영 다르다는 거지요

"하필 병이 들어도…….” 김광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하필이 아니지요. 우리가 여기 와서 제일 많이 걸리는 병이 그거잖아요. 그 병을 얻어 중도에서 돌아간 사람이 내가 아는 것만도 열이 넘어요. 우리보다 몸집 큰 중환자들의 온갖 수발을 다 들어야 하는데 디스크가 상하지 않고 성하다면 그게 이상하지요."

 

..... 수술이 잘된다 하더라도 더는 간호원생활을 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그것은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디스크에 걸린 간호원들이 왜 귀국을 해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김광자는 눈을 감으며 가늘고 긴 한숨을 물었다.

 

계약기간을 연장하며 보낸 6년 세월……, 남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내년에 의대를 갈 참이었다. 그동안 기초공부도 다 마쳤고, 최소한의 돈도 모았다. 먼저 온 간호원들 중에서 의사 자격을 딴 사람이 있어서 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내 인생은 어찌 이리도 꼬이기만 하는 것인가……. 팔자를 드세게 타고난 것인가……. 교사가 되고 싶었던 꿈이 깨진 건 자신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독일에 와서는 일과 공부 이외에는 어디다가 눈길 한번 보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또 꿈은 깨졌다. 교사의 꿈이 깨진 것은 엄밀하게 따지자면 자신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원인은 가난이었다. 자신의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울 지경이었고, 은행원 이동원은 사랑을 호소하며 학비를 대주겠다고 했다. 교사의 꿈도 이루고, 은행원 남편도 얻고, 가난은 그런 계산을 쉽게 하게 했다. 이제 남은 건 서른두 살의 나이뿐이었다.

 

서른두 살………. 또 눈물이 솟으려고 해 김광자는 속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인생이 꼭 얼음산 같기만 했다. 그 산을 안간힘 쓰며 기어오르다가 미끄러지고 다시 기어오르다가 미끄러지고, 그러다 가 계곡으로 곤두박질해 처박히고, 또다시 기를 쓰고 기어오르다가 굴러떨어지고……. 이제 한쪽 다리가 마비되어 질질 끌어야 하는 형편이니 어찌할 것인가....

김광자는 창 밖의 어둠만 바라본 채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녀는 먼동이 터오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정했다. 가자, 어머니 곁으로.

 

김광자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며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귀국 준비는 따로 할 것이 없었다. 두꺼운 기초의학 서적 70여권을 빼고 나면 가져갈 물건이 별로 없었다. 김광자는 그 책들을 어루만지며 울고 또 울었다.

 

그들이 떠나기 사흘 전에 새로 온 한국 간호원 둘이 인사를 다녔다. 그 많은 광부와 간호원들이 딸라를 그렇게 벌어 보냈는데도 아직도 딸라가 모자라는 것인가………….

김광자는 이런 생각을 하며 앳된 얼굴의 두 간호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주선녀와 김광자가 떠나는 날 아침에 오전근무가 없는 간호원들이 모두 병원 정문까지 배웅을 나왔다. 주선녀는 김광자의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그 휠체어는 병원에서 김광자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김광자도 주선녀도 정문 앞에 대기한 차에 다다를 때까지 병원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P.13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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