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박태준에 대하여

송담(松潭) 2021. 8. 12. 17:09

박태준에 대하여

 

 

“박태준 사장이란 사람 아주 대단하다는 소문이야. 수학적인 머리가 뛰어나고, 논리적이며, 원리원칙주의자라는 거야. 해방 전에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거든. 보통 군출신들하고는 다르니까 알아서 접근해" 편집국장이 다시 일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 사람이 고수하는 원리원칙이 어느 정도나 하면 말야, 군대의 차는 사적으로 쓸 수 없다는 규칙을 지키느라고 큰딸을 잃어버린 사람이야. 무슨 말인가 하면, 전방 지휘관을 할 때 갑자기 큰딸이 아팠는데, 지휘관 찝차를 사적으로 써서는 안 된다고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어. 애는 밤새도록 앓고, 다음날에야 버스를 타고 몇 십리 밖 병원을 찾아간 거야. 그런데 급성폐럼이라서 애는 결국 죽고 말았지. 그 얘기를 듣고 우리 사장은 폭파를 막으려고 빽을 쓰고 있던 것을 포기하고 말았어. 그러니까 그 사람 앞에서는 눈가림, 속임수, 거짓말, 적당적당이 절대 통하지 않는데, 그런 완벽주의를 실천하려다 보니까 직접 현장감독을 하느라고 서울의 집에 1년에 두세 번 올라오면 많이 올라오는 거라는 거야. 그러기를 벌써 4년 했고, 앞으로도 몇 년을 더 그럴지 모른대. 그런 게 다 그 사람이 가진 남다른 애국심 때문이라는데, 하여튼 특이하고 대단하고 믿을만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

 

 

“내가 아는 건 그저 그렇고, 본격적으로 도움을 받으려면 저기 정치부장을 찾아가 봐. 권 부장이 옛날 최고회의 때부터 접촉했으니까 제일 많이 알 거야” 하며 턱짓했다.

“최고회의요?”

"국가재건최고회의 몰라? 5·16혁명 말야. 그때 박태준 씨가 박정희 의장의 비서실장이었거든."

"아 예, 알겠습니다.”

이상재는 급히 돌아서며 또 한 가지 사실을 머리에 새겼다. 그런데 반사적으로 의문이 일어났다. 비서실장이었으면 핵심 중에 핵심이었는데 왜 그 흔한 권좌를 차지하지 않았지? 무슨 일로 밉보인 건가?

 

"응, 그 사람은 국민과의 약속인 '혁명공약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더구나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을 마음대로 뜯어고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했던 거지."

"그래서 미움을 사 정치와 권력에서 멀어진 겁니까?"

"아니야, 그렇게 빨리 가지 말어. 오히려 그 반대야. 박 통이 정식으로 청와대 주인이 되자 그 측근들은 다투어 권좌를 차지하기에 정신이 없었는데, 그 사람은 미국 워싱턴대학으로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었어. 하도 이상해서 내가 굳이 찾아가 물어봤지. 지금 자네가 물은 것처럼, 미운털 박혀서 바다 건너 유배 가는 거냐고, 그랬더니 말없이 웃다가 하는 말이, 자기 혼자서라도 군대로 복귀하고 싶은데 그동안 정치판에서 순수한 군인정신을 너무 더럽혔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는 거야. 그래서 생각다 못해 새 길을 찾아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는 거였어. 그때 박 통은 공천 자리 하나를 비워놓고 그에게 고향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라고 종용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건 그렇다. 지더라도 3선개헌을 반대하고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나요? 김 모는 처음에 반대의사를 드러냈다가 중정에 끌려가서 반 죽게 당하고 나서 찬성에 앞장섰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소문인데….”

"그게 박 통의 사람을 보는 눈이지, 박태준이 끝까지 반대하며 찬성 서명을 하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은 박 통의 한마디가 박태준이 어떤 사람인지 잘 말해 주고 있어. 내버려둬, 그 사람 원래 그런 사람이야, 했다는 거야. 박 통이 볼 때 박태준의 반대는 원리원칙에 입각한 순수성이랄까 진정성이 있는 반면에 김 모의 반대에는 정치적 야망이 들어 있다는 것을 간파한 거지. 하늘에 태양은 하나뿐이라는 말이 있잖아. 3선개헌을 작심한 박 통 앞에서 그 누가 감히 불순한 반기를 들 수 있겠어."

 

권 부장은 이상재가 따르는 술을 잘도 받아마시며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예, 손에 쥐여준 국회의원을 마다한 박태준 씨니까 그 순수성이나 비정치성은 이해가 되는데요, 그 삶의 방식이나 태도가 별로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는 두 사람이 어떻게 조화랄까 관계가 유지되는 거지요?"

 

"음.….. 그거 의문이 생길 만한 거로군. 그걸 한마디로 하자면 박 통이 쓸 만한 사람 하나 잘 만난 셈이지. 두 사람은 단순히 군대의 상관과 부하 관계 이전에 육사에서 스승과 제자로서의 인연부터 맺은 사이야. 우리나라의 그 특수한 사제지간의 정이라는 것 있잖아? 그걸 바탕으로 두 사람 사이는 깊어졌는데, 박 통이 그 사람을 얼마나 믿었는지 알아? 박태준을 쿠데타에 직접 가담시키지 않고 빼두었는데, 왜 그랬냐 하면, 쿠데타가 실패하는 경우 박 통 자신의 가족을 맡기기 위해서였다는 거야. 그건 박 통이 직접 한 말인데, 어찌 보면 박태준의 영광 같지만 실은 박 통의 행복인 거야.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갖는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야? 내가 겪어본 바로는 박태준은 그렇게 믿어도 좋은 사람이야.”

 

"그럼 그런 믿음으로 대한중석 사장도 시키고 포철 사장도 시킨건가요?"

 

"그렇지. 아주 제대로 짚는군. 그런데 그 전에 맡은 또 하나 중책이 있었어. 한일회담을 효과적으로 진척시키기 위해 대통령 밀사로 일본에 특파되어 활동한 거지. 일본에서 대학을 다녀서 스승, 선배, 동창 등 지인들이 많았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때 남긴 에피소드가 또 희한한 게 있어, 일본에서는 우리 정부 쪽 인사들이 가면 으레 여자 대접을 했던 모양인데, 그 사람은 호텔 방으로 찾아든 여자를 단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은 유일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

"그때 아주 젊은 나이 아니었던가요?"

"그럼, 젊다마다. 서른일곱, 여덟, 그런 나이였지. 자넨 그럴 자신 있어?"

 

"그리고 아까 말한 대한중석 얘긴데, 그 대한중석이라는 게 이승만정권, 장면정권에서 내리 부정사건으로 정치적 말썽이 일어났았어? 그게 왜 그랬냐 하면 중석이 황금알 낳는 거위로 정치자금의 홈통이었던 거야. 중석이 바로 텅스텐인데, 그게 전구의 필라멘트로 쓰인다고 우린 교과서에서 배웠잖아? 근데 그게 그보다 훨씬 중요하게, 우주 로켓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재료라는 거야. 그래서 미국으로 전량 수출되는 달러박스였어. 그 돈을 손쉽게 정치자금으로 이용해 먹으니 주인 없는 그 회사 꼴이 어찌 됐겠어? 충층이 해 먹느라고 정신없어 회사는 썩고 썩어 만년적자에 빠져 있었지. 박태준은 그런 회사를 맡아 1년 만에 흑자 회사로 돌려놓았어. 그 비결이 뭔지 알아?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채굴 현장으로 가서 1천 미터 이하의 갱 속으로 직접 들어간 거야. 전임 사장들이야 갱은 고사하고 현장에도 와보지 않았는데, 우스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어. 박태준이 포철로 옮기고 신임 사장이 현장 시찰을 나왔지. 현장소장은 박 사장 때 했던 것처럼 신임 사장을 갱으로 들어가는 승강기에 태웠지. 그랬더니 어떻게 됐겠어? 신임 사장이 노발대발, 난리가 난 거야. 현장소장은 정반대의 상황 속에서 두 번 진땀을 뺀 거지. 박태준은 그런 사람이야."

 

"그럼 포철 준공을 기적이라고 하는 건 박태준을 모르고 하는 소리로군요?”

"그래, 그렇게 볼 수 있지. 박태준이 아니었으면 그 대역사가 이룩되지 않았을 것은 틀림없어. 포철에 관한 구체적인 것은 나도 잘 모르니까 현장에 가서 취재하도록 하고,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직접 철강을 생산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 형태와 산업의 길을 완전히 바꾸는 획기적 사건이야."

 

--------------------------------------------------------------------------

 

"아직 공사가 덜 끝난 겁니까?" 이상재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아닙니다. 제1고로는 완성됐고, 제4고로까지 공사가 계속 추진되고 있습니다.”

"아, 예. 그래서 저 빈터들이 저렇게 많이 남아 있는 모양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4기까지 완성되려면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릅니다.”

"그럼 준공식이란 게………, 너무 빠른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건 좀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제1고로가 완성된 제1기 공사까지가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1기 공사를 완결하는 단계에서 이미 제4고로까지 세울 수 있는 부지 공사를 완료했고, 제철에 필요한 각종 공장을 21개 완성했으며, 그에 따른 기반시설을 다 갖추었습니다. 그래서 연산 103만 톤 생산 능력의 종합제철소를 처음 계획대로 완성시킨 겁니다. 여기에 투입된 돈이 1억 7천8백만 달러고, 그 액수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 두 배에 달합니다. 그 토대 위에서 제2고로부터 제4고로까지는 세워질 테니까 제1고로 준공이 그 의미가 절대적이라는 겁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했지만 포철 건설이야말로 한반도 유사 이래 최대의 설비공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 막연했던 말의 주인공이 바로 포철이 아닐까 합니다. 두고보십시오. 오늘의 포철을 탄생시킨 박태준 사장님과 포철은 반드시 이 나라 경제건설의 주인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떻게 기술자들 중에 외국사람은 하나도 안보이고 전부가…….”

“아 예, 참 유심히 보셨군요. 지금 포철의 모든 생산라인에는 외국 기술자들 없이 우리나라 기술자들만 일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술자립’이라고 부르는데, 종합제철을 완공한 첫해부터 이렇게 되는 것은 후발국으로서는 세계 최초의 일일 것이고, 이것이 포철의 또 하나 자랑거리입니다. 지금 현재 포철은 세계 수준의 기술자들을 600명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술자립을 하기까지는 지난 68년부터 6년 세월을 바쳤고, 50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장님께서는 70년에 공장을 건설하기 전에 벌써, 그러니까 회사를 창립하고 부지 공사를 시작함과 동시에 기술자립을 위해 유능한 사람들을 뽑아 외국 철강회사에 기술연수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참 선견지명이 있는 일인데요."

 

----------------------------------

 

자료를 보니까 사장님께서는 제철보국(製鐵報國)을 역설하셨는데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예, 그건 철강산업을 일으켜 국가발전을 도모하자는 단순한 뜻이 아니라 그야말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어렵고 곡절 많았던 외자도입 과정을 다 말할 수는 없고, 간단히 줄이면 포철의 건설비 중에는 한일협상의 결과인 대일 청구권자금 일부가 들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대일 청구권자금이 어떤 돈입니까. 그건 우리 선조들이 흘린 고귀한 피의 대가이고, 우리 민족 전체가 겪었던 수난과 고통의 대가입니다. 그런 소중한 돈으로 제철회사를 건설했으니 포철은 마땅히 민족과 국가에 보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포철은 영원한 민족기업이며, 그 누구도 감히 그 엄정한 역사성을 변질시키거나 훼손할 수가 없습니다. 민족기업으로서의 제철보국, 그 숭엄한 뜻을 이룩하기 위해 포철을 튼튼하게 육성시켜 나가는 것이 저와 임직원 전체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박태준 사장은 느리게 또박또박 말해 나갔는데 그 어조에는 탄력적인 힘이 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은 더욱 서늘하고 매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예, 그런데, 거의 모든 시설이 일본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왜 하필 일본 것입니까?"

"예, 아주 중요한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그 연유도 자세히 다 말하기는 이런 인터뷰에서 불가능하니까 간략하게 요약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종합제철소 건설을 지난 61년에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66년이 되어서야 미국·서독·영국·이탈리아 4개국으로 형성된 대한 국제제철차관단인 KISA가 발족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에 걸처 지루하게 사업 타당성을 검토해 오던 KISA는 69년 1월에 이르러 차관 불가의 태도를 취했습니다. 한국의 경제 능력으로 돈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습니다. 저는 미국으로 달려가 무진 애를 다 썼지만 이미 우리를 외면해 버린 미국 대표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포철은 KISA를 믿고 부지조성은 말할 것도 없고 해외로 기술연수까지 보내고 있었습니다. 종합제철 건설의 꿈이 무너지는 그 참담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1억 불이 넘는 거액을 빌려줄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 암담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 제가 생각해 낸 것이 대일 청구권자금 전용이었습니다. 이것도 이야기가 복잡하고 길기 때문에 여기선 생략하겠습니다. 그 자금 전용을 해결해 나가면서 동시에 일본 제철회사들이 포철 건설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고비를 거쳐 일본 회사들이 포철 건설의 주역이 된 것입니다.”

 

"한국에 종합제철이 생기는 것은 일본 제철회사들 입장에서는 가장 가까운 시장을 잃어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런 협조가 가능했습니까?"

“예, 정확하게 보신 겁니다. 그 일을 성사시키는 데 제 평생 잊을 수 없는 두 분이 있습니다. 일본 제일의 양명학자인 아스오카 선생과 야하타제철소의 이나야마 사장입니다. 아스오카 선생은 일본군국주의를 비판했던 학자로 제가 유학 시절부터 존경했던 분입니다. 정·재계 인사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그분이 이나야마 사장을 소개해 주었고, 이나야마 사장은 다른 제철소 사장들을 설득해 주었습니다. 이나야마 사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이 과거의 불행을 딛고 일어나 경제발전의 첫 단계인 종합제철소를 건설한다면 일본은 당연히 협조를 해야 합니다. 일본의 과거 잘못으로 인해 한국민족이 겪었던 불행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포철 프로젝트가 잘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 두 분이 아니었으면 오늘날의 포철은 존재할 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분께 다시 머리 숙입니다."

 

“정계를 비롯해서 재계, 언론계까지 포철은 실패할 거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그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후발국들은 종합제철 건설에 거듭 실패하고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나라가 브라질과 터키입니다. 특히 브라질은 나라가 굉장히 크고 천연자원이 풍부한데도 실패했는데 우리나라는 별다른 자원도 없으니 더 어렵지 않으냐 하는 생각들이었습니다. 성심을 다한 사람의 힘은 하늘도 움직인다는 말을 저는 믿습니다.”

 

이상재는 앞에 커다란 쇳덩어리가 버티고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그 쇳덩어리는 견고함과 무게감과는 달리 변함없이 '저는……, 저는……' 하는 겸손을 보이고 있었다.

 

"예, 유치원과 직원 주택도 돌아보았습니다. 그런 사원복지시설은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서 최초의 일로 아주 바람직하고 모범적입니다. 그리고 그 종합계획도 아주 획기적입니다. 그런데 건설비가 막대하게 투자된 상황 속에서 회사경영을 정상화하는 동시에 그런 복지계획을 실현시킨다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아, 그런 것까지 다 보셨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 두가지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제 1기 공사 완공까지 전체적으로 공기를 한 달 단축시켜 건설비용을 절약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우리는 톤당 건설비가 287달러밖에 들지 않아 다른 나라의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건설 과정에서 이미 경쟁력을 확보해 놓은 상태입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최고 품질의 철강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일도 틀림없이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맨주먹으로 회사를 세운 직원들이 그 일쯤 못 해내겠습니까?"

 

사장님 숙소에서 '짧은 인생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인생관과 애국심이 형성된 것입니까?"

"이런, 숙소까지 보셨습니까! 그게 그러니까…. 저의 유학 시절에 아까 말씀드렸던 아스오카 선생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생은 '공적 사회적 임무를 맡은 사람은 사심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지식과 실천이 일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감명 깊게 가슴에 박혔고, 해방이 되어 제 나름으로 진로를 고심하다가 나라를 위해 한평생 살기로 결심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육사 교육을 통해 애국관을 정립하다가 6·25를 당했습니다. 저는 소대장으로 동료들과 함께 최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장교들이 죽어 있는데 대부분 총알을 등뒤에 맞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적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도주하다 총들을 맞은 것입니다. 그때 깨달은 바가 컸습니다. 무슨 일이든 정면으로 맞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후로 어긴 적이 없습니다.”

“예, 긴 시간 정말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포철의 발전을 빌겠습니다."

"예, 이렇게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원로에 편히 가십시오."

박태준 사장은 시계를 보며 바뼈 나갔다. 이상재는 드높은 고로를 생각하며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거인의 뒷모습이 이상하게도 외로워 보였다.

 

조정래 / ‘한강7’중에서

 

* 위 글 제목 ‘박태준에 대하여’는 독자가 임의로 정하였음.

'조정래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정래 / ‘한강8’중에서  (0) 2021.08.15
조정래 / ‘한강7’중에서  (0) 2021.08.13
조정래 / ‘한강6’중에서  (0) 2021.08.10
어야, 단풍 참 오지게 곱다!  (0) 2021.08.08
조정래 / ‘한강5’중에서  (0) 2021.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