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어야, 단풍 참 오지게 곱다!

송담(松潭) 2021. 8. 8. 12:02

어야, 단풍 참 오지게 곱다!

 

 

“허, 요런 무주 산골꺼정 머리크락이 동나부렀네 그랴. 워떤 놈덜이 골골이 잘도 더터묵었당께로.”

천두만은 산골동네를 나서며 허탈하게 혼잣말을 뇌까리고 있었다. 마을을 둘러싼 첩첩의 산에는 색색의 단풍이 꽃의 아름다움을 비웃듯 낭자하게 물들어 있었다.

"아저씨, 저 개울가에서 좀 쉬었다 가요. 맥빠져서 더 못 걷겠어요."

뒤따르던 미용사 아가씨가 가방을 추스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려, 물도 한 모금 묵고 낯도 잠 씻고 허드라고."

천두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개울 쪽으로 발길을 잡았다. 미용사 아가씨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뭐라고 투덜거렸다. 그 뒤를 군용 배낭을 진 나복남이 터덕터덕 따르고 있었다.

 

"어야, 단풍 참 오지게 곱다."

천두만이 개울가에 털퍽 주저앉으며 주변 산들을 둘러보았다.

"아저씨는 참 속도 편하시네요. 속타는 판에 단풍이 다 보이고요."

미용사 아가씨가 가방을 던지듯 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허허, 일이 심에 안 차는 것이야 안 차는 것이고, 단풍이 고운 것이야 고운 것이제, 이 시상 일이라는 것이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는데, 일이 잠 꾀인다고 그리 속낄이고 꼬트작거리면 몸만 상허는 법이여, 그럴수록 맘 푼더분하니 묵어야 써.” 천두만은 담배를 꺼냈다.

"꼬트작거리는 게 뭐예요?" 미용사가 해맑게 흘러내리는 개울물에 손을 씻으며 천두만을 쳐다보았다.

"이? 꼬트작이 꼬트작이제 머시여? 가만있거라…, 긍께 고것을 서울말로 머시라고 혀야 쓸끄나?" 천두만은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그것이 긍께로…. 거 머시냐, 무신 속상하는 일로 맘얼 편케 묵덜 못하고 지 속얼 비비꼬고 비비틀고, 찰떡 방애 찧디끼 지 속을 지가 짓이기는 것이여. 긍께로 지 성질에 몸꺼정 상하는 것이제” 그는 힘겹게 설명하고는 담배연기를 후우 내뿜었다.

 

미용사는 화풀이를 하듯 개울물로 마구 얼굴을 씻기 시작했다.

개울물은 어찌나 맑은지 바닥의 작은 모래알까지 투명하게 들여다보였다. 긴긴 세월에 걸쳐서 물결에 씻겨온 바위들이 여러 가지 형상으로 개울물 여기저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 바위들을 감아도는 물줄기들은 화음 잔잔하고도 그윽한 자연 음악을 끊임없이 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넓은 암반 위를 흘러내리는 물줄기의 유연한 흐름은 하얀 천이 순한 바람결을 타고 느리게 펄력거리는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흐드러진 꽃사태라도 당할 도리가 없이 온통 단풍으로 물든 주변 산의 그 어느 나무에서 떨어진 것인지 이따금 붉은 낙엽, 노란 낙엽이 물결에 실려 어디론가 떠가고는 했다. 해맑은 물줄기 위에서 그 낙엽들은 한결 고와 보였다.

 

천두만은 곧 물속으로 빠질 듯한 자세로 엉덩이를 치켜들고 엎드려 오래도록 물을 마셨다.

"아이고메 션타. 산이 짚은께로 물도 요리 맑고, 맛도 달디달시.”

천두만은 긴 숨을 토해내며 소매 끝으로 입을 훔쳤다.

 

"아저씨는 왜 사투리를 안 고치세요? 서울서 산 게 10년도 넘었다면서."

가방을 챙겨든 미용사가 무슨 트집을 잡듯이 말했다.

"워째? 글면 안 될 일 있당가?" 배낭끈을 어깨에 걸치던 천두만은 눈을 치렀다.

"아저씨 말 들으면 못 알아들을 말이 너무 많잖아요."

"이, 나는 또 무슨 소리라고, 워찌워찌 돈 잠 벌면 고향 찾어 내래갈 것인디 멀라고 존 고향말을 고치고 말고 혀, 항, 고향 찾어가야제." 천두만은 배낭을 지고 일어났다.

 

"아저씨는 참 이상하네요. 남들은 서울로 못 올라와서 안달인데, 아저씨는 왜 진작 서울에 올라와서는 또 내려가려고 그러세요?"

"몰르는 소리 말어. 서울이 머 좋아서 올라왔간디. 죽도 사도 못해 올라온 것이제, 서울은 짠뜩 정신없이 북대기기만 허제 사람 살디가 아니여. 내 전답만 있음사 고향서 이웃간에 따순 정 나눔서 푼더분하니 사는 것이 질이제, 하먼, 사람 한시상 사는 것이 먼디. 서울은 10년 아니라 100년을 살아도 정이 안 드는 디여, 서로 모지락시럽고 인정머리 없는 것이 서울 아니드라고, 인자 야그 그만허고 싸게싸게 걸어. 해 떨어지기 전에 잠자리 찾아들어야 형께.”

 

해가 지고 어둑발에 산도 단풍도 묻혀갈 즈음에 그들은 국밥집에 잠자리를 정했다. 저녁을 먹고 미용사는 자리를 떴고, 천두만은 나복남을 데리고 술잔을 기울였다.

 

조정래 / ‘한강6’중에서

 

* 위 글 제목 ‘어야, 단풍 참 오지게 곱다!’는 글  내용에 있는 표현으로 독자가 임의로 정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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