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바람
청계천 끝머리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무허가 집들의 모양새는 그대로 거지의 누더기였다. 흔히 무허가 판자촌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판자나마 네 벽에 제대로 둘러친 집을 찾기가 어려웠다. 기껏 판자라고 어느 한쪽 벽에 붙인 것도 시멘트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공사판의 쓰레기거나,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주워다 모은 길이도 두께도 다른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판자도 붙이지 못한 데는 여러 군데를 땜질한 천막이 쳐져 있는가 하면, 다 낡은 미군용 우비가 벽을 대신하고 있기도 했다. 창문이라는 것도 손 닿는대로 주워다 단 것들이라 모양이며 크기가 제멋대로 각양각색이었다. 저런 데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누더기 집들은 찌든 가난으로 맥질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궁색한 동네에도 변해가는 세상바람은 불어오고 있었다. 아니, 누구보다 가난하기 때문에 그 동네사람들은 새로운 돈벌이에 더욱 민감한지도 몰랐다. 그 동네사람들은 바로 월남 돈벌이에 들떠 있었다.
“보소, 보소, 학식 높고 기술 있으면 펜대 굴리제 멀라고 전쟁터에 노무자로 가겠소, 내 들으니께네 몸 실하고 기운 잘 쓰면 된다캅디다. 밑져야 본전이니께네 다 원서 내보는 기라요.” 성질 급한 전 씨의 말이었다.
"그려, 운전하는 기술은 없어도 지게에 등짐 지는 것이야 둘찌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잉께 원선지 먼지 얼렁 내보드라고, 지게질 잘하는 것도 워디 예사 기술이간디?" 김 씨가 담배를 말며 거들었다.
"글씨, 올라가지 못할 낭구 쳐다보덜 말랐는데,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니기넌 헌디 말여, 우리가 원체로 무식헌 디다가 아는 것이야 농사일밖에 없응께로, 근디, 문 씨는 워째 안직도 원서 안 내고 있소? 대보름 오곡밥 하는 것도 아닌디 머 그리 오래 뜸딜일 일이 있으시요?" 김 씨가 말이담배에 침을 듬뿍 바르며 옆사람을 쳐다보았다.
"글쎄요. 내기는 내야 되겠는데 어째 전쟁터라서 기분이 찜찜하고 그렇네요. 월남은 다른 전쟁터하고는 달라서 전방 후방도 없이 베트콩들이 아무데서나 막 튀어나온다잖아요. 그런 정신없는 전쟁판에서 보급물자 싣고 다니다간 언제 골로 갈지 모를 일이거든요."
"그 말이 맞구먼유. 재수 없는 사람이야 접시물에도 빠져죽고, 명 길게 타고난 사람이야 전쟁터에서도 총알이 피해가는 법인게유. 돈 버는 거야 다 때가 있고 시가 있는 법인게 우선 가고 보는 게 상수지유” 강 씨가 부러운 눈길로 문 씨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려, 요런 똥구뎅이 팔자 면할라면 이리 때가 왔을 적에 이판사판 일을 저질러야 하는 것이여. 글안하고 눈이 올 것이다냐. 비가 올 것이다냐 험서, 뭉기적이고 있다가는 평상 거렁뱅이 꼴 면허기넌 틀린 것잉께.” 김 씨가 문 씨의 잔에 술을 따랐다.
문 씨라는 남자, 문태복은 농부 출신이 대부분인 그 누더기촌에서 좀 색다른 존재였다. 트럭 운전을 하던 그는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1년 남짓 감옥살이 끝에 풀려나 싼 셋방을 찾아 이 동네로 흘러들었다. 감옥살이로 빈털터리가 된 그로서는 교통 편하고 셋방 싼 이 누더기촌이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아직 고정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임시 운전수로 택시를 몰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처지였다.
"다들 우짤끼요? 뻐떡 해치우는 기 안 좋겠능교?" 술기운이 벌겋게 돋은 전 씨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이튿날 아침에 전 씨 집 앞으로 모였다. 모두가 다른 날과는 달리 나름대로 옷을 빼입고 있었다. 그러나 때 절고 냄새나는 것을 면했을 뿐 옷들은 낡고 볼품이라고는 없었다. 그들은 시내 지리를 제일 잘 아는 문태복을 앞장세워 동대문까지 걸어나와 전차를 탔다. 화신 앞에서 전차를 내리고, 소공동으로 회사를 찾아가는 동안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회사 앞에는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그들은 기가 죽어 서로 눈치를 보았다. 사람들은 회사 안에서 지원서를 받아가지고 나오기도 하고, 끼리끼리 모여 지원서에 무엇을 쓰기도 하느라고 분주했다. 그들은 자신들 중에서 유일하게 중학교를 나온 문태복을 다시 앞세워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꼭 자필로 쓰고, 거짓말로 쓰면 안 됩니다. 조사해서 사실이 아니면 합격이 취소되니까요."
지원서를 나눠주는 사람의 말이었다.
밖으로 나와 지원서를 본 그들은 부라부랴 속성 사진관을 찾아갔다. 지원서는 당일로 내야 하고, 집에 간다고 찍어둔 사진은 없었다. 사진이 되기까지 세 시간 동안 그들은 팔자에 없는 다방에 들어가 쓴 커피 한 잔씩으로 점심을 대신하며 지원서 쓰기에 온 정성을 다 바쳤다. 아무도 필기구를 가지고 있지 않아 잉크와 펜대를 사서 문태복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연필은 몰라도 펜대는 처음 잡아보는 거라서 연신 손이 떨리며 글씨가 삐뚤삐뚤 질정이 없었다. 학력란에는 모두 국민학교라고 적혀 있었다.
면접은 이틀 뒤였다. "기술은 아무것도 없나요?" 면접 보는 사람의 물음이었다.
"저어 마시냐, 등짐 지고 기운 쓰는 것이야 자신이 있구만요." 천두만은 힘주어 대답했다.
“예, 알았어요. 나가보세요."
밖으로 나오면서 천두만은 허망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억울한 기분이기도 했다. 그 한마디를 하려고 네댓 시간이나 기다린 셈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한마디씩밖에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발표는 사흘 뒤였다.
그들은 불안한 채로 술추렴 자리에서도 그 이야기를 서로 피했다. 발표를 보러 가면서도 그들은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원서를 내러 갔던 날의 긴장이 불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합격자는 문태복 하나뿐이었다.
“나가 머라고 허등감? 사람 팔자가 그리 쉽게 바꽈지간디. 참새는 참새로 살아야제."
천두만이 카악 가래를 돋우어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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