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 ‘한강5’중에서
< 1 >
“예, 다름이 아니라 우리 평화시장에 있는 봉제공장들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는 사실들이 너무 많아 공원들의 실태조사 자료를 가지고 시정해 주십사 하고 찾아뵈었습니다."
전태일은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이며 봉투에서 서류를 꺼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이야기를 들을 자세를 전혀 갖추지 않은 채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훅 내뿜으며 책상 옆구리에 붙여둔 빈 의자가 있는데도 자리를 권하지 않았다.
“저어, 저희들이 일하는 봉제공장들은 작업환경부터 사람으로서 견딜 수 없도록 형편없이 나쁩니다. 먼저, 천장 높이가 1.5미터밖에 안 되어 모두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해야 합니다. 원래는 3미터 높이였는데 사장들이 임대료를 줄이고 돈을 많이 벌려고 절반을 막아 2층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그런 공장들은 대개 8평 정도고, 평균 32명씩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비좁은 공장이 복도로 통하는 문 외에는 세 벽이 모두 막혀 있어 통풍이 전혀 안될 뿐만 아니라 환기장치도 일절 없다는 사실입니다. 감독관님, 봉제공장은 모두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통풍도 안 되고 환기장치도 전혀 없으니 원단에서 풍기는 코를 찌르는 포르말린 냄새며, 옷감을 재단하고 옷들을 만들면서 끝없이 일어나는 실밥먼지는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대로 공장 안에 갇혀 있어서 공장 안은 언제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침침합니다. 공원들은 그 먼지를 다 마시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지가 많이 나는 옷감일 때는 서너 시간만 일해도 먼지가 앉아 머리가 허옇게 되고, 도시락을 펴놓고 첫숟가락을 넘기기도 전에 밥에 먼지가 허옇게 내려앉아 먼지밥을 먹는 실정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먼지구덩이에서 날마다 14시간씩 일을 하다 보니 기관지염·진폐증·폐결핵·각종 눈병들이.….”
"이봐, 이봐,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 다 듣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게 요점만 말해, 요점만." 근로감독관이 잔뜩 얼굴을 찡그리며 짜증스럽게 내쏘았다. "예, 지금 요점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실밥먼지가 안개 낀 것처럼 자욱한 속에서 천장이 낮아 허리를 펴지 못하고 구부린 채 하루에 14시간이 넘도록 일을 하고 나면 누구나 창백한 얼굴로 비칠거리고, 기침을 해대며 가래를 토했다.
가래를 토하고 코를 풀면 그건 시커먼 먼지덩어리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환풍기 하나 달아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전기요금이 나오는데 사장이 달아줄 리 없었고, 그런 말을 했다간 그날로 잘리고 말았다. 800개가 넘는 공장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 그 모양이니 꼼짝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사장들은 언제나 밑진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 뻔한 거짓말을 귀에 담는 공원은 아무도 없었다.
각 공장만 그 지경이 아니라 1만 명 이상의 일터인 평화시장 건물 자체에 아예 환기시설이 없었다. 그런데다 건물 구조마저 통풍과 채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는 공장 안의 형편없는 조명이었다. 먼지가 가득 찬 데다가 햇빛도 거의 들지 않고 조명시설마저 나빠 공장 안은 대낮에도 언제나 어두컴컴했다. 그런데 공원들의 눈앞에는 백열등이 켜져 있었다. 바로 눈을 찌르는 백열등 불빛을 받으며 일을 하다 보면 눈이 부시다 못해 시어져 모든 공원들의 눈은 언제나 토끼눈처럼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은 먼지와 함께 온갖 눈병을 일으켜 밝은 햇빛 아래 나오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속에서 잠시 쉴 틈도 없이 매일 14시간씩 일을 하다 보니 미싱사고 미싱 보조고 시다들이고 만성적인 질병들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일거리가 밀려들면 사장들은 밤을 꼬박꼬박 새우며 사나흘씩 밤낮으로 일을 시켰다.
그럴 때면 으레 어린 시다들에게 잠 안 오는 약을 먹이거나, 그것으로 안 되면 주사까지 놓아가며 일을 몰아댔다. 그러다 보면 얼굴이 누렇게 뜨고, 눈알이 멀겋게 돌아가면서 비틀비틀 쓰러지기도 했고, 심한 기침을 하며 핏덩이를 토하기도 했다.
그렇게 부려먹으면서 월급이나 많이 준다면 또 모른다. 대개 열네다섯 살의 소녀인 시다들은 한 달에 1,800원에서 많아야 3천 원을 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돈에서 공장에 오가는 차비를 빼면 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시다들은 거의가 점심을 굶는 형편이었고, 조금 나은 애들이라고 해야 1원짜리 풀빵 두세 개로 한 끼를 때웠다. 미싱 보조나 재단 보조도 별다를 것이 없었고, 미싱사와 재단사나 돈을 좀 만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공장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더 많은 병을 얻어 골병이 들어 있었다.
(P.186~191)
< 2 >
그 푸릇푸릇한 점들은 광부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흉터였다. 광부들은 지하 1천 미터에 이르는 갱내에 들어가면 평균 35도를 웃도는 지열 때문에 팬티바람으로 작업을 했다. 그런데 갱의 천장은 파낸 지 얼마 안 되는 데다 석탄을 캐내는 기계의 진동으로 잔돌들이 떨어져내렸다. 머리가 띵하고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심한 지압 때문에 잔돌들은 광부들의 몸에 부딪치며 꼭 상처를 냈다. 그러나 지압의 마술로 광부들은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않았다. 1미터 앞이 침침할 정도로 석탄가루가 가득 찬 속에서 팬티바람으로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광부들의 몸뚱이는 먹물을 뒤집어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잔돌들이 낸 상처에도 석탄가루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광부들이 갱에서 나올 즈음에는 상처에 피막이 생기게 되고, 밖으로 나와 바로 샤워를 하지만 피막 속에 들어 있는 석탄가루는 씻겨지지 않았다. 상처가 그대로 아물어 낫게되면 어김없이 푸릇푸릇한 흉터가 되고 말았다. 그건 광부들만 지니게 되는 ‘석탄 문신’이었다.
(P.282)
< 3 >
고등고시 합격자들은 부잣집이나 권력자 집안으로 혼처가 생기는 것을 무슨 보너스라도 받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 기득권 의식은 일류대학 법대생이 되면서부터 벌써 자리잡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고등고시 합격을 최고 출세로 여기는 사회풍조, 권세와 부를 동시에 누리고 있는 선배들의 손쉬운 출세 행로, 그런 출세를 능력 있는 것으로 은근히 부러워하는 학교 전체의 분위기, 그런 것들에다가 머리 좋고 공부깨나 한다는 자만이 뒤섞이면서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의식은 자연스럽게 굳어져갔다.
그건 일순간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가난에 찌들면 찌들수록 그 방법은 옳게 여겨지고, 그 길은 목말랐다. 그런데 그런 풍조는 사회적으로 인기가 있는 법대나 의대생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대학생들은 부잣집 딸들을 하나씩 물거나 낚아야 한다는 말을 예사로 했고, 취중진언이더라고 농담 비슷하게 하는 그 말들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가난한 시골 학생들이 부자 많은 서울로 유학 와서 그런 유혹적인 세태에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욕심에 눈이 어두워 일으키는 착각인 경우가 많았다. 자신도 그 덫에 걸린 한심스러운 인간이었다. 아내가 시집 식구들이 서울로 이사 오는 것을 거부하고 생활비를 보내기로 했으면 그것이나마 제대로 했어야 하는데 매달 말썽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장모는 결혼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자신의 집안을 지배해 온 제왕이었고 무법자였다. 아내는 그 보호막 속에서 남편을 맘껏 희롱도 하고 짓밟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쾌락을 즐기고 있었다.
특정 부류의 그런 결혼행태는 이미 사회적인 지탄거리가 되어 있었다. 여러 문필가들의 글 속에서 조건과 타협해서 결혼한 판검사나 의사들은 속물들로 조롱당하고 있었다. 이규백은 가끔 그런 글을 대하며 기분이 언짢았다. 그러나 그들이 지적하는 속물근성이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려, 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 헌다고 했니라. 남자는 여자하고 달버서 기가 살아야 하는 것인디.…, 참말로 니 존 재주가 아깝다.”
어머니의 탄식이 변함없이 가슴의 계곡 계곡을 울리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하고 달버서 기가 살아야 하는 것인다…….' 이 예사로운 것 같은 한마디의 의미가 살아갈수록 속 깊이 감겨오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가장으로서의 위신이나 체면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남자가 기가 죽으면 밤에 그것마저 제대로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P.31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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