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조정래 / ‘한강2’중에서

송담(松潭) 2021. 7. 30. 15:42

조정래 / ‘한강2’중에서

 

< 1 >

 

 

선태는 여동생 명숙이의 일로 하루 종일 공부가 되지 않고 우울했다. 그건 어쩌면 자신이 겪고 있는 갈등과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자신은 어찌할 수 없어 농고로 전학을 하긴 했지만 마음의 절반은 인문학교에 걸쳐진 채 우울하고 괴로웠다. 법관이 되려고 했던 꿈을 포기해야 하는 패배감이나 좌절감도 컸고,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한다는 데도 자신감이 서지 않았다. 평생고생만 한 아버지의 삶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앞섰고, 농고의 분위기도 그 두려움에 부채질을 할 뿐이었다. 대부분의 농고생들이 인문학교 학생들에게 열등감을 갖듯 자신들이 농부가 된다는 것을 암담해하거나 풀죽어 있었고, 선생들도 그저 교과서에 있는 것을 가르칠 뿐 장래에 대한 그 어떤 희망이나 자신감도 주지 못했다. 그나마 공부를 좀 하는 애들은 읍·면사무소에서 펜대를 굴리는 공무원으로 살 궁리를 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이었다.

 

선태는 무거운 발걸음을 터벅터벅 옮기며 또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가르쳐 출세시키는 일념으로 살았다. 자신이 농고로 전학을 한 것은 아버지의 그런 뜻을 그르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아버지가 살아 계신 것과 돌아가신 것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농토를 지키면서 그 일을 해냈겠지만, 아버지가 안 계신 상태에서 자식들이 계속 공부를 하자면 논밭을 차츰 팔아치울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농사짓는 데 얼마나 열성이고 억척스러웠던지 논을 매면서도 놉을 사는 일이 없었고, 퇴비를 많이 해 비료를 거의 사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머슴이 농사를 지으면서부터는 논을 매는 데는 말할 것도 없었고 피를 뽑는 데도 놉을 사대라고 했고, 퇴비는 아예 만들지도 않았다. 그러니 농비는 몇 갑절 더 들면서 소출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집안이 기우는 것이 빤히 보이는 데다 또 가뭄까지 겹쳐왔으니 집안 거덜나는 길로 무턱대고 갈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힘이 부치고, 동생들은 어리고, 자신이 꿈을 뒤로 미루는 도리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힘이 그리도 막대한 것이었음을, 아버지 없는 집안에 식구들이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가를 날이 갈수록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P.95)

 

< 2 >

 

 

4·19 부상 학생들이 정기국회를 열고 있는 민의원 단상을 점거한 사건은 사흘 전에 있었던 혁명재판의 결과에 분노한 때문이었다. ‘혁명재판’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 재판에서는 발포자 다섯 명 중에 한 명에게만 사형을 언도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죄 처리를 했다. 그리고 악명 높은 반공청년단 간부들이면서 정치깡패인 네 명 중에 한 명에게만 5년형을 언도하고 나머지에게는 벌금형과 무죄를 내렸다. 여섯 달을 질질 끌어오던 혁명재판의 그 결과에 시민들은 다음날 즉각 데모로 응답하고 나섰다.

 

마산에서 재판부를 규탄하는 철야데모를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날마다 전국의 대도시에서 데모가 격렬하게 벌어졌다. 그 기세가 두려웠던 것인지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뒤늦게 ‘혁명정신을 모독한 법관들을 탄핵소추해야 한다’, ‘재판관들의 정신감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공격에 재판관들은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고 이제 와서 비난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무책임’이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그동안 존재가 없는 것 같았던 대통령도 '그 관결은 민족정기를 무시한 것'이라며 국회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런 와중에서 마침내 부상 학생들이 병원을 뛰쳐나와 국회로 쳐들어가기에 이르렀다.

 

일부의 비판처럼 그 재판관들이 과거의 정치 부패세력과 결탁한자들이건, 정신감정이 필요한 자들이거나 어쨌든 모든 책임은 집권당인 민주당에 있었다. 지난 총선거에서 민주당은 164석(신파 88. 구파 76)을 차지해 의석의 3분의 2 선을 넘었고, 자유당 출신 무소속은 35석, 사회대중당이 3석이었다. 국민들이 그런 엄청난 지지를 해주었는데도 민주당은 집권 두 달 반이 다 되도록 신구파로 갈려 세력다툼만 하느라고 다른 일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혁명재판을 위해 하루가 급한 특별법조차 만들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한 것이었다.

(P.110)

 

< 3 >

 

 

이규백은 핏빛 낭자한 동백꽃들을 바라보았다. 한 많은 여자의 넋이 환생했다는 꽃. 그래서 저리도 선연한 핏빛으로 곱고, 처연한 느낌으로 아름다운지도 몰랐다. 바람결에는 아직 찬 기운이 서려있는데도 동백꽃들은 어느 꽃보다도 먼저 서둘러 피어나고 있었다. 겨울 내내 푸르렀던 잎들은 봄기운을 타고 한결 싱싱한 초록빛으로 돋아오르고, 그 초록색에 떠받쳐 동백꽃 송이송이는 더욱 붉고 선명했다.

 

동백꽃은 색깔이 붉되 야하지 않고 정갈했고, 꽃송이가 크되 허술하지 않고 단아했으며, 시들어 떨어지되 변색하지 않고 우아했다. 그러나 동백꽃의 절정의 아름다움은 낙화에 있었다. 꽃이 지되 벚꽃처럼 꽃잎이 낱낱이 흩어지지 않고 꽃송이 그대로 무슨 슬픔이나 서러움의 덩어리인 양 뚝뚝 떨어져내렸다. 변색하지 않고 떨어진 그 꽃송이들은 또 땅 위에다 새로운 꽃밭을 현란하게 이루어놓았다. 사무친 한을 풀듯 동백꽃은 나무에서 한 번, 땅 위에서 또 한 번, 두 번 피어나는 꽃이었다.

 

이규백은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그 고향의 꽃에 어머니와 형수의 모습이 어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어머니와 형수의 그 깊은 한숨이 꽃으로 피어나면 동백꽃이 될지도 모른다 싶었다.

 

(P.230)

 

< 4 >

 

 

“아니, 우리가 뭐 군인이냐? 머리를 빡빡대가리로 깎으라고 하게"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혁명하고 우리 머리하고 무슨 상관이나"

"그러니까 말야. 너무나 자기들 멋대로야, 스포스가리(스포츠형)도 짧아 더 기르자고 하고 있었는데."

"누가 아니래. 빡빡 중대가리로 창피해서 어떻게 모자를 벗냐"

"이봐, 왜들 이리 말들이 많아. 좇으로 밤송이 까라면 깠지."

학생들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그 군대용어는 그들 사이에서 새롭게 유행바람을 타고 있었다.

"근데 말야, 보성고등학교 애들도 머릴 깎아야 할까?"

"개네들이라고 뭐 통뼈냐? 까라면 까는 거지."

"아, 그것 참 고소하다. 이젠 걔네들도 사복 입고 대학생 행세하며 꺼떡대긴 글렀구나."

"맞어, 걔네들 떡 머리 기르고 다니는 거 부럽고도 배 아팠었는데, 그나저나 개네들은 얼마나 분하고 기분 잡칠까?"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는 6월 1일을 기해서 대학생의 교복 착용과 중·고등학생의 삭발령을 내렸다. 그런데 보성고등학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머리를 일반인들처럼 기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표도 달지 않았다.

"어쨌거나 신바람 나는 건 이발소들뿐이야."

(P.302)

 

< 5 >

 

 

해남댁은 눈물 흐르는 가슴으로 포구의 둔덕으로 올라섰다. 기나긴 포구에는 아침 썰물이 지고 있었다. 해남댁은 40리가 넘는 포구만큼 긴 한숨을 내쉬었다. 포구는 서리서리 감긴 한이었다.

 

물에 휩쓸려간 남편을 찾아 몇날 며칠이고 이 포구를 오르내리며 뿌린 눈물이 얼마였던가. 끝내 남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가슴에 켜켜이 쌓이는 서러움은 세월 따라 한으로 멍울지고 있었다. 남편을 데려간 포구가 무정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해 포구를 멀리하며 등지고 살리라 했었다. 그러나 그 작심은 서너 달이 못가 허물어졌다. 찬바람이 일면서 꼬막 맛이 돌게 되자 이웃 아낙네들을 따라 꼬막을 캐러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꼬막 캐기는 궁한 살림에 아이들의 속옷이며 양말 같은 것을 장만할 수 있는 겨울 한철의 돈벌이였다. 그리고 철따라 반찬을 마련하려면 포구를 등지고 살 도리가 없었다.

 

포구 양쪽으로 펼쳐진 갈대밭은 짙푸른 색깔로 넓고 깊었다. 겨울 철새가 떠나가면서 새 줄기가 솟기 시작하는 갈대는 어느새 어른 키가 넘도록 자라나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연한 바람결에도 잎들이 서로 몸 부비는 갈숲의 사운거림이 먼 물결 소리처럼 아득하게 흐르고 있었다. 속으로 속으로 끌어당겨 우는 속울음의 흐느낌 같은 그 사운거림에 서러움이 더 깊어지며 해남댁은 갈대밭을 따라 한참이나 걸었다. 드넓은 갈대밭이 끝나야 뻘밭이 시작되었다. 뺄밭은 밀물에 잠겼다가 썰물에 모습을 드러냈고, 갈대발은 밀물에도 그저 물결이 찰랑거릴 뿐이었다.

 

썰물로 차츰 넓게 드러나고 있는 뻘밭에 작고 새빨간 꽃들이 무수히 피어나 있었다. 그런데 그 꽃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많았다. 그건 제 몸집만큼 큰 농게의 한쪽 집게다리였다. 다른 몸 색깔은 뻘하고 흡사해 잘 눈에 띄지 않고 새빨간 집게다리만 도드라져보이는 것이었다. 밀물 진 동안 집에 갇혀 있던 게들은 썰물이 되자 부지런히 밖으로 나오고 있는 참이었다. 게 잡기에는 딱 좋은 때였다.

(P.322~323)

 

< 6 >

 

 

연좌제라는 그 흉물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남겨준 것은 경찰의 감시와 가난이었다. 아버지가 내려오지만 않는다면 감시는 무서울 것이 없었고, 가난은 언젠가는 물리칠 자신이 있었다. 형과 자신이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구하게 되면 가난에서는 이내 벗어날 수 있었다.

 

가난은 참 고통스럽고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가난은 누나를 요정으로 밀어넣었고, 끝내 누나를 잡아먹고 말았다. 그러나 누나가 남겨놓고 간 돈은 겨우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밑천일 뿐이었다. 형이나 자신이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가난의 수렁에서 계속 허덕거려야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난이 남겨놓은 상처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자전거포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가 없어서 지금까지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사내로 만들었고, 중학교 3학년 때와 고등학교 2학년 때 실시하는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다. 특히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큰 슬픔으로 가슴에 남아 있었다. 어쩌면 처음 당한 일이라서 그런지도 몰랐다. 경주를 향해 새벽안개 속으로 사라지던 버스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아픔들은 하잘것없는 것이었다. 연좌제라는 괴물은 내일을 위협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을 피해 선택할 수 있는 대학의 학과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을 피해 고를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을 피해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형이 ROTC 지원을 포기한 것을 어머니에게 비밀로 했듯이 이 일도 알릴 수가 없었다. 형과 자신이 좋은 대학을 나와서 당당하게 출세하는 것이 어머니의 유일한 바람이고 희망이었다. 어머니가 그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찌 될 것인가. 어머니를 보호하는 유일한 길은 어머니가 그 일을 서서히, 하루라도 늦게 알게 하는 것뿐이었다.

 

아버지...... 그 모습이 자꾸만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이런 것을 안다면 아버지는 어떤 심정일까.

 

(P.369~371)

 

< 7 >

 

 

"그래, 그건 더 두고 볼 일이고, 어떠냐, 대학생들은 이 군사정권이 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생각하데?"

"으웅, 여학생들은 대개 깡패 소탕한 걸 좋아하고, 남학생들은 병역기피자들을 색출하는 것에 박수를 치고 있어. 기피자 자수 신고기간에 40만 명이 넘게 신고한 것에 학생들은 너무 놀라는 거야. 근데도 아직 20여만 명이 더 숨어 있대잖아. 그걸 다 합치면 현역보다 많은 수가 병역기피를 하고서도 공무원이고 뭐고 다 해먹은 거 아니냐고 학생들은 이승만과 장면 정권의 부패, 무능을 매도해 대는데, 그러다 보니까 자연히 군사정권에 박수가 돌아갈 수밖에 없잖아."

 

"그건 당연히 박수를 받을 만큼 잘한 일이오. 조직폭력을 일삼아 시민생활을 불안하게 한 깡패들을 소탕해 사회질서를 바로잡고국민의 기본의무를 기피해 개인의 이득만 추구한 파렴치한 자들을 색출해 내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건 백번 잘한 일이오. 그런데 그런 겉에 드러난 몇 가지 사실만 가지고 국민들이, 아니 이성적인 대학생들이 쿠데타정권의 부당성까지 망각하게 된다면 그건 큰 문제요. 무슨 말인고 하면, 지금 군인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그런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저변에는 불법으로 정권을 탈취한 부당함을 하루빨리 정당화시키기 위해 자기네 능력을 과시하고 민심을 회유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그거요. 그들이 참으로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그런 중요한 일들을 빨리 끝내고 군인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야 하고, 그땐 온 국민이 박수를 치고, 박정희에게는 중장 진급이 아니라 국민의 이름으로 별 다섯, 원수를 달아줘도 아까울 것 없소. 허나, 지금은 감시의 시기요."

 

(P.383~384)

 

조정래 / ‘한강2’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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