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조정래 / ‘한강9’중에서

송담(松潭) 2021. 8. 19. 14:02

조정래 / ‘한강9’중에서

 

< 1 >

 

 

“아 글씨, 지붕을 스레이트로 갈면 좋은 것이 워디 한두 가지요? 해마동 지붕 갈아 이니라고 심 안 들고 편혀서 좋제, 참새새끼덜 파고들 디 없응께로 참새 잡아묵을라고 뱀 안 탄께 좋제, 그 징헌 굼벵이 안 쓸어 좋제, 장마가 아무리 들어도 그 냄새 고약헌 노래기 안 기나와서 좋제, 그라고 서양집맹키로 그 멋지기가 또 얼매요. 요리도 좋고 존 것이 많은디 워째 그리 말을 안 듣소. 돈이 없어서 그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것이요. 당장 돈을 내라는 것이 아니고 절반은 나라에서 대주고 남치기 절반은 싸디싼 이자로 10년 동안 차차로 갚아나가라는 것 아니오. 그 돈 갚는 디는 쬐깐만 부지런하면 된단 말이오. 돼지럴 한 마리썩 쳐서 폴아도 되고, 닭 댓 마리만 쳐서 계란을 폴아도 된다 그것이오. 새마을운동이 먼지 아시오? 부지런하니 일혀서 잘살자 하는 것이오. 그 정신에 맞춰서 부지런하니 살면 다 해결이 난께 더 여러 말 말고 당장 지붕이고 담장 고치씨요.”

 

이장과 새마을지도자를 거느린 면직원들은 이렇게 답치고 들었다.

 

"음마, 말 한분 청산유수로 해뿌요 이. 근디 면서기들은 고래등 겉은 기와집에만 살아서 긍가 어쩐가 워째서 한나만 알고 둘은 몰르는 소리만 하고 그래쌓소, 지붕 갈면 참새고 구렝이고 굼벵이고 노래기 없어지는 것만 알았제 그놈으 스레튼지 신식 양철인지 허는 지붕이 삼동에는 사람 고드름 맹글게 외풍이 일어 춥고, 삼복에는 사람 숨맥히고, 찜써 죽이게 후꾼후꾼 더운 것 위째 몰르시오. 고것이 보기만 뻔드르르혔제 사람 잡는단 말이오. 사람이 삼동에는 뜨뜻하니, 삼복에는 시인하게 살아야 몸도 풀리고 일도 지대로 되고 하는 법인디, 공연시 그 존 초가지붕 걷어내고 쌩돈 딜여감시 그 못쓸 스레트로 바꾸라고 물이 못 나게 잡져대니 요것이 무신 얄랑궂인 일이다요? 글고, 저 생생한 탱자나무 울타리가 우리 살림을 가난하게 맹그는 것도 아니었고, 무신 손해를 입히는 것도 아닌디 워째 싹 쳐내뿔고 그 멋대가리 없는 쎄멘트 담으로 바꾸라고 욱대기고 그래싼다요. 저것도 다 살아 있는 목심인다. 워디 그뿐이당게라? 철따라 잎 피고 꽃피고 탱자 익어가는 운치가 꽃밭이 따로 없고, 잘 익은 탱자는 아그덜 입맛 돌게도 하고 한약방에 약재로 폴기도 안 허요. 근디 쎄멘트 담은 주는 것이 머시가 있소. 나라에서 우리 농민 잘살게 헐라고 새마을운동인가 헌마을운동인가 헐라면 암시랑토 않은 지붕이고 담 뜯어고침서 아까운 쌩돈 바수지 말고 그 돈으로 송아지나 한 마리씩 사주먼 아이고메 아즘찮이 허겠소. 그요, 안 그요?"

여자들은 이런 식으로 공박하고 들었다.

 

"어허, 나라에서 다 잘되라고 시키는 일이면 그냥 따라서 할 일이제 워째 그리 새살을 까고 그래쌓소." 이장이 말막음을 하고 들었고,

"우리가 새 기술로 농사짓게 되면 니나 나나 다 잘살게 된께 그까진 빚 갚기는 눠서 떡 묵기요. 아무 걱정 마씨요." 새마을지도자가 거들고 나섰다.

"아이고, 나도 몰르겠소. 지붕을 엎어묵든 담을 뒤집어묵든 당신네덜 맘대로 허씨요. 난중에 빚 못 갚으면 배야 깰랍디여." 사람들은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P.62,63)

 

< 2 >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식으로 밤낮없이 억척스럽게 일을 해대는 한국사람들을 보고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에 뒤따라 ‘철인들’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철학하는 사람들이란 뜻이 아니라 쇠로 만든 사람들이란 뜻이었다. 사우디인들의 그런 평가는 기술과 성실을 인정하는 신뢰의 표현이니까 그지없이 고마운 일이지만, 한국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더없이 서글프고 가슴 아픈 칭호이기도 했다.

 

한국사람들이 쇠로 만들어졌을 리 만무하고,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뚜렷한 땅에서 나고 자랐으니 더위에 강할 수 있는 체질도 아니었다. 더위에 강하기로는 더운 나라 태국이나 필리핀사람들일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구덩이를 서너 개 팔 때 태국사람은 구덩이를 한 개밖에 파지 못하고, 한국사람들이 일하는 식으로 필리핀사람들에게 시키면 하루 일하고 사흘을 앓아눕는다는 말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다. 태국이나 필리핀 사람들은 대개 대만 회사들에 고용되어 있었다. 한국사람들은 오로지 가난을 면하겠다는 일념으로 사우디사람들조차 피하는 살인적인 더위를 무릅써가며 사생결단 일에 나서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몸이 허약해져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비행기에 실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석회 성분 많은 물 때문에 요로결석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P.290,291)

 

교통경찰은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꾸하고는 곧 통과신호를 보냈다.

"생큐. 인살라!" 김기돈이 다시 거수경례로 인사했고,

해브 굿 타임, 마이 프렌드, 인샬라!" 교통경찰도 거수경례로 인사를 받으며 외쳤다.

 

김기돈은 손을 흔들며 '쌀람 알라이쿰'과 '인샬라' 두 가지 말이 나타내는 신효한 효과에 또 빙그레 웃고 있었다. 13억 이슬람 교도들이 언제 어느 곳에서나 그 한곳을 향해 기도하는 성지 메카에 있는 알라신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필히 익혀야 하는 두 가지 말이 '쌀람 알라이쿰'과 '인샬라' 였다. 그 두 가지 말만 잘 활용하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밥 굶을 일 없고, 사업도 술술 잘 풀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다른 종교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이 나라에서는 알라신만이 유일무이한 거룩한 신앙이었고, 그 말씀을 담은 코란은 교리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통치하는 국법이기도 했다. 그런 종교의 나라에서 알라신을 숭배하고 찬양하는 최고의 경구가 여러모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당연하기도 했다. 특히 외국사람이 그 경구로 인사를 했을 때 이나라 사람들이 반색하고 환대하는 것은 알라신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이었다. 코란은 알라신께 경배하는 자들은 모두 형제요. 벗으로 대하라고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쌀람 알라이쿰은 ‘그대에게 알라신의 가호가 있기를’ 하는 뜻으로 첫인사를 할 때 썼고, '인샬라'는 ‘신의 뜻대로’라는 뜻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과 온갖 일들에 폭넓고 다양하게 쓰이고 있었다.

 

김기돈은 이 나라에 오기 전에 회사에서 주는 영문판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그건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종교, 문화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 두 가지 말의 쓰임새와 효과는 이곳에 와서야 실감 있게 체득했다.

 

"이 사람들이 열 번 인샬라 하면 우린 스무 번 인샬라 하는 훈련을 해야만 감정 교류가 이루어지고 여기에 적응할 수가 있어요. 예를 들어 집 계약을 하기로 시간을 정했는데 안 나왔어요. 다음날 만나니 인샬라 하고 그만이에요. 다시 시간 약속을 했는데 또 어겼어요. 그런데 또 인살라 하고 그만이에요. 그럼 한국사람들은 어떻게 하지요? 보나마나 벌컥 화를 내고 싸우고 관계를 끊어버리지요. 그래선 사우디에서 못살아요. 사업할 자격이 없는 거지요. 그 사람은 세 번까지도 약속을 어기고 태평스럽게 인샬라인 겁니다. 그건 시간관념이 없어서도 아니고 신용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이곳 사람들의 생활 자체가 그래요. 모든 게 신의 뜻대로, 그 시간에 못나온 건 더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런 거니까 그건 다 신의 뜻이고, 집 계약은 내일 해도 되는 거니까 그것도 신의 뜻이다. 하는 의미라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한국식의 빨리빨리로 서둘러댔다가는 여기서는 아무 일도 성사시키지 못하고 백전백패예요.”

(P.293)

 

초록색의 남자는 저쪽 자리에서 사우디 고유 의상인 새하얀 소읍을 입은 두 남자와 친근한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의 어느 무역회사 직원인 그 남자는 제다 시내를 드나드는 근로자들 사이에서 ‘사우디 명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넥타이까지도 초록색으로 치장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 모두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 초록색이라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라 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집에 손님 오는 것을 좋아해, 반갑고 귀한 손님에게는 마누라를 잡아서라도 고기를 대접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이 손님보다 더 반기고 환호하는 것이 비였다. 비가 귀하고 귀한 땅에서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짙푸르고 울창한 초록색 숲을 늘 그리워하고 꿈꾸고 있었다. 그 소망이 얼마나 절절하면 국기의 바탕이 온통 초록색일 것인가. 손님이 오면서 뒤따라 비가 오면 최고의 경사라고 해서 그 손님은 특별히 우대를 받는다고 했다. 그런 그들의 심상에 초록색 양복을 입고 나타난 상사원, 그 상담(商談)이 잘 풀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P.301)

 

 

< 3 >

 

사람들은 구트라와 소읍을 펄럭거리며 사원으로 황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달리던 자가용들이 멈추며 운전석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택시들도 예외 없이 정거하고 운전수들이 사원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외국 손님을 태웠더라도 쌀라 시간에는 운행 정지였다. 손님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든지 간에 무조건 20여 분을 기다려야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은 이 경우에 잘 들어맞는 말이었다. 사원은 쌀라하기에 편하도록 시내 도처에 수없이 많았다. 쌀라 시간이 되면 그들은 가까운 사원으로 달려가 알라신 앞에 엎드렸다.

 

그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면서 자기에게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20여 분 동안 알라신께 죄짓지 않고 살겠다고 약속하고, 더불어 화평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해야할 코란의 구절구절을 염송한다고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다섯 번씩 기도하며 평생을 살다보면 이마에 군살이 박힌다고 했다.

 

그런 지극정성의 신앙심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악조건의 기후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 김기돈은 풀 수 없는 의문을 또 되짚고 있었다. 그전에 이슬람교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어 궁금증이 많았고, 교도들이 결코 기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다.

 

김기돈은 서너 명의 직원들과 함께 아구살을 먹으러 갔다. 생양고기에 소금을 쳐서 쇠꼬쟁이에 꿰면서 그 사이사이에 양파와 피망을 섞어 꿰어 이글거리는 불에 구워내는 음식이었다. 흔히 양고기는 노린내가 난다고 하는데 그 꼬챙이구이는 전혀 냄새가 없이 노릿노릿 익은 고기가 짭조름하면서 연하고 고소해 감칠맛이 그만이었다. 그 고유음식은 레바논식이라고 했다.

“여기다 소주 한잔 카악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한 직원이 고기를 우물거리며 소주맛 어린 얼굴로 말했다.

"괜히 사람 미치게 만들지 말어." 다른 직원이 김기돈의 눈치를 보며 쏘아붙였다.

"그래, 참는 것도 수양이랬지. 석 달만 참으면 웬수 갚을 날 오니까."

"그런데 부장님, 여기 젯다에다 한국음식점 차리면 재미보지 않겠어요?"

다른 직원이 불쑥 말했다.

"글쎄, 그것도 괜찮긴 하겠지."

김기돈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맘에 있어?"

"아니 뭐, 그렇다 그거지."

그보다는 우리나라 배추와 무를 길러 각 회사마다 납품하는 게 훨씬 낫지. 지금 여기 와 있는 사람들 숫자가 얼마야. 대충 15만은 될 텐데, 그 많은 입들이 삼시 세 끼를 먹어대 봐, 떼돈을 버는 거지, 떼돈.”

 

(P.307~309)

 

'조정래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의 잃어버린 삶을 찾아주기  (0) 2021.08.23
조정래 / ‘한강10’중에서  (0) 2021.08.23
조정래 / ‘한강8’중에서  (0) 2021.08.15
조정래 / ‘한강7’중에서  (0) 2021.08.13
박태준에 대하여  (0) 2021.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