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561

김호연 / ‘불편한 편의점’중에서

김호연 / ‘불편한 편의점’중에서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  시현의 수많은 알바 인생의 종착점이 편의점이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녀 자신이 편의점 애용자이기도 했고, 그동안 여러 알바를 거치며 겪은 일들이 편의점 업무 곳곳에 녹아 있었기 때문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뷰티 스토어에서 배운 접객과 계산대 업무 노하우는 편의점에서의 업무와 거의 비슷했고, 배송회사에서 맡아 하던 소화물 분류 업무 역시 편의점 물품 진열과 비슷한 편이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는 '제이에스JS'라 불리는 진상들을 응대하는 매뉴얼을 익힌 바 있고, 갈빗집에서는 자기가 구운 고기가 탄 걸 종업원 탓으로 돌리는 제이에스를 겪으며 멘탈도 단련했다. 이렇게 단련된 시현임에도 어디서 이사를 왔는지 최근 꾸준히 드나드는..

산해진미 도시락

산해진미 도시락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휴대폰 옆으로 내쉰 뒤 목청을 가다듬었다. "지갑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기차 안이고요, 다음 역에 내려 바로 돌아갈 테니까 좀 보관해주시거나 어디 맡겨주실 수 있나요? 사례는 제가 가는 대로 해드릴게요." "여기 있죠. 갈 데도 없죠." “그래요? 알겠어요. 서울역 어디서 만날까요?" “공항철도 가는 길.. GS편의점......요." 서울역에 도착하고 바로 공항철도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발견했다.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자 전방 오른편에 GS편의점이 있었고, 곰의 목소리를 지닌 사내가 도시락에 얼굴을 묻은 채 그 앞에 웅크리고 있었다. 다가갈수록 분명해지는 그의 실체에 그녀는 다시 긴장의 끈을 움켜쥐었다. 대걸레같이 떡이 져 있는 장발의 사내는 얇은..

양귀자 / ‘원미동 사람들’중에서

양귀자 / ‘원미동 사람들’중에서   멀고 아름다운 동네  어머니가 은혜를 업고 안방 문 앞에 섰다. 아이는 밀려오는 설움을 참느라 입을 비죽거렸다. 감기 기운이 가시지 않아 눈물 콧물로 얼룩진 얼굴이 추위에 새파란데 어머니는 계속 내사마 좋다, 를 되뇌었다. 그러는 당신의 얼굴도 까칠하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제 살 집을 주시고 무사히 떠나게 하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자손 만대 번영을 약속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살기 좋은 땅을 주셨습니다. 그간 이 가족, 살 집이 없어 많은 고초를 겪었으나, 아버지, 이제 주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찾아 떠날 수 있게 하신 은혜 감사합니다. 열여덟 평 연립주택을 마련하여 부천으로 떠나는 일이 당신에게는 가나안 땅으로 떠나는 일과 다름없다는 심정의 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