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사는 ‘인간적 시간’
위대한 기독교 신학자로 불리는 성(聖)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는 그의 저서『고백록』에서 시간을 우리가 달력이나 시계로 잴 수 있는 물리적 시간과 마음으로 잴 수 있는 인간적 시간으로 구분했다. 그가 말하는 마음이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영혼인데, 인간의 영혼은 물리적 시간 안에서 살지 않고, 인간적 시간 곧 마음의 시간 안에서 산다고 생각했다.
물리적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자꾸만 흘러가는 시간이고 이 시간에서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없고,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려서 없기 때문에 오직 현재만 존재한다. 철학에서는 이런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라고 부른다. 모든 물질은 이 시간 안에 놓여 있고 사람의 육체도 물질인 만큼 물론 이 시간 안에 산다.
하지만 이와 달리, 우리가 마음으로 파악하는 인간적 시간은 과거와 미래가 언제나 현재 속에 함께 한다. 즉, 과거는 ‘기억’으로 현재 안에 있고, 미래는 ‘기대’로 역시 현재 안에 있다. 이런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고 하며 인간의 마음이 사는 시간이다.
사람의 몸은 크로노스 속에 살지만 마음은 카이로스 속에 산다. 지금 이 순간이 기쁘거나 슬프다면 그것은 분명 현재의 일 때문만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일 또는 다가올 미래의 어떤 일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부정을 저지르거나 나쁜 행동을 삼가야 하는 이유도 물리적 시간에 살기 보다는 마음의 시간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계산할 때가 되면 화장실로 사라지면서 “5분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라고 생각한다든지 수험시 부정행위나 뇌물수수 같은 부정행위 등 온갖 부도덕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은 물리적 시간, 즉 현재만을 염두 해 두고 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그의 마음이 인간적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면, 다시 말해 그의 모든 과거가 기억으로서 현재 안에 있고 모든 미래도 기대로서 항상 현재 안에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그런 짓을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5분 비겁하면 평생이 부끄럽고 부정행위나 부도덕한 행위도 평생 괴로움으로 남기 때문이다.
인간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미래에 다가올 결과도 ‘올바른 과정이 맺는 열매’인 것이며, 때가 되면 꽃이 피어나고 과일이 성숙하듯 자연스럽게 마땅히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현재 들어와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과정과 결과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인 셈이다.
김용규/‘철학통조림 2’에서(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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