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텅 빈 무대의 대본 없는 배우, 인간

송담(松潭) 2014. 2. 14. 17:57
 

 

텅 빈 무대의 대본 없는 배우, 인간



하이데거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존재와 시간>에 의하면 인간은 그 어떤 특별한 의미(本質)없이 그저 세계로 ‘내던져진 자’입니다. 이 ‘내던져짐’에는 거룩한 신의 섭리도, 정해진 운명도 없지요. 인간의 모든 것은 오직 자신에게 맡겨져 있는 겁니다. 하이데거가 그저 인간이라고 부르지 않고 ‘현존재(Dasein)'라고 부르는 뜻이 여기에 있지요.


 우리말로 ‘현존재’라고 번역되는 독일어 'Dasein'은 ‘거기(da)에 있는 존재(Sein)'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가 어디일까요? 하이데거가 말하는 ’거기‘란 인간이 아무 의미 없이 그저 내던져진 자리.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이 오직 자기의 선택과 결단에만 맡겨진 자리, 이 선택과 결단에 의해서 비로소 존재의 의미가 밝혀지는 자리, 우리 모두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서 인간은 일단 자신이 ‘내던져짐’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과 결단에만 맡겨져 있음에 대해서 언제나 ‘불안’해 하며, 자신의 선택과 결단에 의해서만 존재의 의미가 비로소 밝혀지기 때문에 항상 ‘염려’하지요. 이 불안과 염려는 일찍이 파스칼이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라고 고백한 바로 그 두려움과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베게트는 이러한 인간의 존재적 상황을 ‘텅 빈 무대’위에 내던져진 ‘대본 없는 배우’처럼 ‘무의미한 시공간’안에 ‘성격 없는 인물’로 구성하여 우리에게 보여준 겁니다.

...(생략)....


 하이데거에 의하면 우리의 일상생활이란 자기 자신의 ‘내던져짐’과 모든 것이 자기에게 ‘맡겨짐’에 대해서 언제나 불안하해고 염려하는 현존재가 ‘시간 죽이기’를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우선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즉 ‘평균적 일상성’을 따라 살아갑니다. ‘대개 사람들이 그러하듯’ 자기 자신보다는 자기 밖의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며,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따라 잡담을 하고, 그들을 따라 애매하게 행동함으로써, 서로서로 동질화 및 평균화를 꾀한다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위안을 얻는 거지요.


 하이데거는 이러한 일상적 삶을 ‘비본래적 삶’이라고 불렀습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사는 ‘본래적 삶’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세상사람’이라 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퇴락’, 곧 ‘무너져 내림’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그저 남들이 말하는 대로 따라 말하고, 남들이 행동하는 대로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진정한 삶은 무너져 내린다는 의미이지요.


사람들은 ‘시간 죽이기’에 불과한 자신의 비본래적인 삶이 마치 자기가 선택하고 결단한 자신의 본래적 삶인 것처럼 위장하고 활기를 불어넣어 스스로를 위안도 한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간 죽이기’에 분주히 몰입하는 동안에는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한다는 거지요.


 하지만 이러한 ‘시간 죽이기’는 단순히 다른 사람들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진정한 자기로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이데거는 비본래적 삶은 인간을 점차 ‘전락’시킨다고 했습니다. ‘나쁜 상태로 굴러 떨어진다.’라는 말이지요.


전락할 것인가? 실존할 것인가?


 아무리 비본래적인 일상생활에 분주하게 몰입해 보아도 ‘깊은 권태’는 결코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근원적으로 끌어안고 있는 권태가 바로 ‘깊은 권태’입니다. 알고 보면 이 권태는 언제 올지도 모르고 무엇인지도 모르는 죽음에 의해 붙잡혀 있으면서도 동시에 공허 속에 놓여져 있는 인간의 상황이 가진 근원적이면서도 숙명적인 권태이지요. 따라서 이 권태는 그 어떤 ‘시간 죽이기’로도 벗어날 수 없는 겁니다.


 하이데거는 ‘깊은 권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하나, 곧 ‘실존(Existence)’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실존이란 다른 사람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세상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능성(Seinsknnen)’을 기획하고 그것을 따라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자기 자신으로 살 것인가, ‘세상사람’으로 살 것인가?

본래적 삶을 살 것인가, 비본래적 삶을 살 것인가?

실존할 것인가, 전락할 것인가?

이 두 가지 갈라서는 갈림길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겁니다.

‘현존재’로서 인간은 ‘언제나 그리고 매순간’ 이 갈림길, 바로 '거기(da)'에 있지만 ‘세상사람’으로서 우리는 그것마저도 망각한 채 매일매일 ‘시간 죽이기’에 몰입하여 분주하게만 살아가지요. 이것이 우리들 모두의 가엾은 모습이랍니다.


“현존재의 본질은 그의 실존에 있다.” - 마르틴 하이데거 -


 김용규/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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