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음악은 영역 방어에서 유래했다

송담(松潭) 2025. 4. 17. 05:45

음악은 영역 방어에서 유래했다

 

 

 

탄핵 찬성 집회에서도, 탄핵 반대 집회에서도 단연 주인공이다.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결혼식, 장례식, 축제, 스포츠, 종교의식 등 어느 행사에서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음악 말이다. 거리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K팝을 목청껏 떼창한 시민들은 세대를 넘어 모두 하나가 된 기분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음악이 지닌 이 불가사의한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음악은 왜 진화했을까?

 

먼 과거의 조상이 음악을 만들고, 익히고, 즐기는 데 들었을 비용에 비해 음악으로부터 얻었을 번식상의 이득은 애매하고 흐릿하다. 과연 석기 시대의 아이유가 뛰어난 가창력 덕분에 다른 여성들보다 자식을 더 많이 남길 수 있었을까? 옛날에는 콘서트도 굿즈 판매도 없었을 터이다. 음악이 어떤 진화적 기능을 수행하게끔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적응인지를 두고 그동안 여러 가설이 나왔다. 예컨대, 찰스 다윈은 음악은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려는 구애 도구로 진화했다고 제안한 바 있다. 오늘은 국내에 비교적 덜 알려진 가설을 살펴보자. 음악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자질을 신빙성 있게 알리기 위한 신호로 진화했다는 가설이다.

 

2003년에 진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하겐은 음악이 동물들의 영역 방어 신호에서 유래한다고 제안했다(기분 나쁘더라도 조금만 참고 더 듣길 바란다. 의외로 꽤 설득력이 있다). 많은 동물이 자신이 차지한 영역을 지키고자 시끄럽게 소리를 낸다. “여기 자리 없어요. 딴 데 가세요!”라고 외치는 셈이다. 특히 흥미로운 경우를 사자, 늑대 같은 사회성 육식동물이나 몇몇 새, 유인원 등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개체가 함께 협력해 ‘잘 조화된’ 영역 신호를 낸다.

 

예를 들어, 생물학자들은 암사자 여럿이 동시에 울부짖는 합창이 암사자 홀로 내는 독창보다 영역에 침범한 뜨내기 수사자를 쫓아내는 데 더 효과적임을 발견했다. 까치종다리도 영역에 누가 침투하면 정교하게 조응된 듀엣곡을 암수가 함께 노래한다. 한 집단에 속한 침팬지들은 외적이 침범하면 일제히 ‘우후우후~’ 큰소리를 질러대고, 나무둥치를 팔다리로 마치 북 치듯이 두들겨댄다. 결국 침입자를 내쫓고 이웃 침팬지 집단과 위태로운 공존이 유지된다.

 

인류의 조상도 집단이 차지한 영역을 지키는 유인원이었다. 수백만년 전, 초기 인류가 깊은 밀림에 살던 침팬지와 작별하고 탁 트인 사바나 초원으로 진출했다. 이에 따라 집단 간의 갈등이 더 빈번해졌다. 한편으로는 다른 집단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두 집단 모두 이득을 얻을 필요도 더 커졌다. 검치호랑이, 사자, 표범 등에 꿀꺽 잡아먹힐 위험도 더 커졌다.

 

그러므로, 음악은 우리 집단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서로 잘 뭉치고 협력하는지 다른 집단에 신빙성 있게 과시하는 신호로 진화했다고 하겐은 주장한다. 여럿이 ‘잘 조화된’ 소리를 리듬에 착착 맞추어 내려면 많은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다. 즉, 음악과 춤이 한바탕 어우러진 공연을 멋지게 해낸 집단은 그 구성원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정말로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했음을 또렷이 입증한다. 그뿐만 아니라, 훌륭한 음악과 춤은 해가 기울면 찾아오는 포식동물에도 그들이 상대할 먹이는 잔뜩 겁먹은 오합지졸이 아니라 잘 훈련된 정예 집단임을 단단히 일깨운다.

 

음악은 동맹의 끈끈함을 알려주는 정직한 신호라는 가설은 음악은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는 구애 도구라는 가설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잘 설명해준다. 첫째, 이성애자 어른은 종종 동성 음악인이 들려주는 음악에 푹 빠지곤 한다. 에스파나 아이브 같은 걸그룹은 남성 팬보다 여성 팬이 조금 더 많다고 한다. 둘째, 전쟁, 장례식, 졸업식, 정치적 소요 등 짝짓기와 전혀 무관한 상황에서도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셋째,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정서는 종종 짝짓기와 아무 상관이 없다. 누군가의 장례식에서 진혼곡을 들으면 슬플 따름이지 짝짓기가 떠오르진 않는다. 넷째, 동성 음악인들은 종종 합창단이나 합주단을 조직해 멋진 음악을 만든다. 배우자를 두고 경쟁해야 할 이들이 왜 서로 협력하는지 구애 가설은 설명하기 어렵다.

 

요약하자. 음악이 영역 방어와 포식자 억제에서 유래했다는 가설을 따르면, 음악은 잘 조응된 노래나 연주를 통해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 끈끈하게 협력할 의향과 능력이 차고 넘침을 신빙성 있게 과시하려는 신호로서 진화했다. 탄핵 찬반 세력 간의 갈등이 높아질 때마다 광장에서 확성기의 음량이 치솟고 더 다양한 노래들이 불렸던 것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전중환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5.4.17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