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숙 / ‘너에게 보내는 클래식’중에서
< 1 >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속도와 성격을 달리하는 여섯 개의 춤곡을 모아 놓은 것이다. 첫 곡인 전주곡에 이어서 알레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미뉴엣(부레 혹은 가보트), 지그 이렇게 여섯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여섯 곡을 반주 없이 첼로 혼자 연주한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첼리스트 혼자 고독하게 연주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곡은 첼리스트의 외로운 독백이라 할 수 있다.
모음곡을 구성하고 있는 여섯 곡 중에서 가장 느린 곡은 네 번째 곡인 <사라방드〉이다. 〈사라방드〉는 17세기 스페인 궁정에서 추던 3박자의 춤곡이다. 두 번째 박자에 악센트가 들어가서 전체적으로 장중하면서도 처연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모음곡을 구성하고 있는 6곡 중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곡으로 꼽힌다. 연주자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모두가 감정을 충분히 실어서 연주한다.
오늘날 <사라방드〉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춤곡'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첼리스트 요요 마는 이 곡을 '절대적인 절망 속에서 태어난 곡'이라고 했고, 로스트로포비치는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격렬한 고독을 느낀다고 했다. 그렇게 <사라방드>는 슬픔, 절망, 고독의 대명사가 되었다.
바흐의 모음곡에 있는 <사라방드> 중에서 나는 6번의 〈사라방드〉를 제일 좋아한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6번 D장조는 삶의 기쁨, 생기발랄함을 느끼게 하는 곡이다. 바흐는 1번을 경쾌함으로 시작해 2번 슬픔, 3번 찬란함, 4번 장엄함, 5번 어두움을 거쳐 6번 생기발랄함으로 대단원을 막을 내리는 절묘한 구성법을 썼다.
< 2 >
절망의 끝에서 만난 희망
나는 그동안 살면서 생과 사를 가르는 극한의 상황에 빠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가끔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보면 마치 내가 그 일을 당한 것처럼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들곤 한다.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면서도 그랬다. <피아니스트>는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이라는 유태인 피아니스트가 나치 치하의 폴란드에서 실제로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스필만은 가족과 함께 수용소로 가는 도중 혼자 탈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오랜 기간 폭격으로 무너진 폐허에 숨어 살았다. 그동안 먹을 것은 빈집을 뒤져서 해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집에 들어갔다가 주방에서 통조림과 자루 그리고 상자 몇 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안에 먹을 것이 들어 있는지 보려고 일일이 끈을 풀고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 일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누가 다가오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뭐하는 거요?"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독일군 장교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스필만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할 아무런 도구나 장치도 없이 갑자기 맞닥뜨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모든 걸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독일군 장교로부터 도저히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동안 도피 생활을 하느라 너무나 진이 빠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도망갈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신음 소리를 내면서 장교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더듬거리며 간신히 말했다.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도망가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독일군 장교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를 체포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의 직업을 물었다. 스필만이 피아니스트라고 하자 독일군 장교가 잠시 생각하더니 그를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에게 한 곡 쳐보라고 했다. 그는 망설이다 피아노 앞에 앉았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독일군 장교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이때 그가 친 곡이 쇼팽의 <야상곡 C#단조>이다. 바르샤바가 독일군의 폭격을 받았을 때 그가 방송국에서 치던 바로 그 곡이다. 본래 쇼팽의 <야상곡>은 달콤한 곡이다.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멜로디가 밤에 듣기에 딱 좋아서 '야상곡'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이때 스필만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야상곡>은 로맨틱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았다. 먼지가 쌓인 조율 안 된 피아노와 배고픔과 추위에 굳어버린 손가락,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포 속에서 로맨틱해야 할 쇼팽의 <야상곡>은 우울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스필만을 구해 준 '착한 독일인'으로 영원히 기억될 그 독일군 장교의 이룸은 빌름 호젠펠트였다. 스필만의 자서전에 실려 있는 사진을 보니 수려한 용모를 가진 미남이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게 끝내 미소를 보내지 않았다. 빌름 호젠펠트는 그로부터 몇 년 후, 소련의 한 포로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스필만은 폴란드 국영 방송국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학살을 피해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은 그의 곁에 없었다. 그는 수용소행 열차를 타던 아버지가 먼발치에서 눈짓으로 자기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던 장면을 잊지 못했다. 그 가슴 아픈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았다. 그러다가 2000년,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의 한 장면 같던 52년 전 그날, 공포와 절망 속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던 30대의 청년은 세월이 흘러 어느덧 80대의 노인이 되었다. 이제 그 노인이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그날 연주했던 쇼팽의 야상곡을 다시 연주한다. 을씨년스런 폐허가 아닌 자신의 편안한 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인의 연주에서 52년 전 그날 "폐허의 벽에 부딪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던 둔탁하고 건조한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연주를 끝낸 스필만이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조용히 허공을 응시한다. 그 눈빛에서 살아남은 자의 고독과 회한이 읽힌다. 한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의 총량을 수치화한다면 스필만이 당한 고통은 그중에서도 최대치에 속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남은 것에는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 완전한 절망은 없다는 것.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한 줄기 희망은 있다는 것이 아닐까.
< 3 >
<송 오브 노르웨이>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작곡가 그리그의 일생을 담은 영화다. 영화는 노르웨이 대자연의 풍광을 화면 가득 시원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때 '우르르르 꽝' 하고 천둥치는 것과 같은 음악이 나온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이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에는 내가 노르웨이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그 모든 경이로운 풍경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노르웨이의 대자연을 직접 체험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이 곡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그는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거대한 폭포, 물 위에 깎아지를 듯 높이 치솟은 절벽, 보석같이 아름다운 푸른빛의 피오르, 만년설 위에 '쨍’하고 반사되는 날카로운 햇빛, 계곡에 드리워진 서늘한 산 그림자, 호수에 비치는 험준한 산세의 데칼코마니, 산등성이에 하늘거리는 각양각색의 들꽃들, 바위틈을 따라 흘러내리는 작은 물줄기 등을 때로는 강렬한 터치로, 때로는 영롱하고 섬세한 터치로 그렸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대자연의 소리에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다.
이 곡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처음의 도입부다. 팀파니가 크레셴도로 발 구르는 소리를 내면 피아노가 높은 곳에서 '쾅' 폭발하듯 시작해 양손으로 옥타브를 치면서 격정적으로 하강하는데, 그 소리가 마치 폭포와 같다. 듣고 있으면 거대한 폭포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밑으로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는 광경이 떠오른다.
< 4 >
얼마 전에 <눈물의 여왕>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눈에 익은 장소가 나와 반가웠다. 독일 베를린 근교의 포츠담에 있는 상수시 궁전이었다. 남녀 주인공이 그 유명한 상 수시의 계단 정원에서 만나는 장면이었는데, 드라마로 찍으니 실제보다 훨씬 멋있어 보였다.
상 수시는 프로이센을 다스렸던 프리드리히 대왕의 여름 궁전이다. '상 수시'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근심 걱정이 없다'는 뜻인데, 이것이 시사하듯 상 수시는 왕이 공적인 업무를 보는 베를린의 궁과는 달리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근심 걱정 없이' 노는 곳이었다.
내가 처음 상 수시에 갔을 때는 계절이 여름이었다. 그 후 늦가을에 다시 갔는데, 여름에 갔을 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모든 것이 소멸해 가는 상 수시의 가을. 그 퇴영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운치 있을 수가 없었다. 가을비에 젖은 낙엽을 밟으며 숲길을 걸을 때, 이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역시 왕의 주제야. 이렇게 축축한 가을의 배경음악으로는 안갯속을 헤매듯 미묘하고, 신비롭고, 모호한 음악이 제격이지. 가을이 되면 낙엽 진 길을 걸으며 쇠락해 가는 계절의 정취를 맛보고 싶어진다. 가을의 상 수시는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만약 가을에 상 수시에 가서 영화 속 가을 여자의 분위기를 내고 싶다면 꼭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바바리코트다. 가을에 바바리코트를 입고 상 수시의 숲속을 걸으면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이럴 때 비라도와 주면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겠지.
비 오는 날을 어떻게 맞추냐고? 걱정하지 마시라. 독일의 날씨는 맑은 날보다 우중충하고 비 오는 날이 더 많다.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 바바리코트를 챙기는 것만 잊지 않도록.
< 5 >
사랑은 자유로운 새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자를 유혹해 파탄에 이르게 하는 요부나 악녀를 '팜므 파탈'이라고 한다. 팜므(femme)는 ‘여자’, 파탈(fatale)은 '운명적인' 혹은 '치명적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음악가들이 창조해 낸 팜므 파탈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팜므 파탈은 비제의 오페라에 나오는 ‘카르멘’이다.
오페라 <카르멘>의 무대배경은 스페인의 세비야. 카르멘은 이곳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집시다. 집시는 ‘자유’를 존재의 유일한 근거로 삼고 살아가는 집단이다. 그들의 삶에서 자유를 빼면 그것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삶이 되어버린다. 인습과 규범, 제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삶을 살기 때문에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만이 자기 존재의 출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근거다.
본능에 충실한 삶. 사실 이런 삶을 꿈꾸어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언젠가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이 문장의 말줄임표에 무슨 말이 들어가는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들켜서 망신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곧이 본능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을 통제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카르멘이라는 존재가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우리는 그 자유와 용기와 에너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단 어떤 남자에게 꽂히면 단숨에 그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그녀의 그 치명적인 매력을 부러움 반, 두려움 반의 심정으로 바라본다.
돈 호세가 그냥 반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자유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녀가 부르는 <하바네라>가 이를 증명한다.
사랑은 자유분방한 새.
그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요.
일단 거절하기로 마음먹으면 불러봤자 아무 소용없어요.
협박을 해도 안 되고, 애걸복걸해도 안 돼요.
세상에는 말 잘하는 사람도 있고, 과묵한 사람도 있지요.
그중에서 나는 과묵한 사람이 좋아요.
아무 말 안 해도 나를 즐겁게 하니까요.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은 집시 아이와 같은 것.
제멋대로지요
당신이 싫다고 해도 나는 좋아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때는 조심하세요.
당신이 잡았다고 생각하는 새는
곧 날개를 펴고 날아가 버릴 테니까요.
사랑이 멀리 있을 때는 그냥 기다리세요.
그러면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랑이 찾아옵니다.
당신 주변 어디에서나
갑자기, 갑자기 사랑이 왔다가는 가고 또 찾아올 테니.
당신이 붙잡으려 하면 도망치고
벗어나려 하면 꼭 잡고 놓지 않을 거예요.
<하바네라>는 순진한 청년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마력을 가진 노래다. 하바네라라는 말은 ‘아바나의 춤'이란 뜻의 'danza habanera'를 줄여서 부른 것인데, 아바나는 쿠바의 수도를 가리킨다. 하바네라는 19세기 초에 쿠바에서 발생한 춤곡이며 이후 이 춤곡은 스페인으로 건너가 '하바네라'가 되었다. 하바네라는 스페인어로 '아바네 풍'이라는 뜻으로 정확한 발음은 '아바네라'가 되지만 지금은 '하바네라'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
하바네라는 2/4 박자의 춤곡으로 특징적인 3-3-2 패턴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 이 리듬이 매우 관능적인 느낌을 준다. 카르멘은 매혹적인 자태로 이 관능적인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니 세상 어느 누가 안 넘어가겠는가.
비제가 팜므 파탈의 전형인 카르멘이 부르는 노래를 하바네라로 한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사실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클래식 음악 양식은 인간의 본성과 관능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데 적합한 양식이 아니었다. 인간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고상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인간의 감정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는 이게 불만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스페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나라에는 인간의 본능을 밑바닥부터 흔들어 놓는 무수한 춤곡들이 있기에. 하바네라도 그중 하나다.
카르멘은 하바네라로 돈 호세를 유혹하면서 자기의 사랑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하지만 돈 호세는 속수무책으로 카르멘에게 빨려 들어간다. 그는 아마 자유분방한 카르멘에게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고향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순결한 약혼녀 미카엘라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치명적인 매력. 붉은 입을 벌리고 강렬한 에너지로 자신을 끌어당기는 악녀의 유혹을 끝내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순간은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가고 싶은 심정이었겠지만 카르멘의 노래는 이미 그런 종말을 경고하고 있었다. 자신은 자유로운 존재라 언제라도 사랑을 취할 수 있지만 또 언제라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카르멘이 팜므 파탈인 것은 돈 호세를 결국 파멸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담배공장에 다니는 다른 여공과 싸움을 벌이다 결국 감옥까지 가게 된 카르멘은 자신를 지키는 돈 호세를 유혹한다. 그래서 돈 호세를 탈영병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디 그뿐인가. 탈영한 돈 호세를 밀수꾼의 소굴로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카르멘의 사랑은 거기까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돈 호세에게 싫증을 느낀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녀 앞에 새로운 남자가 나타난다. 에스카미오라는 투우사이다. 이 근육질의 짐승남에게 새로운 매력을 느낀 카르멘은 결국 돈 호세를 버린다. 남의 인생을 망쳐 놓고 보란듯이 새 남자에게 가 버린 것이다.
그 후 카르멘과 돈 호세는 투우장 앞에서 다시 만난다. 여기서 돈 호세는 카르멘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그녀는 이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돈 호세가 격분해서 자기를 죽일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끝내 그를 거부한다. 결국 카르멘은 돈 호세의 칼을 맞는다. 진정한 집시로서의 삶, 진정으로 본능에 충실한 삶, 마지막까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살던 카르멘은 그렇게 최후를 맞는다.
동서고금에 수많은 팜므 파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수만큼이나 팜프파탈의 유혹에 빠져 인생이 끝장난 남자들이 있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니 이것을 보고 교훈을 얻을 만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도 팜프파탈의 유혹에 빠져 인생을 망친 남자들의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니 말이다. 이게 하도 이해가 안 돼서 어느날 남편에게 물어봤다.
"왜 남자들은 팜므 파탈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거야? 망할 거 뻔히 알면서 왜 순간의 유혹에 넘어가냐고?"
이에 대한 남편의 대답은 이랬다.
“그런 식으로 진화가 된 동물이라서 어쩔 수가 없어.”
진희숙 / ‘너에게 보내는 클래식’중에서
< 6 >
바다, 자유와 도전의 또 다른 이름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남서쪽 뵈그데이 반도에는 노르웨이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 다섯 개가 모여 있다. 그래서 이 지역을 박물관 지구라고 부른다. 이 박물관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프람호 박물관이다. 프람호는 난센과 아문센이 남북극을 탐험할 때 타고 갔던 배다. 난센과 아문센은 노르웨이 탐험의 역사를 새로 쓴 탐험가로 알려져 있다. 이건 여담인데, 이 동네 사람들 이름에는 유독 ‘센’자가 많이 들어가는 것 같다. 난센, 아문센, 닐센, 입센, 안데르센, 비요르센 등. 여하튼 이렇게 '쎈' 아저씨들과 생사를 같이했던 프람호는 노르웨이의 자랑스러운 도전과 탐험의 역사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프람호를 만든 사람은 난센이다. 난센은 노르웨이 해양 탐험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로 북극을 탐험하기 위해 얼음에도 끄덕하지 않는 이 배를 만들었다. 하지만 난센은 북극항로 개척에 실패했고, 그 후 아문센이 프람호를 인도받아 남극 탐험에 나섰다. 그 결과 1911년 12월 14일, 아문센은 인간 최초로 남극에 도달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프람호의 갑판 위로 올라가면 배를 타고 바다 위를 항해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사방에서 천둥이 치고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는 것을 보니 정말 배를 타고 망망대해 한가운데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바다 교향곡>의 첫 대목이 생각났다. 곡을 시작하자마자 합창단이 포효하듯 “보라! 바다를!”이라고 외치는데, 이 배에 탔던 탐험가들 역시 바다를 향해 이렇게 외치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도전의 대상이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아문센과 영국 탐험가 스콧의 남극 탐험 일정을 연대별로 비교해 놓은 표였다. 아문센은 영국의 탐험가 스콧과 남극 정복을 두고 경쟁을 벌였는데 최종 승자는 아문센이었다.
아문센이 남극에 도달한 지 한 달 뒤인 1월 17일 스콧 일행도 남극점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들은 식량 부족과 추위로 끝내 귀환하지 못하고 남극에서 최후를 맞았다. 스콧이 아문센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똑같이 남극 탐험에 나섰지만 두 탐험대는 대원의 구성도 다르고, 장비도 다르고, 목적도 달랐다. 아문센의 탐험대가 스키 선수, 개 썰매 대회 우승자와 같은 한랭 지역 전문가들로 구성된 것에 반해 스콧의 탐험대는 지질학자, 기후학자, 자연생태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현장에서 뛰는 사람과 백면서생의 싸움이었던 셈이다.
또한 아문센이 몸집은 작지만 추위에 강한 개를 선택한 반면 스콧은 몸집이 큰 말을 선택한 것도 달랐다. 말은 식량 소모도 엄청날 뿐 아니라 크레바스에 한번 빠지면 꺼내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스콧의 말들은 탐험 도중 대부분 죽었다. 결국 탐험대원들이 직접 썰매를 끌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체력 소모가 엄청났을 것이다. 게다가 스콧의 탐험대는 복장도 불량했다. 아문센의 탐험대는 순록 가죽옷을 입어 추위에 강했지만 스콧의 탐험대는 고작 모직 옷으로 남극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했다.
스콧이 남극 탐험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한 것도 패착이었다. 아문센은 탐험 그 자체를 목표로 했지만 스콧은 남극의 생태계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병행하려고 했다. 남극 탐험 하나만으로도 벅찰 텐데 너무 욕심을 부린 것이다. 실제 스콧이 사망할 당시 갖고 있던 것 중에는 남극에서 채취한 광물도 있었다고 한다.
전시장에서 스콧이 남긴 마지막 편지와 일기를 찍은 사진도 볼 수 있었다. 죽음을 앞둔 극한의 상황에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서 쓴 마지막 편지였다. 편지글 중에 "우리는 신사답게 죽을 것이다(We shall die like gentlemen).”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혼미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고 했던 스콧 대령의 투혼에 가슴이 뭉클했다.
사람들은 아문센을 승리자, 스콧을 실패자라고 한다. 아문센이 스콧보다 먼저 남극점에 도착한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아문센보다 늦게 도착했다고 해서, 무사히 귀환하지 못하고 현지에서 죽었다고 해서 그를 실패자라고 할 수 있을까?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등수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일을 했느냐에 있다.
스콧의 탐험대는 인류를 위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을 했다. 특히 학문적 성과가 뛰어났다. 모두 12명으로 이루어진 스콧 탐험대의 극지 과학 탐사팀은 남극에서 모두 2,109종류의 동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기록을 남겼으며, 각종 바위 샘플들, 펭귄알들, 식물 화석들을 채집하고 남극동물들의 생태를 관찰했다. 이들이 채취한 식물 화석으로 2억 5천만 년 전에는 이 지역의 기후가 따뜻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생전에 스콧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죽음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죽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자신의 말대로 그는 원하는 일을 하다가 죽어 지금 차가운 남극의 눈 속에 누워 있다. 아문센 역시 조난당한 다른 탐험가를 구하러 비행기를 타고 나갔다가 실종되었다. 나중에 수색대가 아문센이 타고 갔던 비행기의 잔해는 발견했지만 아문센의 시신은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난센, 아문센, 스콧, 휘트먼, 본 윌리엄스. 자유와 도전 정신에 충만했던 이들은 늘 바다를 지향했으며, 영원히 항구로 돌아오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은 갔지만 그들의 배는 여전히 바다 위에 떠 있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미지의 땅을 탐험하기 위해.
'클래식,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은 영역 방어에서 유래했다 (0) | 2025.04.17 |
---|---|
아일랜드 민요 <오! 대니 보이> (0) | 2025.01.31 |
중년의 모차르트는 어떤 모습일까? (0) | 2025.01.25 |
낯선 독일어 노래에 피아노 한 대···가을에 듣는 리트의 매력 (3) | 2024.11.15 |
내가 좋아했던 추억의 팝송 (1) | 2023.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