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중년의 모차르트는 어떤 모습일까?

송담(松潭) 2025. 1. 25. 21:25

중년의 모차르트는 어떤 모습일까?

 

 

모차르트의 곡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피아노 협주곡 제20번)이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천재는 시대마저도 초극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모차르트는 분명 고전주의 시대에 속하는 작곡가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이미 자기 시대를 뛰어넘어 앞으로 다가올 낭만주의를 예고하고 있었다. 음악이 여전히 귀족들을 위한 가벼운 여흥거리로만 여겨지고 있던 시대에 모차르트는 특유의 천재성으로 낭만주의에 버금가는 내면의 열정을 쏟아낸 것이다.

 

모차르트는 모두 27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바로 20번이다. 특히 베토벤은 이 곡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자기가 직접 카덴차를 쓰기도 했고, 브람스 역시 이 곡을 즐겨 연주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으로는 드물게 단조로 작곡된 이 곡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고 드라마틱하다. 당시만 해도 '피아노 협주곡' 하면 밝고 경쾌하고 가벼운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는데, 모차르트는 이 곡에서 이런 고정관념을 완전히 뛰어넘었다.

 

그런가 하면 이 곡은 스케일 면에서도 고전 협주곡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오케스트라가 1악장 도입부를 연주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마치 교향곡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관현악 파트가 피아노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의 독립체로 피아노와 대등한 입장에서 음악을 주고받는데, 이것이 후대의 작곡가들이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는 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 작품을 좋아했던 베토벤은 이 곡에서 모차르트가 추구했던 것을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속에서 더욱 발전시켰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곡의 1악장을 좋아한다.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서 아마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도입부의 꿈틀거리는 동기가 점점 부풀어 오르며 상승하다가 폭발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촐랑대는 모차르트의 내면에 이런 열정이 숨어 있었다니. 그러면서도 그는 특유의 균형과 절제를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음악이 발산하는 비장미는 낭만주의 작곡가의 그것에 비해 훨씬 고급스럽다. 모차르트가 달리 천재인가. 바로 이런 면이 모차르트를 진정한 의미의 천재로 만드는 것이다.

 

이어지는 2악장은 가장 완벽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악장이다. <로망스〉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한없이 늘어지거나 우울한 낭만주의의 로망스와는 달리 모차르트의 로망스는 듣는 사람의 얼굴에 따스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천사의 천진난만한 미소, 연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눈길, 아기의 머리칼을 쓰다듬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같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멜로디다.

 

이 악장을 듣고 있으면 몇 개 안 되는 음으로 이루어진 그토록 단순한 악상으로 어떻게 이렇게 순수한 아름다움을 구현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고 보면 음악에 반드시 그렇게 많고 복잡한 음들이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순도 높은 음만을 뽑아내는 절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 악장인 3악장에서는 초반부터 격정적인 피아노 솔로가 등장한다. 듣고 있으면 모차르트에게 이렇게 폭풍 같은 열정이 있었나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곧 음악의 빛깔이 달라진다. 모차르트 특유의 경쾌하고 익살맞은 표정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대목을 들을 때마다 "아이, 이 장난꾸러기!”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모차르트는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었다. 세상을 등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나이다. 그래서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하곤 한다. 만약 모차르트가 일찍 죽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으로 나이를 먹었을까 하는 상상이다. 나이가 들어도 특유의 장난기나 번득이는 천재성, 자유분방한 성격은 여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상상 속에 있던 중년의 모차르트가 환생해 자기 작품을 연주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공연영상을 보았다. 1986년 여름,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굴다가 뮌헨의 가슈타이크 필하모니 홀에서 뮌헨 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0번)공연 영상이다.

 

프리드리히 굴다는 1930년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외르크 데무스, 파울 바두라 스코다와 함께 빈 삼총사로 불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다. 그는 일체의 권위와 형식을 거부하는 피아니스트로 유명하다. 빈 아카데미의 경직성에 반기를 들고 아카데미로부터 받은 베토벤 반지를 반납하는 패기를 부리기도 했고, 무대에 오를 때 연미복이 아닌 캐주얼을 입는 파격을 보여주기도 했다. 재즈에 심취해 정통 클래식 연주회에 재즈나 자신의 자작곡을 집어넣기도 했는데, 이때 복부비만으로 대사성 질환이 심히 의심되는 중년 아저씨의 알몸을 그대로 드러내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그는 대중을 대상으로 아주 심한 장난을 치기도 했다. 1999년 3월 28일, 한 언론사에 팩스 한 통이 왔다. 내용은 '프리드리히 굴다 뇌졸중으로 사망. 시신은 행방이 묘연함'이었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신문 방송은 20세기에 가장 창조적인 음악가를 잃었다며 그의 죽음을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웬걸. 며칠 후 문상객 앞에 '나 안죽었지롱' 하고 나타난 것이다. 그걸 보고 황당해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자신이 '부활'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워낙 자유분방한 성격이라고는 하지만 이쯤 되면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전력 때문인지 그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장난기 가득한 악동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평범한 티셔츠 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하는 모습에서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면모가 느껴진다. 이날 연주회에서 굴다는 직접 지휘를 하면서 피아노를 쳤다. 그런데 그 지휘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춤으로 치자면 거의 '막춤'에 가깝다고나 할까. 시장바닥에서 술이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가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가락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것처럼 정리가 안 된 춤이다.

 

그가 이런 몸짓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런 사람이 과연 모차르트를 제대로 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파트가 끝나고 피아노가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터치는 너무나 생동감이 있다. 마치 피아노 건반 위에서 싱싱한 생선이 팔딱거리며 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우아하고 부드럽다기보다는 명료하고 발랄하다. 신선한 터치, 똑똑 끊어지는 음들에 내재된 격조 높은 선율성, 짐짓 예쁜 척하지 않는 강직한 로망스, 호들갑 떨지 않는 비장이 압권이다.

 

굴다의 연주 영상을 보고 있으면 때로는 그의 자유분방한 막춤 지휘가 기존의 지휘보다 음악을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2악장 <로망스>의 마지막 음이 울린 다음에 나온 그의 손놀림은 몸으로 음악을 보여준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게 해준다. 마지막 음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두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고 손가락을 살랑거리는데, 그것이 마치 마지막 음을 하늘로 날려 보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는 만약 모차르트가 공연 당시의 굴다처럼 56세까지 살았다면, 그 중년의 모차르트가 이 곡을 몸으로 표현했다면 딱 저렇게 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프리드리히 굴다는 클래식 연주자였지만 실제 삶은 재즈 같았다. 그렇게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다가 가짜 부고 기사 사건이 일어난 지 10개월 후인 2000년 1월 27일, 70세의 나이로 '진짜' 죽었다. 그가 사망한 1월 27일은 모차르트가 태어난 날이라는데, 이토록 절묘한 우연이 또 있을까 싶다.

 

진희숙 / ‘너에게 보내는 클래식’중에서

 

 

프리드리히 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