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아리스토델레스 이래로 줄곧 많은 철학자들은 시간의 성질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작 뉴턴(1642년~1727년)의 연구가 나온 후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개개의 '시간들'이 있다는 말이다. 철학자들에게 특정시간에 사건이 일어났다는 말은 그 사건이 시간의 부분 또는 시간의 단위를 채웠음을 의미한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1646년~1716년)는 뉴턴과 다른 관점을 내놓았다. 라이프니츠는 사건들이 서로 동시에 일어나거나 전후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시간이란 단지 우리가 그 관계를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방식이지 그 관계를 구성하는 것과 구성하는 것과 구별되는 별도의 것이 아니라고 봤다.
라이프니츠의 주장과 반대로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년~1804년)는 시간이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다른 것들의 관계를 나타내는 순서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칸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정신 속에서 정리하는 방식이 곧 시간이라고 봤다. 우리와 독립적으로 우리의 정신 밖에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들은 시간의 틀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는가의 문제도 철학의 주된 연구 주제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흐른다.”라고 말한다. 정말 그러한가? "지금이 현재이다."라는 말은 언제 하든 상관없이 항상 참이다. 다시 말해, 현재는 우리가 있는 시간이다. 어떤 철학자들은 우리가 특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믿는 철학자들에게 시간은 흐르는 것이 맞다. 일부의 시간이 과거이고, 그다음은 현재이며, 나중이 미래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여기’와 같은 개념이라고 말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여기'는 어떤 특징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기’라고 말하는 시간에 우리가 서 있는 장소를 말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철학자들에게는 우리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시간이 흐르지도 않는다. 시간은 그저 공간처럼 여러 부분들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런 시간의 한 부분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의 일부분이 바로 현재인 것이다. 우리가 있는 물리적 공간이 ‘여기’인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 시간, 즉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공룡, 원시인 도도새가 단지 우리가 존재하는 같은 공간에 없을 뿐이지 모두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S. 키더, 노아 D. 오펜하임 지음, 허성심 옮김 /
‘세계에서 가장 짧은 교양수업 365’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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