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하는 인간
놀이란 무엇일까요? 놀이는 다양한 말로 정의될 수 있을 겁니다. 놀이를 정의한다는 건 농담을 정의 한다는 것과 같아서 매우 부질없다는 글도 본 적 있는데요. 저라면 ‘놀이를 생산적인 결과물이 아닌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로 간단히 정의해보겠습니다. 옥스퍼드 사전을 살펴보니, ‘특별한 생산적인 목적 없이 우리가 시간을 즐기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정의돼 있더군요.
놀이는 매우 보편 적인 행동입니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그림에도 노는 모습이 담겨 있죠. 사람뿐 아니라 개나 고양이도 잘 놀고요. 종을 뛰어넘어 같이 놀기도 합니다. 심지어 개미들조차도 특별한 목적 없이 자기들끼리 혹은 혼자서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이 목격되곤 해요. 그런 점에서 놀이는 종을 넘어선 보편 적인 행동처럼 보입니다.
이런 놀이는 일과 다른 여러 특징들이 있지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하는 행위이고요, 어떻게 놀아야 한다는 규칙이 없으며,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목표도 없습니다. 더 잘 놀기 위해 경쟁하지 않으며, 혼자 놀아도 재미있고 같이 놀아도 재미있습니다. 매우 집중이 잘 되고 즐거운 과정이며, 끝나면 다시 하고 싶어지는 행위이지요.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1938년에 출간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라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그는 합리주의와 낙관론을 숭상했던 18세기에 우리는 우리 종족을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이라고 칭했지만 그것은 이성을 숭배하던 시절의 정의라고 못 박고,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확연히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은 ‘놀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예술과 문화로 승화시킨 능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위징아는 놀이 전통이 우리 삶을 너무나 중요하게 관통하고 있어서, 문화 곳곳에 그 흔적이 스며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애를 들이, 인간은 몸을 회전하면 굉장히 즐겁거든요. 이런 생물학적 본성 때문에 서커스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예술의 수준으로 승화시켰다는 거죠.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인간은 수많은 도박을 만들었고 가무를 즐기는 축제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놀이연구소 소장 스튜어트 브라운(Stuart Brown)에 따르면, 놀이는 인간의 창의성을 높여주는 가장 창조적인 행위라고 합니다. 그는 도널드 헵(Donald O. Hebb)의 아주 오래된 이론인 ‘가소성 이론’을 빌려서 ‘인간은 놀이를 통해서 정상적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헵은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입니다. 그는 자극이 많은 환경에 놓인 쥐들의 뇌에서 신경세포들이 더 많은 수상돌기와 축색돌기를 뻗고, 그들 사이의 시냅스 연결도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쥐가 살고 있는 상자에 놀이기구를 많이 들여놓았더니 시냅스 연결이 현저히 늘어난 반면, 아무것도 넣어주지 않은 상자에서 자란 쥐들은 신경세포들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관찰한 거죠.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도 많이 진행되지 않았고요. 이를 바탕으로 브라운은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서 생존에 필요한 다양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의사결정 과정을 제대로 익힌다고 주장합니다. 특히나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유년기가 길기 때문에 그 시절 놀이를 통해서 다양한 행동양식을 학습하고 성장하는 거죠. 사람이 놀지 않고 일만 하면 바보가 된다고 하죠? 과학자들은 이 오래된 통념이 진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연구를 통해 꾸준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많은 답변 중 하나가 어린 시절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을 때였습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 부모님이 흐뭇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안전함을 느끼고, 자연과 함께 있으며, 고개를 들면 바다가 보이는 상황 말이죠. 놀이터의 놀이기구들과 달리, 모래는 내게 어떻게 가지고 놀아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모래성과 비교하지도 않고, 혼자 쌓아도 재미있고 친구와 같이 쌓아도 즐겁지요. 완성하지 못해도 즐겁고, 결국 근사한 모래성이 완성되면 부모님에게 보여주며 즐거워합니다. 과정 그 자체를 즐기며 결과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내일 다시 쌓는다면 다른 모래성이 나오겠지요. 놀이의 본질을 모두 담고 있는 행위입니다. 노는 동안 놀이에 몰두하는 동안 우리는 행복합니다. 창의와 혁신, 행복은 서로 맞물려 있는 듯 보입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살펴보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혼자 노는 사람인가, 아니면 같이 노는 사람인가?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내가 어떻게 일할 때 가장 행복한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혼자 노는 게 즐거운지 함께 노는 게 즐거운지, 현실에서 놀 때 즐거운지 온라인상에서 놀 때 즐거운지, 나는 몸을 움직이면서 노는 사람인지 두뇌의 유희를 즐기는 사람인지, 이성적인지 감성적인지 말이지요. ‘나는 무엇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내 즐거움의 원천인 놀이 시간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 이 질문에 정말로 답하고 싶다면, 일만 들여다보지 말고 놀이에서 해답을 찾아보세요. 일과 놀이를 함께 성찰할 때 우리는 더 나은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정재승 / ‘열 두 발자국’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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