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김선현 / ‘그림의 힘’ 중에서

송담(松潭) 2020. 12. 16. 12:07

나도 의욕적으로 일하고 싶다

 

 

장 조프루아 Henny-Jules-Jean Geoffroy

교실, 공부하는 아이들 The Chilidren‘s Class

 

 

인간은 관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적 환경에 심리적인 동기가 영향받기도 합니다. 그중 단순히 다른 사람의 존재로 인해 나의 수행이 향상되는 현상을 '사회적 촉진 Social facilitation'이라고 합니다.

 

방해요소가 있는데도 굳이 사람 많은 도서관을 찾아가거나, 커피숍에서 이어폰을 끼고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절로 집중되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였을 것입니다.

 

'사회적 촉진'이라는 용어를 정립한 사회심리학자 플로이드 올포트 Ployd Allport는 단순히 다른 사람의 존재에서 비롯한 시청각적 자극만으로도 능률이 향상된다고 말합니다.

 

공부나 일에 좀처럼 의욕이 생기지 않을 때

이 그림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무의식적으로

나의 심리를 움직일 것입니다.

진심어린 조언이나 가족의 잔소리, 스스로의 다짐보다도

남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 압도적인 풍경 자체가

의욕의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세상을 화폭에 담은 화가 조프루아의 그림은 우리를 19세기 프랑스 교실로 데려다놓습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어린아이들 각자에게서 저마다의 개성이 보이죠?

 

선생님에게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아이, 스스로 책을 참고하며 문제로 풀어보려는 아이, 친구한테 뭘 좀 알려주려는 아이, 필기구가 잘못되었는지 진지하게 살피는 아이, 또 선 채로 책에서 고개를 못 떼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 모습이 어떻든 모두 이 수업시간에 열중해 있습니다. 조막만한 아이들도 이런데, 하물며 나도 뭔가 배우고 일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절로 드는 그림입니다.

 

분홍빛 볼을 한 아직 어리디 어린 존재들이지만, 잿빛과 갈색의 배경이 나름 차분하고 수업에 집중된 분위기를 조성해 아이들의 열성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참고로 이 그림은 프랑스 교육부가 의뢰하여 제작되었다고 하지요.

 

 

 

< 2 >

 

아름다운그림은구체적으로

어떤 힘을 지닐까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 Auguste Renoir

피아노 치는 소녀 Young Girls at the Pano

 

 

저에게 르누아르의 이 그림을 고른 여학생이 있다며, 어떤 심리상태인지 알고 싶다는 의뢰가 온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의뢰자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그 학생에게 친한 여동생이나 언니가 있을 듯하고, 지금 가족을 무척 그리워하는 것 같다고요.

 

실제로 그 여학생은 공부하느라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살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 매우 친했던 언니가 있다고 합니다. 고3 수험생이 단칸방 벽에 이 그림을 붙여놓고 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움을 달랬던 것이죠.

 

‘벽에 걸어놓을 그림은

사람의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환희의 선물이 되어야 하고

즐겁고 유쾌하고 예쁜 것이어야 한다.‘

 

르누아르의 명쾌한 모토처럼, 따뜻한 봄 햇살 같고 어느 하나 격한 요소가 없는 화목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은 구체적으로 어떤 힘을 지닐까요?

 

런던 대학교 세미르 제키Semir Zeki 교수는 유명화가의 미술작품을 감상한 대상자에게 '아름다움' '보통' '추함' 등으로 느낌을 표현하도록 유도하고 뇌 활성도를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아름답다고 평가했을 때는 뇌 전두엽의 보상계인 내측안와전두엽이 활성화되는 것이 발견됐습니다. 보상계란 도파민dopanine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즐거움과 쾌락을 느끼는 뇌의 영역입니다.

 

시각으로 인지된 그림이

사람의 감정이나 심리상태를 좌우하는 뇌에도 영향을 미처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얘기입니다.

 

내담자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그림은 무조건 예쁘게'를 표방하는 르누아르의 작품을 보며 특히 즐거워하거나 웃음을 되찾고, 때로 친밀한 관계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또 시각신호 가운데 심리와 관계가 가장 깊은 요소는 색입니다. 색이 지닌 고유한 진동과 주파수는 우리 뇌에 전달되어 반응을 일으킵니다. 일본의 색채심리학자 스에나가 타미오는 어떤 색이 시상하부에 전해지면 쾌감의 전달통로인 A10신경을 통과, 뇌의 편도핵에 도달해 '좋다' 혹은 '나쁘다'라는 판단으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이 그림의 경우 우리가 편안하면서 좋다고 판단하게 되는

주황, 초록, 갈색이 다 같이 어울려 있습니다.

특히 갈색은 가을, 나무, 낙엽의

자연색으로서 차분한 느낌을 줍니다.

 

옷을 선택할 때도 이 점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어느 실험에서는 면접자가 검정과 하양을 섞은 회색 양복을 입었을 때 합격률이 더 높았는데 이는 회색의 색감이 조직에 섞여드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검정과 노랑을 섞은 갈색 옷도 좀더 순응적인 느낌을 전하고 싶을 때 유용합니다.

 

 

< 3 >

 

세상모든 것을 다가진, 최상의 황홀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꽃이 있는 농장 정원 Farm Garden with Flowers

 

 

선물의 브랜드 아니면 실용성이 중시되는 요즘은 '꽃 선물'이 돈 낭비라며, 곧 시들어버리는 꽃이 무슨 효용이 있느냐는 슬픈 말이 들려오곤 합니다. 하지만 꽃 선물이 왜 효용이 없나요.치매환자나 암 환자,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 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이 꽃입니다. 아무래도 꽃이 갖고 있는 색상과 향기, 무엇보다 생명력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미술치료를 받으러 온 스트레스 내담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도 바로 꽃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꽃이 한 송이만 덩그러니 핀 게 아니라 종류별로 아주 많이 풍성하게 피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의 절대적인 부족을 느끼는 이들이 이 그림에 더 황홀감을 느낍니다. 평소 돈에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은 "아아, 이게 다 돈이었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하지요.

 

다양한 꽃이 가득한 것만으로도 좋지만

이 그림은 특히 채도 대비가 큰 색들을 활용해

우리에게 에너지를 전해줍니다.

 

채도는 색의 선명한 정도를 말하는데, 주변과 비교될 때 더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그냥 붉은 참치회만 있는 경우와 참치회가 까만 접시에 올라온 경우를 상상해보세요. 까만 접시에 놓인 모습을 상상할 때 강렬하고 먹음직스럽게 다가오지요?

 

이렇듯 시각적인 감각은 단지 보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입맛이나 냄새, 듣는 것에 총체적으로 영향을 주며 느낌의 70~80퍼센트를 좌우지요. 그래서 채도 대비가 클수록 사람의 시신경이 자극되고, 심리적로 훨씬 많은 에너지를 받게 됩니다.

 

이 그림에는 자연의 풀밭처럼 편안한 초록 바탕에 채도 대비가 가장 큰 빨간색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여기에 태양 같은 활력을 주는 노란 해바라기, 깨끗하고 밝은 흰 꽃들도 불쑥불쑥 다가와 다양한 시각적 자극을 줍니다.

 

연인에게 꽃을 선물할 때도 이를 참조할 수 있겠지요.

상대방이 지쳐 있다면 채도 차이를 크게 둔 색들을 조합해

'에너지 꽃다발'을 선물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 4 >

 

화를 푸는 방법

 

잭슨 폴락 Jackscn Pollock

가을의 리듬: 넘버30 Auturnn Rhythm: Number 30

 

 

잔뜩 화났을 때 누가 대신해서 욕지거리를 해주면 내 마음도 후련해지죠? 이 그림은 바로 그런 역할을 하며 화난 기분을 풀어줍니다.

 

주로 고정된 형태, 예상된 결과를 추구하는 우리의 일상에서 '뿌리는'행위는 그야말로 해방의 몸짓입니다. 잡힐 만한 형태도 없고, 물감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 결과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내면도 그렇죠. '화난다' '기쁘다' '슬프다'라는 정돈된 말들에 내 감정이 꼭 들어맞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잭슨 폴락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뿌리는 기법'을 동원해 감정의 표현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이 그림이 '화'라는 감정에 어떤 그림보다 조응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검은색의 흩뿌림에서 욕과 폭력 같기도 한

끈적한 감정의 배출이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흰색이 어우러져 마음이 풀리며

느껴지는 해소의 기운도 받을 수 있죠.

 

저는 직접 뿌리는 기법을 통해서

화를 푸는 방법도 추천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지만 신체적으로 불편한 분들에게 '습식화' 기법을 권하곤 합니다. 습식화란 물감을 투두둑 떨어뜨려보는 것을 말합니다. 물감이 번지는 우연의 효과를 통해서 모양과 색상이 바뀌는 모습만 보아도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기뻐합니다.

 

그와 유사한 방법이 '뿌리기' 입니다. 원하는 색상을 골라 붓에 묻히고는 쫙쫙 뿌리는 것이지요. 속이 시원하다고 할까요. 다양한 스트레스와 감정을 표현하기만 해도 기분이 달라지는 걸 체험할 수 있습니다.

 

 

김선현 / ‘그림의 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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