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공간이 만든 공간 / 유현준’ 중에서

송담(松潭) 2020. 7. 15. 07:33

‘공간이 만든 공간 / 유현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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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경우, 일반적인 가정용 개인 컴퓨터도 직렬이 아닌 병렬로 연결하게 되면 슈퍼컴퓨터의 능력을 갖게 된다. 같은 원리로, 평범한 인간의 뇌도 병렬로 연결하면 집단은 개개인의 능력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컴퓨터처럼 전선 케이블로 연결할 수 없다. 대신 인간의 뇌 사이를 병렬로 연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케이블이 있다. 바로 '언어'다. 언어가 발달하면서 인간은 주변 사람들과 고도의 의견 교환이 가능해지게 되고 집단의 두뇌 간 시너지 효과가 커지게 되었다. 언어를 통한 뇌의 병렬연결은 단위 면적당 인구수가 늘어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수렵 채집 시기에 10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 수십 명이 살았다면, 건조해진 기후 때문에 강가로 모인 사람들은 10제곱킬로미터에 수만 명이 모여 살았을 것이다. 수십 개의 PC를 병렬로 연결하는 것보다 수만 개의 PC를 병렬로 연결한 컴퓨터가 훨씬 더 강력하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수만 명이 모여 살게 되면서 집단 지능이 커졌고 자연스럽게 문명이 발생했다. 문명 발생의 필수조건은 도시 형성이다. 인류 최초의 도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만들어진 ‘우루크’라는 도시다. 기원전 3500년경에 만들어진 우루크는 성벽 안쪽 면적이 6제곱킬로미터였는데 그 안에 5만 명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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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은 왜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벼농사 지역과 밀 농사 지역의 건축은 다르게 발전해 왔다. 따라서 사람들이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도 다르게 진화했다. 밀 농사 지역은 벽 중심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지붕을 받치고 있는 벽에 창문을 내려고 구멍을 크게 뚫으면 집이 무너진다. 그래서 창문의 크기가 작다. 게다가 유리가 대량 보급되기 전에는 창문을 유리창이 아닌 나무로 만든 문으로 가려야 했다. 유리창은 고딕 성당 같은 엄청나게 비싼 건축물에나 설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집 안에서 창문으로 바깥 경치를 볼 수 없었다. 서양 건축의 대표적인 창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바깥 경치를 볼수 있는 투명한 창문이 아니었다. 이런 이유에서 서양의 건축 공간은 내부와 외부가 벽으로 확연히 나뉘는 공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안에서 밖을 볼 일이 없으니 건축 디자인을 할 때에도 밖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시점에 더 중점을 두고 디자인하게 된다. 이것이 서양 건축의 입면 디자인이 화려하게 된 이유다. 창문의 비율도 중요하고, 각종 조각으로 건축의 입면을 꾸몄다. 실내에 들어가서도 바라볼 경치가 없기 때문에 그림과 조각으로 실내를 과도하게 꾸몄다.

 

그에 반해 전통적인 동양의 건축은 입면을 디자인할 때 서양만큼 신경 쓰지 않았다. 동양의 건축물을 보면 건물의 입면을 차지하는 부분의 요소가 지붕이다. 동양은 서양에 비해서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기 때문에 방수를 하는 지붕이 가장 중요한 건축 요소였다. 비가 많이 내리니 빠른 배수를 위해서 지붕의 기울기가 급하다. 그러다 보니 앞에서 바라보면 지붕이 건물 입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난방 시스템이 무거운 돌로 만든 온돌이어서 2층짜리 집이 없었다. 그래서 건물을 지으면 건물 입면에서 지붕이 절반을 차지한다. 지붕을 제하고 난 건축물의 입면은 그저 지붕을 받치기 위한 나무 기둥이 있을 뿐이다. 동양은 나무 기동을 이용해서 건축되었는데, 기둥 구조는 지붕을 받치기 위한 벽이 필요 없다. 그러다 보니 기둥과 기둥 사이는 뻥 뚫린 개방감을 갖기 쉽다. 게다가 중국의 채륜이 발명한 종이가 있었기에 유리가 보급되기 훨씬 전부터 창문을 크고 가볍게 만들 수 있었다. 여름철 더울 때에는 통풍을 위해서 창문을 접어서 들어 올려 처마 밑에 걸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벽이 없는 건축이 된다. 비가 오더라도 처마가 길게 가려 주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 놓아도 비가 들이치지 않아서 창문을 열고 바깥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처마 아래에는 뒷마루를 만들어서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동양 건축에서는 이렇게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감이 발달하게 되었다. 동양은 안에서 밖을 보는 일이 일상이었고, 집의 내부와 바깥 경치의 관계가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 경관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건축물의 배치를 결정한다. 안에서 밖이 어떻게 보이느냐가 건축 디자인의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변이 보이기 때문에 건축에서 주변 상황 및 요소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건물의 뒤에는 산이 있어야 하고, 남쪽을 향해서 창이 열려야 하며, 남쪽으로 물이 흐르면 좋다. 뒤에 산이 있고 앞으로 강이 흘러야 대지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기울어지게 되고, 그래야만 비가 와도 배수가 잘 돼서 땅의 침하가 적고, 습기가 적어서 나무로 만든 건축물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남쪽으로 기울어진 땅이어야지 단위 면적당 더 많은 햇볕을 받게 되고, 비가 온 후에도 땅과 건물이 잘 말라서 건축물이 더 잘 유지될 수 있다. 그래서 ‘배산임수’라는 풍수지리 원리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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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량의 차이는 농업 품종의 차이를 만들고, 품종의 차이는 농사 방식의 차이를 만들고, 농사 방식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건축에서 동서양의 강수량 차이는 건축 디자인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고, 건축 공간은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행동 방식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양은 밀 농사의 혼자 농사하는 방식에 따라 개인주의 성향이 커졌고, 외부와 단절된 창문 없는 벽 중심의 건축으로 바깥과 교류가 적은 성격의 공간으로 발전했다. 건축물 역시 독립된 개별적인 건축물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축적 개인주의'가 발전했다. 반면 벼농사는 집단 농사 방식으로 사람 간의 관계가 중요한 가치였으며, 많은 강수량 때문에 사용하게 된 재료인 목재를 이용한 기둥 중심의 건축 양식은 외부 자연 환경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할양식으로 발전되었다. 강수량 차이로 인해서 서양은 독립된 개인이 중요한 사회가, 동양은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