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빈자의 미학

송담(松潭) 2020. 12. 16. 18:11

빈자의 미학

 

 

 

멕시코의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에게 있어, 그가 구축한 벽은 노스텔지어이며 그 벽으로 한정된 공간은 침묵이다.

 

그가 이야기하길 “고독함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만 인간은 스스로를 발견한다. 고독은 참 좋은 반려이며 나의 건축은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이에겐 부적절한 것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은 그가 자신의 죽음에까지 가져간 고독, 그리고 그로부터의 침묵은 멕시코의 이글거리는 태양과 거친 평원과 또 자신 스스로와 무슨 관제를 가지고 있었올까.

 

 

피트 몬드리안(1872-1944),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1943)

1943년 뉴욕에서 그린 만년의 대표작.

 

 

 

김환기(1913~1974)가 만년에 뉴욕에서 그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그의 초기 작품은 새가 날고, 달무리 지고, 아이가 보이고 하는 그런 서정이었다.

그가 뉴욕이라는 이방의 풍토와 대립하면서 겪어야 했던 고독의 틀이 그를 과거와 절연시켰을까.

 

그는 자신의 작품 노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린다. 생각한다면 친구들 그것도 죽어버린 친구들,

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뿐이다.

서러운 생각으로 그리지만 결과는 아름다운 명랑한 그림이 되기를 바란다 (1972.9.14.)"

 

 

 

우리의 예술가 수화(樹話) 김환기가 그린 미니멀적 그림 속에는 아득한 옛 서정이 퍼져있고, 이미 그것은 기계음의 한계를 극복해 있다. 뉴욕에서 이방인의 삶을 같이 살았던 몬드리안의 눈에 비친 뉴욕의 밤거리 풍경과, 이방인으로서 고독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수화의 눈에 맺힌 뉴욕의 밤거리 풍경은, 그들의 작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만큼 다른 것이다.

 

몬드리안의 접근이 한계음을 갖는 반면 수화의 그림에는 그가 찍은 무수한 점처럼 그 한계가 없음을 느낀다. 나는 수화의 이 그림에서 현대 건축이 봉착한 한계-미로를 빠져나갈 탈출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를 '빈자의 미학이라 부르기로 한다.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승효상 / ‘빈자의 미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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